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수지 줄이기' 부실한 통계 갖고선 "목표달성했으니 관련 제도 폐지" 발표
"철저한 실태조사 필요" "관련제도 폐지는 반환경적인 발상" 비판 높아

[환경TV뉴스] 오혜선 기자 = 환경부가 지난 10년간 통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채 "합성수지 재질 포장재의 연차별 줄이기 목표가 달성됐으니 이를 규제하는 관련 제도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전혀 관리·감독도 않고 있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꺼내들자 얼렁뚱땅 보고하고 발표한 뒤 관련 제도를 없애려 한 것이다.

이에따라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플라스틱 포장재 등 일회용품 사용실태에 대한 철저한 상황파악 및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19일 환경부와 국무총리실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청과물과 수산물 등의 포장에 사용되는 합성수지 포장재가 재활용이 잘 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합성수지 포장재 연차별 감축의무제도'를 폐지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지난 3월말 박 대통령 주재의 '규제개혁 끝장토론' 직후인 지난 4월3일 '제1차 환경규제개혁회의'를 개최하고 이같은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이는 국무총리실과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사항이다.

흔히 '연차별 줄이기'로 불리는 이 제도는 합성수지 재질로 된 포장재의 사용량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재질의 포장재로 대체하도록 연차별로 기준을 부여하고 이를 이행해 나가기 위한 것.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시행 첫해인 2003년 대비 2007년에는 청과류·축산물·수산물에 사용되는 합성수지 포장재의 총량을 25% 이상 줄여야 한다. 아니면 그만큼을 친환경재질의 포장재로 대체해야 하며,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줄이기 목표 달성여부에 대한 통계는 각 지자체에서 취합, 환경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본보 취재결과, 환경부는 지난해 사과·배 받침접시의 연차별 줄이기 이행실적을 지난 10일까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초에 취합해야 할 자료를 연말이 다 되도록 확보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각 광역자치단체에 '독촉공문'을 발송해 일부만 취합했고, 본보에 그 결과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경남, 제주, 세종은 실적을 여전히 '취합중'이다.

▲ 출처 = 환경부

 

또한 2012년 이전의 10년간 이행실적 자료도 부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김유란 사무관은 "이행실적 자료를 매년 초 취합하지만, 잘 안 될 경우 연말에 한 번 더 취합을 위한 공문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또 "2012년 이전 자료들도 취합이 덜 됐다"며 부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 사무관은 "세부자료나 2012년 이전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작 일선 지방자치단체가 이같은 자료를 취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북지역 A시청의 자원순환과 담당자는 "과일 받침접시 (이행실적) 조사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중앙부처(환경부)에서 관리를 하라고 지침이 떨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충남의 B시 자원정책과 담당자는 "따로 조사하지 않는다. 워낙 사용되는 양이 많아서 다 조사하긴 어렵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담당자가 따로 있지 않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10년이 넘도록 취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가 달성됐으니 관련 규제를 없애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런 총체적인 문제점을 인지한 환경부가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서둘러 폐지하려 했던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등록돼 있는 '제1차 환경규제개혁회의 개최 결과' 참고자료에 보면 "합성수지 포장재의 연차별 감축의무 폐지 건의 등 5개 건의 적극 수용 약속"이라고 명시돼 있다.

합성수지의 재활용 목표가 달성됐기 때문에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사과나 배 등 과일류의 합성수지 포장재는 재활용률이 워낙 높아 이 제도의 실효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이상 이 제도의 존치 의미가 없다는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10여년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없으면서 이렇게 발표한 것이다.

포장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과·배 포장재는 이미 전국 어디에서도 조사되지 않고 전국의 많은 영세 농가들을 다 조사할 수도 없다"며 "이미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은 이 기준을 놔둬서 나중에 발목 잡히기 전에 이 기회에 이 규정을 아예 없애자는게 아니냐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전문가들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합성수지 플라스틱 줄이기를 100%까지 순차적으로 늘려나가도 마땅치 않은 마당에 환경부가 나서서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자스민 의원(새누리당)은 "합성수지 플라스틱 연차별 줄이기를 폐지하려면 폐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항들에 대한 대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면서 "대안 없이 폐지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환경부가 잘 지켜지고 있으니 무작정 폐지하겠다고 주장할게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잘 준수되고 있는지 이 제도를 폐지할 경우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에 맡겨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환경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자료도 취합되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이 제도의 폐지를 들고 나온 배경에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제도의 폐기에 따라 막대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분야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환경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들어 환경정책이 퇴보했다는 비판이 거센 마당에 이처럼 친환경적인 '착한 규제'를 없애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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