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박용현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환경TV뉴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12월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 법은 긴 이름만큼이나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거쳤다. 이름이 너무 길다 보니 '웰다잉(well-dying)법'으로 약칭되기도 한다.

12월9일 보건복지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사실상 이 법률안 한 건만을 의결하기 위해 회의가 소집됐던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보건복지위원회소속 여야의원 모두 웰다잉이라는 이슈가 가지는 사회적 관심과 의미가 매우 크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에 대한 논의가 지속돼 왔지만, 환자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국가의 국민에 대한 생명유지 의무 등에 대한 찬반양론이 대립되면서 뚜렷한 결론 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되고 있던 상황에서 보건복지위원회의 이번 의결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또한 의료기관에서도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연명 의료를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를 두고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갈등을 겪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반가운 일이다.

연명치료 중단, 존엄사, 안락사 등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이다.

서울 보라매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 가족의 요청 때문에 의식불명의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환자가 곧바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해당 의료진은 7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대법원에서 살인방조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후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은 큰 전환점이 됐다. 1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낸 김모 할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연명 의료 중단할 것을 요구했으나 세브란스 병원이 이를 거부하며 법정까지 간 사건인데, 2009년 대법원은 처음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므로 환자의 사전 의료지시 또는 추정적 의사에 의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결이었다.

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활성화됐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웰다잉법'이 통과됐다고 할 수 있다.

웰다잉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호의적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고, 조사대상의 92.4%가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 등에서는 이미 제도화돼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1976년 캘리포니아주가 생전유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자연사법 제정을 시작으로 1989년 미국 41개주가 사전의료의향서 관련법을 제정했고, 대만은 200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05년, 오스트리아는 2006년에 환자 자기결정법을 제정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6개월 밖에는 더 살 수 없다는 알고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곧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옛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이 만드는 최고의 발명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웰다잉은 단순히 잘 죽는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준비함으로써 후회 없는 죽음을 맞자는 것이 웰다잉의 본뜻일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웰빙(well-being)이 인기를 끌면서 한편에서는 웰빙의 일환으로 웰다잉도 함께 인기를 끌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건강한 삶의 가치와 함께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에 대한 고민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는 베이비 붐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웰다잉법'의 보건복지위 의결은 그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이 법률안이 이번에 보건복지위를 통과하기는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 법이 가지는 생명경시의 우려와 품격 있는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에 관한 또 다른 논의가 법사위에서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의원들의 마음이 내년 4월 총선이라는 콩밭에 가 있는 여의도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번 19대 국회 임기 안에 최종 통과될 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박용현 교수 약력>
-서울대 의대 박사
-영국 버밍엄대학교 대학원 석사
-현(現)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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