사망 다음날 입사한 회사와 다른 회사에 국민연금 가입

경동물류 사업장에서 지게차 사고로 숨진 27살 주 모씨의 사고 현장 (출처: 유족 제공)

 


27살 청년, 첫 취직 한달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2015년 11월 12일. 수도권의 한 물류 창고사업장에서 지게차를 몰던 20대 청년이 죽었다. 27살. 사고가 난 물류 사업장은 이 27살 청년의 첫 직장이었다. 무덤이 된 첫 직장. 피가 묻은 흰 천에 덮혀 27살 푸릇한 청년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죽음. 드디어 취직했다고 그렇게 좋아했던 아들이 취직 한 달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는 망연자실했다.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을 '수습'하던 아버지는 분노를 넘어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죽은 아들이 사망한  다음 날 국민연금에 가입된 것이다. 그것도 애초 입사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 이름으로.

아들이 입사한 회사는 '경동택배' 등으로 유명한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는 중견 물류회사 '경동물류'다. 도대체 경동물류에서, 아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주씨가 경동물류 인사과에서 받은 합격 문자 메시지 (출처: 유족 제공)

 


경동물류에 사무관리직으로 입사..현장 경험 한다며 지게차 업무 투입, 사고로 사망

사망한 주 모씨가 경동물류에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은 지난 해 9월 30일이다. 유족측이 환경TV에 공개한 주씨의 휴대폰 문자에 따르면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1등 물류사 경동물류 인사과입니다"라며 "최종 합격을 축하드린다"고 하고 있다.

경동물류는 그러면서 "안녕하세요. 경동물류 영업본부 인사담당자"라며 "이번 10. 08 김포터미널 오픈과 함께 신입사원 규정이 변경되어 알려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문자에 따르면 경동물류는 사무관리직으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에 대해 "출근일 부로 현장관리 경험을 하기 위해 2개월동안 야간 현장에서 근무하게 됩니다"라며 "10월 12일 월요일 오후 3시까지 면접 보신 김포 터미널로 작업복과 안전화를 필수로 착용하고 출근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렇게 출근한 주씨는 이론 6시간과 실습 6시간, 단 12시간의 지게차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그렇게 김포에 위치한 경동택배 물류센터에서 지게차를 운전하게 된 주씨는 지난해 11월 12일 밤, 지게차를 운전하다 1m 아래로 추락하면서 화물차와 지게차에 끼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회사측은 황망해하는 유족에게 "주씨가 지게차의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고 설명했다. 주씨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라는 것이다.  

그렇게 주씨의 '과실'로 끝나는가 싶던 그날의 사고는 유족들이 숨진 주씨의 고용관련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석연치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된다.

숨진 주씨의 국민연금 가입자 가입증명. 사망한 다음날 국민연금 가입이 처리됐다. (출처:유족 제공)

 

 

사망 다음날 국민연급 가입
입사는 '경동물류'에 국민연금 가입은 듣도보도 못한 '합진운송하역' 이름으로

환경TV가 단독 입수한 숨진 주씨의 '국민연금 가입자 가입증명'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가입 사업장 명칭이 주씨가 입사한 경동물류가 아닌 '합진운송하역'이라는 전혀 다른 회사 이름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자격 취득 변동일은 2015년 10월 12일로 돼 있다. 주씨가 경동물류에서 받은 문자에 의하면 주씨가 김포 소재 경동택배 물류사업장으로 출근한 첫날이다.

주씨가 경동물류에 사무직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합격은 경동물류에 했는데  소속은 합진운송하역이 된 이상한 인사발령인 셈이다.

더 황당한 것은 국민연금 가입 처리일이 2015년 11월 13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이날은 주씨가 지게차 사고로 숨진 바로 다음날이다. 

'처리일'과 관련해 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환경TV와의 통화에서 "국민연금 가입자 가입증명에서 처리일은 말 그대로 공단에서 국민연금 가입을 처리한 날이다"며 처리일에 대해 "처리는 신고 즉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공단 관계자 말에 따르면 경동물류측은 주씨가 입사한 뒤 한달 동안 공단에 국민연금 가입 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씨가 숨진 바로 다음날, 

그것도 주씨가 입사한 경동물류가 아닌 합진운송하역이라는 생소한 회사 이름으로 주씨에 대한 국민연금 가입 신청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어 국민연금 '상실 변동일'은 2015년 11월 14일로 돼 있다. 사망한 다음날 국민연금에 가입됐다가 처리 '단 하루' 만에 자격이 '상실'된 것이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관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경동물류가 숨진 주씨의 소속 회사를 바꿔 사망 다음날 부랴부랴 국민연금 가입 신청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속 회사 변경 의혹에 대해 경동물류 관계자는 "말도 안된다"며 주씨가 입사한 경동물류와 합진운송하역은 같은 회사다"고 해명했다. '현장일'을 배우기 위해 경동물류 계열사에 주씨를 발령낸 것일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동택배 홈페이지 계열사 안내 어디에도 '합진운송하역'이라는 회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동측은 홈페이지 계열사 안내 '경동 계열사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에서 자신들의 계열사로 '합동택배'와 '경동렌터카' '경동컨테니어' 합동커머셜' 등 4개의 회사만을 계열사라고 적시하고 있을 뿐 '합진운송하역'이라는 회사는 계열사 안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홈페이지 영업소 조회에서도 '합진'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검색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 조회 결과도 경동 물류와 합진운송하역은 소재지도, 법인번호도, 대표도 다 다른 회사로 돼 있다.

