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 한국 정부조차 '나몰라라'

지난 9일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원폭 투하 70년 추모 행사에 모여 든 인파들

 

[환경TV뉴스] 일본 나가사키=신준섭 기자/ 지난 9일, 영상 35도를 오르내리며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는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본인들이지만 곳곳에 서양인들도 눈에 뗬다. 70년전 이날 오전 11시2분 바로 이 땅에 떨어진 원자폭탄, '팻맨(Fat Man)'으로 인한 사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세계 각국의 인파들이다.

주최측 추산 6700명의 행사 참석자 중에는 일본어로 '히바쿠샤'라고 불리는 방사능 피폭자들과 당시 사망자들의 유족들, 일본 정부 관계자와 각국 대사관 인사들이 모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행사 시작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 사이로 일본 초·중학교생들이 생수와 얼린 물수건을 나눠주며 돌아 다닐 정도니, 무더위가 능히 짐작이 가는 수준이다.

오전 10시35분 피폭자 합창단의 노래로 시작된 행사는 '핵 없는 세상'을 호소하는 마사나오 마이구마(每熊政直) 나가사키 시의회 의장의 개회사에 이어 일본 전통 방식대로 물과 꽃을 영전에 바치는 행사가 진행됐다. 자위대 해외 파병 등 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인 '집단 자위권 법안'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측 인사들이 헌화에 나섰다.

헌화에는 각국 대사관에서 참여한 인사들도 손을 거들었다.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장내로 호명됐다. 하지만 이들 중 주일한국대사관 등에서 나온 한국인 헌화자의 이름은 없었다. 한국인은 일본인 다음으로 원폭에 의한 사망자가 많지만, 이 행사에서 만큼은 잊혀졌다.

영정에 헌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광복 70주년, 잊혀진 이름 '한국인 피폭자'

1945년 두 번의 폭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망한 이들은 각각 14만명, 7만4000명 등 모두 21만4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인구 자료가 폭격으로 다 사라져서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힘들지만, 가장 근접한 피해자 수치를 뽑아 본 자료다.

이들 중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당시 두 도시에 거주하던 한국인 수를 토대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망한 이들은 각각 3만명, 1만명 정도다. 전체 사망자의 19% 정도, 사망자 5명 중 1명이 한국인이었다는 얘기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갔던 이유는 두 지역이 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본 군수산업의 핵심 지역이였기 때문이다. 현지의 미쯔비시 중공업 공장 등에서 무기를 만드는 '노역'을 하기 위해 거의 반강제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전략적으로 두 도시에 원폭이 투하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망자도 사망자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더 문제다. 원폭의 정말 무서운 점은 생존자들에게 방사능 피폭이라는 2차 피해를 안겨줬다는 점이다.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추모 공예물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당시 생존자가 히로시마에 2만명, 나가사키에 1만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중 귀국한 이들은 두 도시에서 각각 1만5000명, 8000명 등 2만3000명 정도라고 한다. 귀국자 중 2000명 정도는 귀국 후 북한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잔류한 이들은 도시별로 각각 5000명, 2000명 등 7000명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두 방사능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강제 노역을 갔다가 말 그대로 '폭탄'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이들에게 일본인들은 "너희 조국으로 가라"라며 매몰차게 쫓아냈다. 당시 6살이던 히로시마 피폭자 이곡지 할머니(76)의 증언이다.

겨우 돌아왔지만, 조국인 한국은 이들에게 일관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 숫자나 얼마만큼의 피해가 발생했는 지에 대한 자료조차 없다. 민간 차원에서 진행한 자료도 제각각이라서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기 힘들다.

1968년 한국적십자에서 조사한 숫자는 모두 2054명이다. 남성 1174명과 여성 980명이다.

반면 10년 뒤인 1978년, 서울 등 일부 지역에 대해 조사한 피해자 수는 남성 1168명, 여성 1206명으로 모두 2194명으로 늘었다.

