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만난 고경표와 '응팔' 보는 맛 돋우는 정봉이형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환경TV뉴스] 홍종선 기자 = ‘응팔앓이’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빠짐없이 챙겨 보고 열렬히 응원하지만 푹 빠져들지 못하는 캐릭터가 있고 그 대상은 개인의 취향과 안목에 따라 다르다. 시청자 게시판을 둘러보니 고경표에 대해 “별다른 매력 없는 그의 출연분이 왜 이렇게 많은가”라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그건 고경표가 아니라 선후의 캐릭터가 평범한 것”이라며 “주인공은 꼭 매력 넘쳐야 한다는 법도 없다”고 맞서기도 한다. 류혜영에 대해서는 “초반 출연분량이 극히 적었던 그가 왜 갑자기 여주인공이 됐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가 하면 “예정된 극의 흐름일 수도 있고 연기 잘하면 비중 느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옹호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고경표와 류혜영의 호연에 한 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두 사람의 이전 출연작, 각각 영화 ‘차이나타운’이나 ‘그놈이다’ 때보다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호감이 증폭됐다. 특히나 고경표에 대해선, 우스갯소리지만 사적인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다.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배우 고경표

 


지난 5월, 예순여덟 번째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이던 프랑스 남부 해안가마을 칸에서 고경표를 만났다.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제작 폴룩스픽처스)이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해변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수백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서울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이기도 했겠지만, 고경표는 기자가 아니라 오랜 친구들을 만난 양 편안하게 수다를 풀어놓았고 인터뷰는 꽤나 유쾌하고 진솔했다. 가벼운 술자리로 이어졌다. 고경표는 참 복스럽게 먹었다. 다소 살집이 올라 있는 그였기에, 또 편안한 분위기였기에 누구랄 것 없이 “명색이 배우가 이렇게 먹어도 되느냐, 체중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고경표는 살을 빼려는 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빼겠노라”며 “촬영이 없으니 살이 붙는 것 같다”고 답했다. 기자는 “캐스팅 되고 나서 급하게 빼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참견하며 “출연 예정인 작품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고경표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차이나타운’을 본 많은 관계자들의 러브콜이 곧 있을 터이니 낙담 말라고 위로했다.

칸을 떠나기도 전에 고경표의 ‘응답하라 1988’ 캐스팅 소식이 들려왔다. 순간 배신감이 들었다. 해변에서의 기분 좋은 인터뷰는 다 무엇이며 웬 오지랖 넓은 ‘남의 살’ 걱정이었나, 허망했다. 하지만 제작진으로부터 ‘절대 함구’ 명령이 떨어졌다는 소속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신인으로서 엄명을 어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해가 먼저 왔고 ‘고등학생 역할 소화를 위한 폭식이었나’라는 추측이 뒤따랐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첫 회가 방송된 지난 11월, 선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칸에서 봤던 약간 살 오른 정도의 모습이 아니라 날렵한 이목구비가 젖살에 묻히고 턱은 두 개에 뱃살마저 살짝 보이는 진짜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김선영의 장남 선우는 공부 잘하는 전교회장이어서만 모범생이 아니다, 온 동네 사람이 손사래 치는 엄마의 밥을 맛있게 먹고 한밤중 부쳐 주는 호박전을 마다않는 착한 아들이다. 새벽 1시까지 ‘자지마 독서실’에서 미동 없이 자리를 지키는 고2(이제는 고3) 학생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래, 살찌울 만했다’ 싶으면서, 살짝 느꼈던 서운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되레 고경표의 선우 만들기 과정을 미리 보았다 싶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물론 고경표가 연기를 잘해서 보태진 호감이다. ‘차이나타운’에서 모두의 ‘엄마’ 김혜수에게 대립각을 세우던 간 큰 건달 ‘치도’를 지워서만이 아니라, 선우의 삶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호연에 보내는 박수다.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배우 류혜영

 


