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와 '쌀국수'...아픈 역사의 산물 '유랑의 음식'
'부대찌개'와 '쌀국수'...아픈 역사의 산물 '유랑의 음식'
  • 나경연 인턴기자
  • 승인 2016.01.11 18: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pixabay

 



보통 쌀국수 '1인분'에는 100그램 정도의 쌀 '국수'가 들어간다. 이 쌀국수 '한그릇'의 칼로리는 400칼로리 정도로 같은 양의 쌀밥을 식사로 했을 때보다 칼로리 섭취량이 절반 정도 밖에는 안된다. 쌀국수로 식사를 하면 평소보다 더 빨리 시장기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담백하고 맑은 소고기 국물에 각종 채소가 들어간 쌀국수는 적당한 영양을 갖추고 있고 칼로리까지 낮아 한끼 웰빙 식사로 손색이 없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고추나 소스 등을 첨가해 달콤하거나 얼큰하게 먹을 수 있어 애주가들의 해장식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어 웬만한 도시마다 한국 음식점은 없어도 베트남 쌀국수집은 하나씩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처럼 쌀국수에 소고기를 넣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베트남 쌀국수'를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부터 즐겨 먹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될 수 있었을까.

쌀을 주 식량으로 하는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먹은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고기 국물에 말아먹는 형태의 쌀국수가 나온 것은 19세기 말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로 전해진다.

쌀 생산이 생업의 거의 전부인 농경국가였던 베트남에서 농사일을 함께하는 소는 단순한 가축을 넘어서는 존재로 소를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래서 베트남인들은 천년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아 일찍부터 '면'을 즐겨 먹었지만 지금처럼 소고기를 함께 넣어서 먹지는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뒤 베트남 전통 음식인 쌀국수에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이 즐겨 먹던 소고기를 넣어 먹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쌀국수가 생겨났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북부 하노이를 중심으로 지금과 같은 소고기 쌀국수가 자리를 잡게 됐다.

이후 베트남은 독립전쟁을 거쳐 프랑스를 축출했지만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은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다. 

6.25가 발발하자 당시 북한에 거주했던 많은 이들이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던 것처럼 공산 정권이 들어선 북부 베트남에서도 많은 베트남인들이 공산 정권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생계 수단으로 자신들이 즐겨먹던 '쌀국수집'을 열게 되면서 소고기를 넣어 먹는 '프랑스식 쌀국수'는 베트남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극도로 궁핍했던 50~60년대 미군 주둔기지 주변을 중심으로 생겨난 '부대찌게'처럼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에도 외세의 침략이라는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셈이다. 

이후 월남이 패망하는 과정에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이른바 '보트피플'이 돼서 미국과 유럽 등지로 흩어지면서 역설적으로 베트남 쌀국수는 전세계로 퍼지게 된다.

이른바 '먹방'과 '쿡방'이 대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올해 '외식 소비 트렌드'로 '맛있는 음식'과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결합한 '미각 노마드'를 꼽았다. '맛'에서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아 음식점을 '유랑'하는 것이 트렌드라는 설명이다. 

사람만 음식을 찾아 유랑하는 식도락가가 아니라 음식에도 '유랑의 음식'이 있다면 외세의 침략과 보트피플이라는 역사적 슬픔이 베어있는 '베트남 쌀국수'만큼 유랑의 음식에 어울리는 음식이 없을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