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시절 겪은, 핵무기보다 무서운 원전의 실상 고백…방사능 낙진 250㎞까지도 가능해
간 나오토 전 총리, "세 가지 행운 겹치지 않았다면…"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환경TV뉴스] 오션드림호=신준섭 기자/ "당시 도쿄전력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첫 번째 보고를 받았을 때 안심했었다. 원전이 정지했다고 들었는데, 원래 원전은 위험할 경우 자동으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을 덮친 대지진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일본의 간 나오토 전 총리(현 중의원)가 직접 전한 생생한 회고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지 딱 70년째인 지난 9일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비영리기구 피스보트가 공동 주최한 '피스&그린 보트 행사'의 현장, 크루즈선 '오션드림호' 선상에서 열린 '3.11의 교훈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미래'에 참가해서 밝힌 내용이다. 뒤이어 그가 밝힌 당시 상황은 상상만 해봐도 몸서리가 쳐진다.

간 전 총리는 "두 번째 보고는 후쿠시마 제1원전이 정전됐다고, 세 번째는 모든 기능이 멈췄다는 보고였다"며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냉각이 안 되면 핵연료봉이 녹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급한 상황에 간 전 총리가 촉각을 곤두세운 순간이다.

하지만 대지진 다음날, 도쿄전력은 간 전 총리에게 과열로 핵연료봉이 녹는 현상인 '멜트 다운'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멜트 다운을 '뛰어난' 일본의 원전 기술로 무선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신호가 전송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얘기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간 전 총리는 뒤늦게야 알았다고 한다. 전기가 모두 차단됐는데 어떻게 무선으로 멜트 다운이 일어났다고 전송했을까.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던 일본 원전 안전 신화가 폭삭 주저앉기 시작한 순간이다. 또한 어떤 원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증명해 준 계기이기도 하다.

간 전 총리는 "지금은 알게 됐지만 사실 멜트 다운은 3월11일 지진 발생 이후 4시간만에 시작됐다"며 "도쿄전력도 전기가 나갔으니 파악되지 않았던 것"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어떤 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 간 전 총리가 전문가 그룹을 통해 보고 받은 '최악의 상황' 시나리오는 수십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뒤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 지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한반도 인구 전체인 5000만명이 피난 갈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간 전 총리는 "최악의 상황을 시물레이션 해보니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250㎞ 범위 이내는 모두 피난가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도쿄를 포함해 모두 5000만명이 20~30년 이내에 피난을 가야한다는 보고서였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일본의 뛰어난 원전 기술력이란 안전 장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우연' 행운이 겹친 결과라는 설명이다. 자연 앞에 어떤 안전 장치도 소용없었다는 방증이다.

간 전 총리는 "핵연료봉이 냉각되지 않고 가열돼 안의 압력이 강해지면 폭발하게 되는데, 우리가 접근할 방법도 없었다"며 "우연찮게 연료봉의 약한 부분이 찢어지면서 안의 증기가 빠져 나와 폭발은 면했지만 이건 정말 행운일 뿐이다"라고 몸서리를 쳤다.

이어 "또 냉각수가 없는데 바닷물이 우연찮게 안으로 차면서 그나마 조금 식혀줬으니 최악의 상황으로는 치닫지 않았다"며 "이건 정말 행운이 겹치고 겹쳐서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라고 못박았다.

이런 상황을 누구도 예상 못했을까. 도쿄전력은 사실 2006년 이미 15.7m 정도의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내부 논의를 거쳤다. 하지만 일은 발생했다. 이유는 안이한 기술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간 전 총리는 "도쿄전력은 내부적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무시했고 이런 일들이 생겼다"고 증언했다.

자신도 문제가 있었음을 직시했다. 원전 세일즈에 열을 올리던 당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아성찰이다.

간 전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 이전에는 일본은 기술력이 높으니 원전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며 "'러시아나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튼튼하겠지'라며 베트남 등에 원전 세일즈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다"고 성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선문답으로 말을 맺었다. 간 전 총리는 "원전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모르지만 언제 어디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일어났을 때의 피해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피해를 보는 곳에 만들면 안 된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인간이 안전한 곳은 없다. 그래서 원전은 없어져야 한다"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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