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권력보다 언제나 우월하다"

출처:포커스뉴스

 


[환경TV뉴스]유재광 기자 = 배우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내 영화인 가운데 최초로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받았던 2015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배우는 '가오'로 산다. 가오는 일본어로 '얼굴' 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 체면이나 더 나아가 허세까지도 지칭한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3세의 비리와 맞서는 열혈 형사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황정민 씨의 극중 대사로 유명해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의 '원 저작권자'가 강수연 위원장이라고 한다. 

극중에선 형사들끼리 한 말이지만 실제에선 강수연 위원장이 영화인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돈은 없어도 살지만 영화배우로서 가오를, 자존심까지 포기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외쳤던 황정민이 20일 저녁 열리는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 안가기로 했다. 황정민 뿐 아니라 하정우와 손현주, 유아인, 그리고 김윤진과 전지현, 김혜수, 엄정화, 한효주 등도 대종상 시상식 불참을 결정했다. 모두 남·여 주연상 후보로 지목된 배우들이다.

남여 주연상 후보로 지목된 배우들이 일제히 영화제 불참을 선언하게 된 대한민국 영화제 사상 초미의 일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과 이유는 바로 영화배우들의 가오와 관련이 있다. 발단은 조근우 위원장의 '대리수상 불가' 발언으로 촉발됐다.

지난 10월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조 위원장은 "국민이 함께하는 영화제인데 대리 수상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수상자를 복수로 선정해 놓고 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에겐 상을 주지 않고 참석한 배우에게 주겠다는 구상이었다. 한마디로 '상 받고 싶으면 영화제에 참석하라'는 일방적인 선포였다. '대종상이 어떤 상인데 받고 싶으면 직접 와'라는 권위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 위원장의 대리수상 불가 발언은 영화제 자체의 권위를 크게 훼손했을뿐 아니라 영화배우들의 가오까지 크게 훼손했다. 

주연상을 연기력 등이 아닌 시상식 참가 여부로 주겠다는 것은 영화제 주연상의 위상을 연기상이 아닌 '참가상' 정도로 스스로 깍아내렸고, 영화배우 입장에서도 대종상 트로피에 연연해 하는 '구걸상'의 모양새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배우 입장에선 상 받기 위해 영화제 눈치나 보는 배우라고 욕먹을 수도 있는, 상을 받아도 '찜찜한'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배우가 스스로의 가오를 깍아 먹으며, 상을 받아도 영화팬과 대중의 손가락질이 불을 보듯 뻔한 영화제에 참석 하겠는가.     

거꾸로 생각해 대종상이 그토록 권위 있다면, 본인이 수상하면 영광스럽고 동료가 타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영화인들의 축제라면, 참석 자체가 서로의 가오를 세워주는 일이라면 어느 영화배우들이 해외 체류나 케이블 드라마 촬영 등 이런저런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는가. 

권위는 강요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올 수도 없다. 권위의 형성과 행사는 모두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와 복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 인정 못해' 하는 순간 권위는 사라져 버리고, 그 권위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버린다. 

나아가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권위의 행사는 그 의도한 바를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권위적'이라는 반발과 '꼰대질 하고 있네. 뭐라는 거야' 하는 비웃음을 부를 뿐이다. '배우없는 영화제'라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한 이번 대종상 영화제 사례가 단적인 예이다.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권위는 언제나 권력의 외부에 있고 권위는 권력보다 언제나 우월하다. 권력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무언가를 하게 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돈이 될수도 있고 경찰권같은 직접적인 물리력이 될 수도 있고 교과서 편찬이라는 지적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도처에서 권위를 상실한 '권력질'이 벌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대종상 시상식은 20일 오후 7시 2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고 KBS2를 통해 생중계 된다 한다. 권력과 권위를 혼동하고 계시는 분들께 시청을 권유하고 싶다. 

배우없는 영화제라는 '권위 없는 권력질'이 초래한 자승자박의 결과에서 뭔가 반면교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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