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뉴스] 신준섭 기자 = 2004년, 서울 한복판인 창덕궁 경내에 대낮부터 커다란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서울시에 접수됐다. 당장 서울시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민이나 외국인이 다칠 수 있다며 다급한 처리를 요구했다는 게 이 때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이다.

이에 다급했던 서울시 측에서는 야생생물관리협회에 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협회 측에서도 수렵 허가가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총기를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협회 관계자들은 수렵견과 손칼을 가지고 창덕궁으로 출동했다.

대낮부터 샤낭개와 멧돼지의 사투가 벌어졌고, 협회 인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출몰한 멧돼지를 잡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후 같은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유해조수 구제단, 일명 '멧돼지 기동단'을 창설한다.

멧돼지 기동단의 초대 회장을 지낸 지용선씨는 "이 전 대통령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며 멧돼지 기동단 10명을 선발해 만들었다"며 "서울시에서 총을 들고 다녀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서울시 마크가 있는 조끼도 맞춰주고 비상 시 출동할 때는 경비도 지원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전 대통령과 멧돼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 3년차인 2010년, 청와대 안에 멧돼지 3마리가 나타났다. 이 멧돼지들은 경내 산책을 하던 이 전 대통령과 마주했다. 어찌 보면 '숙적'과의 만남이다.

놀란 이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원들을 출동시켰고 야구배트를 든 건장한 경호원들은 이 대통령의 증언에 따라 이 3마리를 처치하러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잡지도 못했다고 한다. 당시 CCTV에도 이 장면이 담겼다는 게 멧돼지 기동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이 만든 멧돼지 기동단 5명이 나서게 됐다.

지씨는 "청와대에서 총소리가 난 게 김신조 사건이랑 김재규 사건 등 단 2번밖에 없었다"며 "그래서 우리도 엽총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 1주일간 경호원들과 함께 손칼을 들고 쫓아다니며 퇴치 작업을 했는데, 1마리는 잡고 2마리는 바깥으로 내쫓았다"며 "마주칠 때마다 번번히 멧돼지한테 밀리고는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멧돼지 기동단은 멧돼지가 주로 출몰하는 각 구마다 15명씩 활동 중이다. 이들의 목표는 사살 등을 주로 하는 '포획'이 아닌 서식처로 쫓아내는 '퇴치'다. 이 전 대통령의 목표가 출몰 멧돼지들의 사살이었을 지 모르나, 지금의 멧돼지 기동단은 '공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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