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에너지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유가는 40달러대에서 요동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잘 나갈 것 같던 전세계 수많은 LNG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어려워졌다. 유가에 연동된 계약가격 탓이다. 

미국의 헨리허브 가격 연동방식에 잠시 열광하던 가스수입국들의 수지계산도 새로이 바빠진 듯하다. 

전통에너지와 시소(seesaw) 관계인 신재생에너지의 그리드패리티도 어려워졌다.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정보혁명은 스마트그리드를 위시한 에너지신산업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정세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미국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 넘쳐나는 초경질 원유를 해소하기 위해 원유수출 금지규정을 철폐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히고 있다. 

미국 내의 찬반 논란이 있지만,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 중이다. 기후대책에서도 자신감이 묻어나고, 호전된 경제 상황에 근거한 금리조정 전망에 따라 전세계의 주가가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 시각에서 에너지안보는 새롭게 다가온다. 세계적으로 남아도는 시기에 물량의 안정적 확보에는 당분간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가격 변동성에 대처하는 정교한 금융기술이 더 중요해 보인다. 

기상조건의 변화폭이 커진 것도 동·하계 설비예비력 기준의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서는 에너지시설이 어느 한 곳 만만히 들어설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추가 발전설비 완공으로 전력위기를 어렵사리 극복하나 했더니, 초고압 송전망 건설에 대한 수용성 확보가 최대의 에너지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규 원전부지 선정문제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주어진 외부상황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으로 진화하는 것이 생명체 존속의 기본원리다. 

이웃 일본을 보자.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2016년 전력소매시장의 전면 개방, 2017년 가스소매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얼마 전 참석했던 한·중·일 삼자 간 에너지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제는 가스 가격을 넘어서 기존 가스계약의 목적지조항의 경직성을 반독점법의 관점에서 공동대처해 보자는 일본 측 대표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는 가스공사 이외의 사업자가 수입할 수 있는 가스의 용도는 자가소비에 한정되고, 다른 목적의 거래는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현실이 머릿속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Post-2020 체제에서 우리가 공언하고 있는 '2030년까지 총 37%의 CO2 감축' 목표는 발전부문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다. 여러 시나리오 분석이 시사하듯, 결국 석탄과 LNG 간의 전력생산비용을 비교해 의사결정이 이뤄질 듯하다. 

지금과 같이 세계 가스시장이 우리에게 유리한 여건일 때 그 혜택을 극대화하도록 국내 가스시장 제도를 유연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해 있기에는 우리 처지가 좀 다급한 것 같다. 과거 경제개발시대에 에너지 부문이 그 역할을 훌륭히 감당해내는 데 밑바탕이 됐던 '정부 주도의 값싸고 질 좋은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라는 정책가치는 지금과 같이 변해버린 국내외 여건에는 더는 부합하기 어렵다. 

얽히고설킨 규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시대에 맞는 에너지정책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은, 정부가 이제는 내려놔야 할 것과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을 다시 분별해 보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주창하는 에너지신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되는 데는 민간투자가 관건이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 신산업의 핵심은 스마트기술이 뒷받침된 전력부문에 있는데, 지금의 경직된 구조 속에서는 민간의 창의적 참여 기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망한 신에너지기업이 성장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한결같이 그 바탕에 자유화된 시장이 있다. 우리 역시 그 토대가 되는 제도의 개혁부터 시작해야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지향하는 '수요 중시'의 에너지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반응하는 가격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새로운 진입이 가로막힌 에너지산업은 개방화의 물꼬가 트여야 한다. 지난 시절 별로 어렵지 않게 추진되던 에너지 관련 '계획'들도 이제는 실행 여부는 고사하고 수립 자체가 쉽지 않다. 

원자력이나 신재생 같은 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하는 부분 이외에는 과감히 시장 기능에 맡기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분야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의 고전적인 예는 에너지안보(security)나 환경 문제였다. 정부 역할의 논리적 근거였던 이 사례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시장 기능에 흡수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돼 가고 있다. 물론 선진국 이야기다. 

안전(safety) 문제와 에너지를 둘러싸고 빈발하는 사회적 갈등이 새로운 외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반면 우리는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도 아직 선진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을뿐더러, 설상가상 후자의 문제로 골머리를 심하게 앓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근 반기문 총장의 '새마을운동 아프리카 붐'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3년 전 아프리카동맹국(AU) 회의에서 '한국 에너지정책의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참석자들로부터 에너지 인프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간 과정에 대해 부러움에 찬 질문을 여럿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경제 개발 경험과 역사는 멋진 수출품으로 남겨 두고, 우리의 경제 수준에 걸맞는 보다 정교한 고급의 선진 정책으로 에너지정책도 진화돼야 한다.   

<김남일 선임연구위원 약력>
-미국 오하이오주립대(OSU) 경제학 박사
-현(現)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econews@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