성동일과 이일화의 큰딸 보라(류혜영)는 고등학생과 동네사람들 위주로 풀어낸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제작진이 느꼈을 1980년대 역사와 사회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는 중요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서울대생, 동생 덕선이(혜리)와 노을이(최성원)는 기본, 엄마 아빠를 넘어 동네 어른들까지 두려워하는 ‘까칠이’로만 보였다. 점차 속 깊고 의외로 인간미 있는 인물임이 드러나더니 거리시위에 참가하는 운동권학생으로 그려졌고 서울미문화원점거농성(실제로는 1985년) 참여를 계기로 수배자 신분이 되면서 속칭 ‘블랙리스트’에 오른 자신의 밥벌이와 사회진출을 고민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 시청자 지적대로 초반 출연 분량이 미미했고, 또 등장분이 늘어난 뒤에도 쌍문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극의 기둥줄거리와 동떨어져 사회상을 대변하고 있던 보라였기에 선우와의 러브라인과 여주인공으로의 부상이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된 스토리라면, 제작진의 배우 류혜영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것 아닐까. 캐릭터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러다 연하 고등학생과 연애를 하더라도 그것을 물 흐르듯 소화해 내리라는 연기력에 대한 신뢰. 초반의 적은 등장, 성동일네 가족의 ‘떼 샷에 주로 등장할 뿐 단독 컷이 거의 없었더라도 추후 여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을 발산할 것이라는 기대. 연극과 다양성영화에서의 단련을 통해 단단해진 눈빛과 연기력이 전폭적 믿음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그렇게 다소 평범해 보이는 두 모범생, 두 속 깊은 장남 장녀가 한창 열애 중이다. 집안의 미래를 짊어지고 책을 끼고 사는 선우와 보라다 보니 데이트는 단조롭고 골목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주로 심야에 입을 맞추고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첫 키스가 강렬했다. 선우가 아닌 고경표의 수컷 냄새가 진동했고 물러서지 않는 류혜영의 당당함이 보라의 여자 변신을 예고했다. 예상보다 길었던 두 사람의 키스 타임, ‘응답하라 1988’의 공식 첫 커플로서 청춘드라마에 긴장도를 높이는 순간이었다.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배우 안재홍

 


주변에서 “정봉이 보려고 응팔 본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라미란 김성균 부부의 장남 정봉이형(안재홍)이 등장할 때 가장 흐뭇하고 즐겁다. 그에게 가장 친근감 가는 이름은 김정봉도 아니고 정환이 형도 아니고 그냥 정봉이형이다. 안재홍은 그냥 정봉이형이다.

안재홍은 연기를 해도 너무 잘한다. 과자 치토스의 스티커를 그처럼 진지하게 긁고, 그처럼 처절하게 혹은 달관한 표정으로 ‘꽝’을 맞이하고, 그처럼 마치 처음 스티커를 본 듯 해맑게 다시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덕선이가 정환(류준열)에게 선물한 핑크색 셔츠를 탐내 보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동생의 거절 앞에, 카메라가 클로즈업 않는데도 찔끔 눈가에 눈물이 맺는 배우다. 한 판에 50원 짜리 갤러그와 버블게임에 행복한 눈빛을 반짝이는 그다.

안재홍이 화면에 잡히기만 해도 벌써 뇌는 웃을 준비를 하고, 연기가 단락 지어질 쯤에는 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니 어쩜 연기를 저렇게 잘해! 도룡뇽이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동룡(이동휘)와 함께 출연한 영화 ‘도리화가’를 아직 못 봤다, 봐야겠다. 댄스가수 뺨치게 춤 잘 추는 이동휘는 어느새 CF를 찍었던데, 안재홍도?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가운데가 이민지. 왼쪽이 혜리(덕선 역), 오른쪽이 이세영(왕조현으로 불리는 조현 역). 쌍문여고 삼총사

 


혼자서 원맨쇼 하듯 시청자를 행복하게 하던 정봉이형이 주로 장만옥으로 불리는 덕선이 친구 미옥이(이민지)와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대학 들어가는 속도는 느린(대입 7수 째) 정봉이형이 연애는 LTE급이다, 편지 한 통을 못 건네 미옥의 병실 앞을 맴맴 돌더니 벌써 입맞춤.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정봉이형은 미칠 듯 뛰는 심장의 박동이 미옥을 향한 설렘 때문인지 심장병으로 인한 것인지 확인을 원했다. “확인”을 나직이 말한 후 성큼 다가서는 정봉이형, 따뜻한 정봉을 이미 마음에 품은 미옥은 눈을 감는다. 보는 이를 설레게 했던, 풋풋해서 더 아름다운 ‘모태 솔로’들의 뽀뽀였다.

최근엔 ‘비엔나커피 거품키스’도 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에 못잖은 낭만, 그리고 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더니 미옥이가 저렇에 예뻤나 싶게 뽀얀 피부와 매끈한 다리를 뽐내고, 정봉이형은 듬직하고 잘 생겨 보인다. 내 눈에 콩깍지일까.

출처=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응답하라 1988’의 3호 키스커플은 누가 될까. 덕선이(혜리)를 좋아하는 두 남자, 정환이(류준열)와 택이(박보검). 덕선이는 누구와 입을 맞출까. 세 사람 혹은 세 배우에 관한 얘기는 3편에서 나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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