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 후쿠오카까지…1100여명 한·일 시민 동선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 주최한 '피스&그린 보트' 행사의 주무대인 크루즈 '오션드림호'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꼬마 아이'(little boy) 라는 '귀여운' 이름의 폭탄이 떨어진다. 

이 귀여운 이름의 폭탄은 그러나 그 이름과 달리 버섯 모양의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키며 히로시마에 삽시간에 '지옥도'를 그려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은 도시. 히로시마다.

마츠바야시 츠가사 씨(43)는 그 '히로시마' 출신이다. 그는 이번이  '피스&그린 보트' 두번째 승선이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일본인 이시가키 오사무씨(65)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 한다. 그는 이번이 세번째 '피스&그린 보트'  승선이다.

#'피스&그린 보트'에 오른 사람 가운데엔 아내와 사별 후 9년째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이도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은 40대의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린아이'고, 아버지만 70대의 '할아버지'가 됐다.

한국과 일본. 국적도 다르고 사연도 다른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사람과 9박 10일을 함께 하는 배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9박 10일의 일정에 동행했다.


한국인들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기항지에서 '루스키 섬' 트레킹에 나선 마츠바야시 츠가사씨.

 


[환경TV뉴스] 오션드림호=신준섭 기자

1945년 8월 15일 우리에게는 '광복'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일'이다. 같은 게 있다면 '70'주년을 맞았다는 것. 그 '70' 주년을 기념해 한국인 549명, 일본인 560명. 모두 1109명이 한 배에 올랐다. 배의 이름은  '피스&그린 보트'.

피스&그린 보트는 동해를 거쳐 오오츠크해를 거슬러 우리에게도, 일본에게도 사연 많은 땅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9박 10일 일정의 이 항해는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에서 공동 주최한 프로그램으로 3만5265톤급의 크루즈 오션드림호가 지난 1일 일본 홋카이도 항에서 일본인 탑승객들을 태우고 출발, 2일 부산항에 기항해 한국인 탑승객들을 태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홋카이도·나가사키·후쿠오카 등 모두 4곳의 기항지를 돌아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양국 탑승객들은 10일과 11일, 각자 처음 탄 항구에서 하선했다. 열흘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정이다.

지난 2일 부산항 출항식을 위해 8층 후미 갑판으로 모여 든 한·일 탑승객들

 

피스&그린 보트는 이름 그대로 '평화'와 '환경'의 배다. 2005년 최초로 한일 양국 시민들이 환경과 평화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 시작한 이래 올해가 8번째 여행이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2009~2011년 3년간은 미국발 금융 위기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함께 시작된 환경재단에 대한 사정 문제가 겹치면서 휴항했다.

2012년 다시 재개된 이후 3년째인 올해, 환경재단에 따르면 역대 최대 규모의 인원이 모였다고 한다. 한국 측에서는 공무원 연수, 기업체 후원 프로그램 등의 참가가, 일본 측에서는 재일동포를 포함해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이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4일간의 기항지 탐방 외에 5일 정도인 선상 생활 속에서 환경과 평화라는 키워드로 뭉쳤다.

기후변화와 원전, 지속가능한 에너지 등 환경 문제에서부터 한일 관계, 동북아 지역의 평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교류했다.

오션드림호가 부산을 떠난 2일 오후 6시40분부터 7시까지 20분간 8층과 9층의 선상 후미에서 열린 출항식에서 행사를 주최한 양 기관의 대표는 한일 국민들에게 '핵 없는 사회' '평화'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시아에서는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 한국에 환경운동을 들여 온 주역이자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절반인 35년을 환경운동에 바쳐 온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출항에 앞서 양국 탑승객들에게 전한 말이다.

선상에서 수시로 진행된 한일 공동 프로그램에 모여든 양국 국민들

 

부산 출항 이틀째인 3일에는 더욱 심화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한일 양측의 시민들이 150명 안팎으로 모인 가운데 열린 광복 70주년 한일공동심포지움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그리다'에서 양측 대표는 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로 이번 행사의 의미를 새겼다.

최 대표는 "광복 70년을 맞이한 한국으로서는 해방, 일본으로서는 종전을 딛고 다시 새로운 것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양국 국민이 지구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국제 평화와 전세계 사람들과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일본의 비영리기구 '피스보트'와 크루즈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는 요시오카 타츠야 피스보트 공동 대표 역시 거들었다.

그는 "우리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바로 바다라고 하는 두 개 국가를 연결해주는 공간에 있다. 상징적인 의미"라며 "국가의 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다. 70년이라는 해에 우리에게 주어진 계기"라며 운을 뗐다.

이어 "후쿠시마현은 지금도 현재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일본 국내에만 해도 원전이 50기 이상이고 한국에도 20여기 정도가 존재하는데,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다. 

원전을 대폭 늘리는 중국도 마찬가지"라며 "한·중·일 상황을 봤을 때 앞으로의 목숨, 우리 아이들과 손자에게 행복하고 건강한 환경을 주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어떻게 공존해 나갈 수 있을 지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늦은 오후 선내에서 진행된 한일 양국 파티에 한복과 기모노를 서로 바꿔 입고 나온 한일 어린이들

 

이외에도 70년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증언, 기후변화, 남북통일 문제, 일본 징병제 도입 문제 등 양국의 현안들이 선상에서 전문가들의 강연과 토론을 통해 다뤄졌다.

기항지 프로그램도 이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벤치마킹한 규슈 올레와 홋카이도의 해안국립공원 방문과 같은 생태관광부터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논란을 빚은 나가사키의 '군함도', 나가사키 원폭 투하 70년 행사 참석, 후쿠오카의 규슈 전력 본사 앞에서의 원전 항의 시위 등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의미 깊은 프로그램 외에도 한일 교류를 위한 다양한 선상 프로그램이 피스&그린 보트 선상에서의 시간 곳곳에 도입됐다. 한·일 양국 젊은이들의 연예 방식에 대한 토론과 'K-POP' 시간, 한국어·일본어 배우기, 한·일 어린이 교류 등부터 소리꾼 장사익씨와 가수 이한철씨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선내에서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한일을 울린 소리꾼 장사익씨(왼쪽)와 흥겨운 음악을 양국민에게 선사한 가수 이한철씨

 

피스보트 측 관계자는 "피스보트는 이 프로그램이 양국의 교류를 위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매년 100여일씩 3회 정도 진행하는 피스보트 세계일주 프로그램 중간에 꼭 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재참가 신청이 많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마츠바야시 츠가사씨와 이시가키 오사무씨도 동참하고 싶어한다. "내년에도 탑승해서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일본인들이 한 입처럼 던지는 말이다. 

내년에도 피스&그린 보트는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는 한일 양국 국민을 싣고 출항할 것이다.  피스&그린 보트는 계속된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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