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뉴스] 신준섭 기자 = 15일 새벽 2시 45분. 공무원들도 기자들도 다 퇴근하고 적막한 정부세종청사 복도에서 웬 여성의 목소리가 '중얼중얼' 들린다. '귀신인가?' 스산한 마음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봤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심지어 벽 속이다. 정말 귀신인가 머리칼이 쭈뼛 선다.

소리가 나는 곳은 각 층마다 설치돼 있는 엘리베이터 안쪽 벽. 

알고 봤더니 세종청사의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LCD 화면의 영상 안내다.

정체모를 여성의 목소리는 국정 홍보를 위해 제작된 홍보물 속 내레이션이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늦은 시간 들려 온 '귀신 소리'의 정체다.

내용을 들어봤더니 "물을 절약하는 습관은.." 하며 '공자님' 말씀을 한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문득 아무도 없는 시간까지 이런 방송을 24시간 틀어 놓고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른 엘리베이터 몇 곳을 더 돌아봤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밤을 지새며 일하던 이들이 퇴근할 때 '외롭지 말라'고 틀어놓은 걸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과 함께 '물 절약'도 좋지만 당장 '전기 절약'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좀 '고까운' 생각이 들었다.

'전기 드라큘라'도 아니고 '전기가 부족해 전기가 부족해' 하며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겨울이면 겨울이라고 공공기관의 냉난방을 제한하고 심지어 민간 쇼핑센터의 실내 온도까지 규제하려는 정부다.

국민들에게는 '한 톨'의 전기라도 아끼라며 대대적인 전기 절약 캠페인을 펼치고, 숱한 반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원자력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려는 정부다. 

밤에 잘 때 TV는 끄고 자는 것은 일반 가정에서도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 세종청사에선 상식이 아닌 듯한 생각이 들어 귀신을 보진 않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작은 물 절약 습관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웃게합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 기자의 머리칼을 쭈뼛하게 만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작은 습관'이 필요한 건 전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곳은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청사다. 기자가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청사의 습관이 바뀌길 기대해본다.   

 

정부세종청사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돼 24시간 방송되는 국정 홍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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