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뉴스]유재광 기자 = 기러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러시아 사할린 등 유라시아 대륙의 북극권에서 여름을 나고 남하하기 시작해 이맘때쯤부터 우리나라를 찾아 가을,겨울을 나고 3월쯤 '고향' 러시아로 돌아간다. 

마침 5일 오전 기러기가 북녘땅을 넘어 우리나라로 향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은 큰기러기와 쇠기러기들이 북한 개성 송악산과 장단반도를 뒤로하고 남녘으로 남하하는 모습이 담겼다.

출처:포커스뉴스

 


기러기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 북쪽에서 삭풍(朔風)을 타고 온다 해서 '삭조'(朔鳥), 서리 소식을 전해준다 해서 서리 '상'(霜) 자와 서신(書信) 할 때 '펼 신' 자를 써서 상신(霜信) 이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에 '추위'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인 셈이다.

이렇게 가을을 타고 남하한 기러기는 강원도 철원과 인천 강화도, 경남 주남저수지와 낙동강 등 우리나라 전역의 논이나 밭, 하천부지, 해안가 등  주로 앞이 훤히 트인 개활지에서 집단 서식한다. 알은 한번에 4~5개 정도 낳는데 암컷이 알을 품고 4주 정도가 되면 부화한다. 

기러기는 특히 '금슬'이 좋기로 유명한데 암수 어느 한쪽이 죽으면 평생 다른 짝과 함께 살지 않고 혼자서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랑이 '기럭아비'(안부雁夫)를 앞세우고 신부집을 찾아가 '나무기러기'(목안木雁)를 전하고 초례를 치르는 우리나라 전통 혼례 의식을 기러기 '안'(雁) 자를 써서 '전안례'(奠雁禮)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와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기러기의 절개와 자식 사랑,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교육 등을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사며 묵묵히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아빠들'을 '기러기 아빠' 라고 부르게 된 것도 기러기의 이런 가족에 대한 지극정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목안 [木雁]. 혼례시 친영례에서 교배례에 앞서 치러지는 전안례에 사용되는 의물(儀物) (출처:국립아카이브 홈페이지)

 


    

하지만 원앙은 동물 분류학상 같은 '기러기목'으로 분류되지만 '기러기과'가 아닌 '오릿과'에 속하는 조류로, 알려진 것과 달리 수컷 원앙은 암컷이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수시로 짝을 바꾸는 '바람둥이'라는 것이 조류학자들의 말이다. 

그런데도 원앙을 새겨 넣은 이불과 베개, '원앙금침'이 화목한 부부의 상징처럼 된 것은 아니러니다. 아마도 '질투를 금한다'는 칠거지악으로 대표되는 남존여비 사상과 다산 기원이 맞물리면서 원앙의 행태를 은연중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남성의 시각이 반영된게 아닌가 추정만 할 뿐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들은 줄고 있고, '더이상 못참겠다'며 노년에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을 신청하는 남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60대 이상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가 지난 2010년과 비교하면 작년의 경우 불과 4년 만에 7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가정에서 고립감을 느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등의 이유라고 한다. 그 이면에는 돈 벌어다 줄 때는 집안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먹혔지만 은퇴하고 나니 아내도 자식들도 예전처럼 자신을 대하지 않는다는 상실감과 박탈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나빠진 경제 사정 때문이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줄어든 것이든, 정말로 자신의 꿈과  사랑, 희망을 찾아 새 길을 가려는 것이든,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다. 

출처:PIXABAY

 


기러기들은 V자를 그리며 집단적으로 난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맨 앞에 나는 기러기가 가장 힘들 수 밖에 없다. 누가 서느냐? 그날 가장 컨디션이 좋은 기러기가 선두에서 난다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자리를 교체한다. 

선두에 선 놈은 선두에 선대로, 2선, 중간, 후미에 선 놈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수시로 울음 소리를 내며 서로를 격려한다고 한다.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다. 기러기들이 사할린에서 한반도까지 수만리를 날아올 수 있는 이유다.   

'같이 가야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마침 기러기들이 날아오는 철이다. 힘들고 외로워도 주위 돌아보고, 고개 들어 하늘 한번 처다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수만리를 '함께' 날아온 기러기 무리가 보일지. 오늘 아침 기러기가 휴전선을 넘어 오는 사진을 봐서 하는 말이다.

큰기러기와 쇠기러기들이 북한 개성 송악산과 장단반도를 뒤로하고 남하하는 모습(출처: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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