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지 사기 치는 조직이 아니다"

[환경TV뉴스]정택민 기자 = 지난 11일 육군 50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서 수류탄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교관 1명이 숨지고 수류탄을 손에 들었던 훈련병은 한쪽 손목을 잃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수류탄에 현역 군인이 목숨을 잃는, 그것도 조작 실수도 아닌 수류탄 결함으로 추정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다. 희생자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인 대한민국의 '아들'들이다.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기자의 훈련병 시절이 떠올랐다. 훈련장에서 수류탄을 받은 후 신호를 받아 던지자 불과 몇 초 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울리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루 종일 온 정신을 집중해 훈련을 받았고, 실전용 수류탄을 손에 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매우 두렵고 떨렸다. 

사고 당시 부상을 당한 훈련병을 비롯해 전우의 사고를 눈앞에서 본 다른 훈련병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폭발한 수류탄이 지난해 경상북도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 수류탄 폭발사고 당시 터졌던 수류탄과 같은 설비에서 생산된 동일 제품임이 드러났다. 또 지난해 탄약 정기시험에서 결함이 발견됐던 수류탄과도 같은 제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의문이 들었다.  

정말 막을 수 없는 사고였던 것일까?

기존에 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을 제외하면, 한 제품에 결함이 발견됐을 때 그와 같은 모든 제품에 대해 전수검사가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지적했던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군은 지난해 검사 당시 결함이 발생한 수류탄과 같은 연도인 2011년에 생산된 제품 6만발에 대해서만 하자 조치를 내리고 사용을 중단시키는데 그쳤다.


그걸로 필요한 조치를 다 취했다고 군은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고는 또 터졌다.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고쳤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군은 이번 폭발 사고 이후에도 훈련병 손목에서 터진 수류탄과 지난해 결함 판정을 받은 수류탄이 '로트번호'(생산연도와 생산라인 등을 문자와 숫자로 표기한 것)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두 수류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데만 급급해 하고 있다. 

생산연도와 생산라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A제품에서 발견된 결함이 B제품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생떼같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전수검사가 필요한 이유다.

같은 사고가 계속 터지고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군은 지난 11일에야 수류탄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예전에 했어야 할 일이다. 

제대로 검증조차 되지 않은 살상무기를 어떻게 자신만만하게 남의 소중한 자식에게 쥐게 할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들 뿐이다. 문득 기자가 훈련병 생활을 할 때 이런 '결함' 수류탄을 손에 쥘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수류탄 뿐만이 아니다. 북한군 총알에 구멍이 뚫리는 불량 방탄복 등 방산 비리와 부실 장비 논란과 의혹이 군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국가 세금 낭비 문제 이전에,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식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기자가 군 입대 당시 입대하는 아들들을 배웅하러 왔던 부모들에게 대대장이 했던 연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귀한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워주셔서 고맙다"며 "이제부터 군이 복무기간 동안 자식들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책임지겠다"는 내용이었다. 

군이 정말로 '책임지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돼 있다면, 장병들에게 주입했던 엄격한 '군기'를 장비 납품과 관리 면에서도 그 이상으로 보여야 하는 게 마땅하다. 

군은 사기(士氣)를 먹고 사는 조직이지, 사기(詐欺) 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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