경동물류가 사고를 조작, 은폐하기 위해, 적어도 '경동'이라는 회사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소속 회사를 바꿔치기 했다는 유족들의 의혹 제기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경동택배 홈페이지 계열사 안내. '합진운송하역'이라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다. (출처:경동택배 홈페이지)

 


"지게차 면허도 없는데 지게차 운전 업무 투입" 의혹
경동물류, 안전사고 관리감독도 부실

경동측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고를 조작,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은 이게 다가 아니다.

유족들에 따르면 숨진 주씨가 지게차 운전 면허를 취득한 날은 2015년 11월 2일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주씨가 지게차 면허를 따기 훨씬 전부터 지게차 운전 업무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유족들이 주씨의 입사 동기 등을 만나 들어본 결과, 10월 12일 김포 물류 사업장에 출근해 이론 6시간, 실습 6시간 도합 12시간의 지게차 교육을 받은 직후부터 지게차 업무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평생 지게차를 몰아볼 일이 전혀 없었던 문과 출신 사무관리직 신입사원에게 '교육'이라고 12시간 시키고 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지게차 업무를 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대해 경동측은 "실무·이론 교육이 끝난 뒤에 지게차 업무에 투입된 것은 맞다"면서도 '언제' 투입했는지 정확한 시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애초 숨진 주씨 과실로 인한 사고로 전해졌던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관할 노동청 조사결과 사고 현장에 지게차를 유도하는 담당자도 없었고, 지게차의 추락을 막을 안전장치도 갖춰져 있지 않은 등 경동이 관리,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정황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경동의 사고 은폐 정황은 이게 다가 아니다.

주씨가 숨진 다음날 '출근하지 말라'는 회사 지시를 공유하고 있는 주씨 동기 단체 카톡방. (출처: 유족 제공)

 


숨진 주씨 입사 동기, 주씨 사망 뒤 모두 다른 부서로 발령
"사건 은폐하기 위해" vs "트라우마 방지하려고" 

사고 다음 날 숨진 주씨의 입사 동기 단체 카톡방에 따르면 주씨의 입사 동기들은 사고 직후 경동측으로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는다.

주씨의 한 입사 동기는 "출근하지 마세요. 회사 들어가지 마세요. 얼른 집으로 빽"이라는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고, 다른 입사 동기도 "나도 출근했다가 애들 만났는데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 해서 다시 집 가고 있어"라는 글을 올렸다.

또다른 입사 동기는 "설명이 없으니까 찜찜하네"라며 '왜 출근하지 말라는 것인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어 이튿날 주씨 입사 동기의 단체 카톡방엔 "참고사항!!! 급하게 우리 부서는 배치 다 됐데!!! 누가 어딘지는 잘 모름!!!"이라는 글이 올라온다.

실제 이들은 모두 사건 이후  주씨가 숨진 김포 물류장에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와 관련 주씨의 유족은 "경동측이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면허도 없이 지게차 업무에 투입된 사실 등을 알고 있는 동료들을 각각 흩어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동은 이에대해 "숨진 주씨 동료들을 다른 영업소로 보낸 것은 사고 이후 그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며 은폐 의혹은 말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다음날 그것도 경동이 아닌 듣도보도 못한 다른 회사 이름으로 국민연금에 가입된 것 부터가 말이 안된다"며 "경동이 사고를 조작·은폐하며 아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허탈함과 분노를 쏟아냈다.

지난해 2월 주씨가 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자원병역이행 명예증서 (출처: 유족 제공)

 

숨진 주씨는 지난 2010년 필리핀의 한 사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로 굳이 한창 나이에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주씨는 국내에 들어와 육군에 자원 입대했고, 이에 병무청으로부터 "영주권 등 취득 사유로 병역의무가 감면 또는 연기되었음에도 스스로 현역으로 자원입대하여 명예롭게 병역의무를 이행했다"며 '자원병역이행 명예증서'까지 받은 몸도 마음도 건강한 대한민국의 청년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청년으로 병역 의무를 다하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경동물류'.

주씨와 어머니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출처: 유족 제공)

 

"밥은 먹었니..무슨 감옥에 보낸 거 같아.."
숨진 주씨 어머니 아들에 보낸 카톡 안타까움 더해

주씨의 어머니는 출근 직후부터 야근 등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카톡에 "밥은 먹었니, 몇시간이나 잤니, 옷은, 속옷 갈아입어야 하는데...어쩐데" 등등의 엄마로서 안쓰러운 마음을 전하며 "무슨 감옥에 보낸거 같아. 엄마가 맘이 아파서.." 라고 안타까운 모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씨의 어머니는 "그래도 감사하자.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라" 라며 "기쁜 마음으로 일해~~" 라고 아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다.

어머니 눈에 '감옥' 같다던 주씨의 첫 직장 '경동물류'는 결국 주씨의 '무덤'이 됐고,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졌던 주씨의 휴대폰은 주인을, 엄마는 아들을 잃었다.

경동물류는 경동측의 관리감독 부실 등 책임 인정과 이에따른 산재보상금 지급 등 유족측 요구에 '법대로 하자'며 노무사를 고용해 법적 대응 중이다.

bakjunyou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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