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문기자를 할 때 가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한다. 당장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꼬리치레도롱뇽을 왜 보호해야 하는가. 많이 늘어난 것같은 고래를 왜 지금도 잡지 않고 보호해야 하는가.
 
먼저 TV자연다큐멘터리들이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퍼뜨린 포식동물에 대한 신화부터 언급하자. 호랑이와 범고래, 즉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동물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하부를 구성하는 생물보다 환경의 도전에 훨씬 더 취약하다. 즉 살아 남아 유전자를 퍼뜨릴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말이다. 사자의 사냥 성공확률은 20% 정도에 불과해 굶는 경우가 많고, 태어난 새끼들이 성체가 될 확률도 낮다. 반면 숫자가 많은 얼룩말은 사자나 다른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는 확률이 매우 낮고 개체수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런 점에서 생태계의 질서를 일컫는 ‘약육강식’이라는 표현은 틀리지는 않을지라도 적절하지는 않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  즉 환경에 가장 적합한 놈이 생존한다는 것이 생태계의 전체적 진실에 더 가깝다.

오스트리아의 비교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무기를 가진 육식동물의 사회적 자제력’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부당한 윤리적 선입관에 일격을 가한다. 즉 사회적 동물 가운데 육식동물이 자신의 동족에게 더 난폭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육식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로렌츠에 따르면 늑대나 개는 상대방과 싸울 경우 승패가 가려지고 패자가 무릎을 꿇고 급소인 목을 상대방에게 내놓을 때 승자가 패자를 무는 법은 결코 없다. 무기를 가진 육식동물이 그러한 자제력을 갖게 된 것은 어려운 생존환경 속에서 멸종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동물이 종의 역사상 발달과정에서 동족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게 되면, 이 무기에 병행하여 종족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무기 사용을 억제시키는 사회적 자제력이 발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수노루와 토끼 등이 좁은 우리 속이라든가 어떤 상황에서는 동족을 종종 죽이는 잔인성을 드러낸다.

거위, 까마귀 등의 동물들과 평생 어울려 살면서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동물과 사람의 본성에 대한 통찰들을 제시한 이 노벨상 수상자는 핵무기를 지닌 인류가 그런 ‘사회적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를 반문했다. 그러나 사람과 침팬지는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류 포식동물 가운데 동족을 살해하는 가장 뚜렷한 예외에 속한다. 요컨대 종족을 보존하기 어려운 종일수록 사회적 자제력을 키워 왔다는 점은 중요한 통찰이다.   먹이사슬에서 고차원의 포식동물일수록 환경변화와 오염물질에 취약하고 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생체축적의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5대양을 휘젓고 다니는 범고래는 그 늠름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금세기이내에 멸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살아 있는 범고래로부터 채취한 살점조직에서는 엄청난 양의 중금속과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이 검출됐다. POPs는 다이옥신, PCB(폴리염화비페닐), DDT와 같은 유기염소계농약류, 알드린 등 체내에서 배출이 잘 안 되는 오염물질을 말한다.  이들 물질과 납,수은, 카드뮴, 크롬 등의 중금속은 생체축적을 통해 포식동물의 체내에 잔류하게 된다. 문제는 포식동물별로 영양단계가 한 단계씩 높아질수록 바로 전 단계의 먹이가 된 동물에 비해 몸무게 1kg당 최고 7∼10배씩 더 많은 오염물질을 축적하게 된다는 점이다.

포식동물은 먹이가 지닌 에너지를 전부 몸에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효율, 대사효율 등의 한계 때문에 그것의 7분의1∼10분의1만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먹이에 함유된 일부 중금속과 POPs는 거의 대부분 몸속에 흡수된 채 오랜 기간 빠져 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양 오염의 가장 큰, 궁극적 피해자는 참치와 범고래, 그리고 바다표범을 잡아먹는 에스키모가 된다.   임산부들이 참치를 자주 먹으면 태아가 수은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반면 플랑크톤이나 해조류를 주로 먹는 멸치와 생선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육식을 하는 돌고래가 육식을 하지 않는 밍크고래보다 환경오염에 더 취약하고, 따라서 포식자에게도 더 위험함은 물론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돼 있다. 우리 사람은 우리가 먹는 것, 그리고 다시 우리의 먹이가 먹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 먹이들과 만물을 살리는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활동할 공간이 위축될 때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종들은 멸종으로써 위기를 알린다. 천성산의 생태계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은 먹이사슬의 거의 맨 꼭대기에 있으며, 맑고 찬 계곡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지표종 노릇을 한다. 그런 민감한 동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함이 무너진다는 경고음이다. 그런 종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경고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재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기 일쑤일 것이다.

향유고래나 귀신고래는 수백년 전부터 인간이 초래한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 지금 동해에 돌고래와 밍크고래가 설사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멸종위기에 처한 일부 고래들이 되돌아 온 것은 아니다. 또한 특정 종의 개체 수는 불변의 피라미드 구조에 따라 저절로 조절된다. 결국 인간의 남획이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표종들이 멸종 위기에 몰리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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