이후 1981년 한일 양국이 '원폭 피해자 진료 협정'을 맺으면서 일본 전문기관의 진료 혜택을 받을 길이 열리자 3501명이 진료를 희망하고 나섰다. 1200명가량이 더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에 사는 재외 피폭자가 약 3000명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 제각각이다.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이 수치들은 당시 생존자 3만명의 10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확인조차 안 된다. 그나마도 7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점점 줄고만 있다. 평균 나이 82세,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2640여명의 연령대다.

평화박물관의 원폭피해 활동가인 김남수씨는 "정부에서는 단 한 번도 이들의 실태를 조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설령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아도 다음 세대, 다음 다음 세대에 피폭 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공포다. 일본의 원폭 투하 이후 상황을 오랜 기간 모니터링하면서 의학 전문가들이 얻게 된 '알고 싶지 않았던' 지식이다.

원폭 피해자 2세 '환우'들의 얘기를 전하고 있는 원폭 피해 1세대 이곡지 할머니(왼쪽)와 남편 김봉대씨

 

사례도 한국에서만 1300여명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10년 전 36세의 나이로 숨진 이곡지 할머니의 아들, 고 김형률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이곡지 할머니의 남편인 김봉대씨(79)는 "형률이가 전문대학 졸업 후 부산에 있는 집에서 가까운 침례병원에 한 달에 몇 번씩 입원했을 때 병상일지를 봤더니 이게 부모로부터의 유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한국 정부 인권위원회와 대한의사협회에서 5개월 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가정에서 최소한 1명 이상은 유전이 된다고 한다"며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피해 보상 누가 해야 하나
한국 정부도 나몰라라

원폭 투하 70년 행사에서 집단 자위권 법안을 비판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칼날을 세운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의 선언문 중에는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국가로서 책임을 지고 피폭자의 실상에 맞는 충실한 원호 대책을 지원하라"라는 내용이다. 평균 나이 80세의 일본 피폭자들이 다중 암 등 다양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점을 내포한 주장이다.

다우에 도미히사 나가시키 시장

 

하지만 여기서 말한 피폭자에 한국인이 포함됐을 지는 의문이다. 한국 정부조차 관심이 없는 게 한국인 피폭자 문제라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피폭자 및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전혀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약 30건 정도다. 이 소송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맡고 있는 역할은 없다시피 하다.

김남수 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도왔다면 이렇게 오랬동안 소송만 하고 있었겠나"라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나선다면 이들을 돕겠다고 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나선다면 지원한다면서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다"고 비판했다.

일본 내에서 원폭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조차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문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70년 위령 행사에 함께 참석한 일본 비영리기구(NGO) 피스보트의 원폭피해 담당자인 카와사키 아키라씨는 "지난 20년간 10건 이상 한국인 피폭자들의 소송이 진행 중인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이 소송을 돕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원폭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오전 11시02분의 '묵념'

 

그나마 정치권이 원폭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서기는 했지만 소수의 소외된 목소리 취급만 받고 있다. 17·18대 국회 당시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들이 발의됐으나 번번이 파기됐다.

19대 국회에 들어 4개 법안이 다시 발의됐지만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일부 의원들이 이 문제를 주목한 점은 다행이나 2012년부터 발의한 법안들은 3년째 여전히 계류 상태다.

가장 최근인 2013년 6월 '원자폭탄 피해자 및 피해자자손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 등으로 인한 한국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2세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제 국가가 나서서 원폭피해자와 그 자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왜곡된 한일관계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국제정세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 해도 소모적인 법적 논쟁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불분명한 사유를 들어 중대한 기본권 침해에 직면한 원폭 피해자들의 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한국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의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광복 70주년을 코앞에 둔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여전히 '위헌'이라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해야 할 정부의 헌법 외면 속에 원폭 피해자들과 그 다음 세대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는 상황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 중 하나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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