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홍역 나은 '사막여우', 의안 넣은 '늘보 원숭이'.. 건강 되찾았지만 보금자리는..

지난 15일, 겨울을 맞은 충남 서천군의 국립생태원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열대관부터 극지관까지, 전세계 생태계를 구현한 '에코리움'의 사막관 얘기다. 의아스러운 점은 이 공사가 정기적으로 하는 개·보수 작업이 아니었다는 부분이다.

몰수된 '사막여우' 어떻게 사나 봤더니..

생태원이 사막관 한 켠의 땅을 뒤엎으면서 공사를 시작하게 된 연유는 사실 새식구 맞이 때문이다. 지난해 밀수 과정에서 적발돼 생태원으로 인계된 '사막여우'의 새 둥지를 짓는 공사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국가 간 거래가 금지돼 있는 이들은 지난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몰래' 들여 온만큼 이들은 말 그대로 '밀수품' 취급을 받았다. 

몰수된 개체들 중 살아 남은 사막여우. 출처=국립생태원

 

사막의뜨거운 햇볕 아래 살다 영하 수십도를 넘나드는 짐칸에서, 거기다 이 여정은 이들이 가진 유달리 큰 귀 때문에 더 힘들었다. 짐 칸에서 비행기의 소음을 고스란히 겪었다. 그래서 22마리였던 친구들 중 5마리는 얼마 안 되는 비행기 이동 과정에서 폐사했다.

그나마 살아서 도착한 나머지 17마리도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밀수 단계에서 적발된 이들은 울산지방경찰청을 거쳐 생태원으로 왔다.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이유로 오게 된 기착점이다. 당시 이들은 '개홍역'을 앓고 있었다. 개의 사촌인 이들에게는 개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병이다.

생태원 수의사들의 노력에도 생존률은 30%가 채 안 됐다. 인계된 17마리 중 12마리는 세상을 떠났다. 다행인 것은 '몰살'은 아니었다는 점 정도다. 5마리는 건강을 되찾았다. 기자가 쇠로 만든 우리 사이로 멀리서 지켜 본 이들은 새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지켜 봤다.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막여우.

 

아쉬운 점은 이들이 아무리 몸이 회복됐다고 해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박탈당했다는 부분이다. 그 대신 생태원은 고향과 엇비슷한 환경인 사막관에 새 둥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이들은 앞으로 사막관의 인기스타 '프레리도그'와 함께 사막관을 지키게 된다.

생태원 관계자는 "다른 개체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려 해도 공간이 필요한만큼 쉽지가 않다"며 "적응이 끝나고 둥지가 마련되는 대로 사막관에서 이들을 보호하게 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개한테 물린 '늘보 원숭이' 어떻게 지내나..


"자는 건가요?"

기자의 물음에 관리 담당자는 "원래 이렇습니다"라고 응답했다. 그만큼 생태원에 머물던 '늘보 원숭이(슬로 로리스)'는 기자가 대면했을 때 한 치의 움직임도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늘보 원숭이인 지조차 몰랐을 뻔했다. 노란색과 녹색이 섞인 담요에 둘둘 말린 모습을 본다면 늘보 원숭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유심히 지켜보자 꿈틀꿈틀 대는 모습을 보니 '살아 있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느리다는 뜻의 '슬로(Slow)'란 이름에 걸맞은 느릿느릿한 움직임이다.

이불 뒤집어 쓴 늘보 원숭이.

 

걱정했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개체는 2014년 12월 경북 상주시 민가에서 발견된 종이다. 이 늘보 원숭이는 동네를 무턱대고 어슬렁거리다 개한테 물린 것을 주민이 신고해 발견됐다. '느린' 본성을 생각한다면 능히 짐작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개체의 고향이다.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이 개체의 고향은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다. 우리나라 야생 동물이 아닌 '녀석'이 민가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늘보 원숭이는 마니아 층에서 애완동물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보니 개인의 수입은 불법이다. 결국 밀수된 개체가 '주인'에게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둥지를 튼 늘보 원숭이는 지난 강원도 한 저수지에서 발견된 피라냐처럼 상주에서 버림받았다.

왜 버렸을까도 능히 짐작이 간다. 발견 당시 늘보 원숭이의 오른쪽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눈은 심각한 염증으로 눈동자를 볼 수조차 없었다. 판정은 '녹내장'이었다.

생태원 관계자는 "당시에 녹내장 등으로 인해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안구를 '의안'으로 교체한 뒤 지금은 건강한 상태다"라고 전했다.

오른쪽 눈에 의안을 낀 늘보 원숭이. 출처=국립생태원

 

발견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늘보 원숭이는 본능대로 천천히 움직인다. 뒤덮고 있던 이불도 천천히, 스스로 뒤덮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생태원 에코리움 사막관에 둥지를 틀게 될 사막여우와 달리 늘보 원숭이는 갈 곳이 없다. 기존 동물원을 포함해 새롭게 갈 둥지가 녹록치 않은 국내 사정 때문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국립생태원 한 켠에서 이불을 덮고 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배근 생태원 동물관리처장은 "밀수된 개체 등을 몰수했을 때 동물원 등 기존 시설로 수용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적 멸종위기종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전문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도 '멸종위기종'이라고 말하는 국내 몇 안 되는 포유류 전문가의 첨언이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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