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 실험으로 무너진 지상낙원… ‘비키니섬’ 죽음의 땅으로 변해
수소폭탄 실험으로 무너진 지상낙원… ‘비키니섬’ 죽음의 땅으로 변해
  • 황신혜 인턴기자
  • 승인 2016.01.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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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실시 후 70년이 지났지만 암 환자·기형아 속출


▲ 비키니 수영복의 명칭은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지였던 비키니섬과 연관되어 있다. 핵폭탄 실험 이후 섬의 모양이 비키니와 유사해서 섬 이름이 비키니 섬이 됐다는 이야기와 배꼽이 보이는 수영복이 가져왔던 문화적 충격이 원자폭탄 같았다해서 수영복 이름이 비키니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브라이언 하일랜드가 1960년 발표한 Itsy Bitsy Teenie Weenie Yellow Polka dot Bikini(아주 작고 노란 물방울 무늬 비키니)라는 노래는 '비키니섬의 슬픔'을 연상시켰다. 이 노래에는 비키니를 처음 입은 소녀의 두려움이 묘사되어 있는데 비키니 섬의 불안한 모습과 겹치면서 당시 세계적인 반핵 운동의 분위기와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환경TV뉴스]황신혜 인턴기자 = 태평양 한가운데 산호로 둘러쌓인 비키니섬은 원래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을 실험한 이후 비키니 섬은 아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미국은 1946년 비키니섬 주민들에게 2년 후에 돌아올 수 있다고 약속하며 강제이주 명령을 내렸다. 비키니섬에 거주하고 있던 167명의 주민들은 마샬제도의 과잘란, 에짓, 킬린 등 인근 다른 섬으로 터전을 옮겨 난민생활을 해야 했다. 

미국은 비키니섬에서 1946년부터 58년까지 23차례 수소폭탄과 핵폭탄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으로 인근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고 자연환경이 파괴됐다. 1954년 3월 1일 실시한 수소폭탄 ‘브라보’ 실험으로 3개의 산호초 섬이 사라졌고, 실험 당시 발생한 낙진은 150km 떨어진 롱렙섬에까지 떨어졌다. 수소폭탄 실험으로 발생한 연기를 마신 주민은 후두암에 걸렸고, 주민들은 죽어갔다. 


비키니섬의 수소폭탄·핵폭탄 실험 흔적

 

1968년 원주민들은 미국 정부의 방사능 오염으로 안전하다는 판단 아래 비키니 섬으로 돌아갔다. 

수십 차례 핵폭탄 실험을 한 이 섬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비옥했던 땅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변했고, 바다거북의 시체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비키니 섬으로 올라온 바다거북은 방사능으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해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부분 바다와 반대방향인 육지로 가다가 바다갈매기에 잡혀먹거나 말라죽는 것이다.   

비키니섬으로 돌아간 원주민들은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백혈병으로 숨지기 시작했다. 신장암, 갑상선암, 폐암, 위암 환자가 속출하고 기형아가 태어나는 등 주민들은 고통을 겪었고 1978년 어쩔 수 없이 다시 고향을 등져야 했다. 

70년이 지난 지금 비키니섬의 생태계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섬 곳곳에 휴양지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에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에서도 상당수의 방사선 물질이 방출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폭탄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방사선 물질이 적다는 시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소폭탄이 터지려면 우선적으로 원자폭탄이 터져야하기 때문에 제논, 크립톤, 세슘 등 200~300여개의 방사선 물질이 방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가 방사선으로 오염됐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지역이 암반지역이지만 비나 눈이 올 경우 방사선 물질이 인근 지하수로 유입돼 지하수 오염과 토양, 식물이 오염돼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며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