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쯤 살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다. 전세로 약 3년간 살았는데 이때 아들이 잦은 감기에 시달리더니 결국 폐렴에 걸렸다. 당시에는 원인을 잘 몰랐지만, 한참 후 ‘새집 증후군’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 및 일과 관련된 곳에는 보내는 나로서는 잘 느낄 수 없었다. 철들고 처음 살아보는 새 집이라서 오히려 가벼운 흥분마저 있었다. 그러나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새 집이 내뿜는 VOCs(휘발성유기화합물) 등 화학물질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 발명품이나 신기술, 신화학물질 등을 어떤 신비한 후광과 함께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문명의 힘과 그것이 주는 편리함이나 아늑함에 취해 신기술이나 신물질을 비판적으로 보는 힘을 상실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대중화됐을 때 빈민가 흑인 어린이들은 달리는 차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신기한 새 발명품에 대한 호기심의 대가는 무서운 납중독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무연휘발유를 쓰고 있지만, 당시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납은 어린이들의 두뇌기능과 집중력 저하현상을 초래했다. 해당 지역에 대한 학자들의 역학조사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이처럼 새로운 발명품이나 화학물질, 신기술이 나오면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폐해나 위해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배기가스, ‘기적의 살충제’ DDT, 새 집이나 새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VOCs, 그리고 석면 등이 모두 같은 경로를 거쳤다. 미국의 의료 전문가와 과학자들은 여러 세대 동안 기업을 도와 이들 물질의 유해성에 관한 진실을 감춰왔던 전력이 있다.

유럽연합(EU)은 2002년 11월 과학과 기술의 혁신, 신상품을 도입하기 앞서 하나의 규제수단으로 예방원칙을 사용한다는 법령을 채택했다. “실험계획, 기술적용 또는 제품 도입을 앞두고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불확실한 경우 예비평가에서 환경, 인체, 동물, 식물의 건강에 대한 잠재적 악영향이 EU가 선택한 높은 보호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합당한 근거가 나올 경우 사전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황증거는 많지만, 물증이 충분치 않을 경우 곧바로 예방원칙이 적용된다. 
 석면은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수입되면서 기적의 건축자재로 각광받았다. 가볍고 단열·보온효과가 뛰어나 방화재(防火材), 내화재(耐火材), 브레이크라이닝 등에 널리 사용됐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은 흡입할 경우 1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석면폐, 악성중피종 등을 유발한다. IARC의 발암성 등급에 따르면 석면은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실한’ 그룹1(1급)에 해당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석면관련 질병의 본격적 발병은 앞으로 17년 후인 2032년 전후로 피크를 이룰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1980년대 들어 석면 사용량을 급격히 줄여나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7년이 늦은 1997년에서야 석면 사용량이 본격적으로 감소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팀이 71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나라 석면 수입량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97년을 분기점으로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당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석면산업이 공해산업으로 인식돼 주요 대기업들이 석면산업을 포기하거나 가동하지 않은데 따른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그러나 석면 자체의 수입량이 줄어드는 동안에도 석면이 포함된 천정 텍스나 시멘트 제품 등의 수입물량은 최근까지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천정 텍스, 석면시멘트제품, 석면 타일, 석면개스킷 등 석면이 포함된 각종 건축재료는 96년 9116t이 수입된 이후 수입량이 계속 증가해 2005년에는 4만7967t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이때까지 정부의 석면함유제품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었으며, 2007년 이후에서야 석면함유제품에 대한 수입 및 사용제한이 단계적으로 도입됐다. 박 교수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나 학교 등의 건물에서도 천정에 형광등이나 벽면에 에어컨을 설치할 때 석면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산업의학교실 김동일교수는 ‘2009 석면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석면 노출에 따른 질환 잠복기(10∼40년)와 수입량 등을 고려할 때 2032년 전후로 악성중피종 환자가 가장 많이 나올 것이라고 추정했다. 환경부는 최근 석면 노출로 악성중피종을 앓는 환자가 2045년쯤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의 예측은 이보다 13년 당겨진 것이다. 악성중피종은 상태가 중증일 때 폐암으로 진행된다.

김 교수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많이 사용한 새마을운동이 1970년부터 시작됐으므로 지금은 환자가 발생하는 초기 단계”라며 “현재 석면 때문에 악성중피종에 걸린 환자는 약 40년 전인 1960년대 말에 노출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면 수입이 가장 많았던 92년(9만5476t)을 기준으로 40년 후인 2032년쯤 석면 노출로 악성중피종에 걸린 환자가 가장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석면피해 구제기금의 설치와 피해 보상 등을 규정한 석면피해구제법을 2010년 3월 제정해 2011년 1월 1일부터 석면피해자에 대해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면피해에 대해 정부차원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는 세계 6번째 국가다. 석면관련 질병 가운데 피해보상의 대상질병을 확대하고 지급수준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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