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뉴스] 신준섭 기자 = 최태원 SK회장이 배우자 노소영씨와 이혼하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29일 인터넷 상의 기사는 최태원이란 이름으로 뒤덮였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도 최 회장의 이름은 하루 종일 순위를 차지했다.

사실 한 것도 아니고 '하겠다'고 한 거다. 

그럼에도 재벌가의 여자문제와 혼외 자식, 이혼 등 재연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재벌판이라 할 수 있는 온갖 '흥미'로운 요소가 더해지며 최 회장의 '글'은 포털을 점령했다.

최 회장의 드라마 같은 '개인사'가 포털 한 축을 점령했다면 다른 한축은 위안부 관련 한일 외무장관 합의가 차지하고 있다. 한쪽이 흥미롭지만 온전히 개인사라면, 다른 한쪽은 개인사인 동시에 하나하나가 그대로 아픈 '역사' 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루종일 기사를 들여다 본 기자 입장에선 위안부라는 제대로 청산해야 할 '역사'보다 재벌 회장의 '불륜'이라는 개인사가 더 주목을 받은 것 같아 더 입맛이 씁쓸하다. 

아무튼 '역사적' 타결이라는 청와대와 여러 언론의 논조에 동감한다. '역사적' 이지만 문제는 '역사'의 방향성과 그에 대한 평가다. 

초반 뉴스 보도만 보면 양국 외교부 장관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역사적인 타결을 이룬 듯한 모습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조국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 번 죽였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왜 그랬을까.

그 얘기는 이렇다. 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가 돈을 내겠다고 한 양국의 공동 발표가 있었던 지난 28일로부터 하루 지난 이날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이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갔을 때의 상황이다. 일본과의 합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간 자리다.

할머니들은 조 차관에게 일본과 한국이 똑같다며 쓴소리를 쏟았다. 일본 정부마냥 집 지어주고 생활비 준다는,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조 차관이 설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원한 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었지만 전날 설명에 '배상'이란 단어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뿐 아니다. 특히 올해 90세인 김군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피해자는 우린데, 정부가 어떻게 함부로 합의를 하냐." 너무나 논리정연하다. 

정부는 '우리가 합의했으니 돈받고 마음 달래라'는 종용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제3자가 됐다. 현 정부의 협상 인원 중 누구도 위안부 경험을 한 이는 없는데도 합의는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당연한 소리다.

이에 앞서서는 헌법재판소가 1965년 일본을 상대로 더 이상의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정한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구조적으로 일본에게 법적 배상을 요구할 수 없는 현 구조에 대해 항의하자 정부가 일본 편을 들어 준 판결이다. 불과 6일 전인 지난 23일 있었던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 박정희 정권이 돈과 배상 문제를 맞바꾼 1965년의 '한일 협정'도 역사듯 말이다.

'불가역성', 이번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합의 내용 가운데엔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시 논의하지 않는다'는 식의 '합의'도 들어가 있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이제 현실의 문제가 아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적'인 합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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