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철로 접어든 농촌들녘에서 야생동물과 한바탕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운영하고, 전기울타리나 철조망ㆍ경음기 등 피해방지시설을 설치해 보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일부 지자체는 유해야생동물 퇴치약품까지 사용하며 농작물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죄 없는’ 동물에 대한 구제대책과 생명경시 풍조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아 뾰족한 묘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 급증하는 농작물피해액

환경부가 집계한 최근 4년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피해액은 616억7천600만원이다. 지난해만도 약 132억원의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액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 중 최고 골칫거리는 멧돼지와 고라니다. 환경부 집계에 따르며 멧돼지(259억원)와 고라니(100억원)에 의한 피해액이 전체의 58.3%를 차지했다.

이어 까치(109억원)ㆍ오리류(40억원)ㆍ청설모(22억원)ㆍ꿩(18억원) 등도 유해조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아무래도 천적 없이 무한 번식 중인 멧돼지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08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멧돼지 평균서식밀도는 전국의 100㏊당 4.1마리로 적정밀도(1.1마리)를 4배 가까이 웃돌아 이미 임계치를 벗어났다.



◇ 농작물 피해..타들어가는 농심

야생동물에 의해 짓밟히는 농작물은 종류도 다양하다. 콩, 감자, 옥수수, 벼, 과일 등 가을 수확기의 거의 모든 농산물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심지어 약초로 쓰이는 맥문동과 인삼까지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있다.

올 수확기의 경우 이미 7월부터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 영천시 120여건, 김천시 40여건, 군위군 70여건, 영덕군 80여건, 예천군 90여건, 성주군 30여건 등이피해사례로 접수됐다. 피해 면적은 수천~수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경기, 전남북, 충남북 등 전 국토에서 피해사례가 접수되고 있지만 당국의 피해예방 대책은 뜨뜨미지근하다.

이 때문에 농가들은 지자체와 경찰서 등을 중심으로 하루빨리 피해방지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북의 한 농민(58·김천시)은 “야생동물 피해가 심각해 조속히 방지단을 운영해 줄 것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이렇듯 피해예방과 적극적 구제에 나서야 하는 시군관계자들이 뜸을 들이고 있는 사이 인명피해도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충북 보은군 마로면 김영란(64.여)씨가 집 뒤 콩밭에서 멧돼지 습격을 받아 왼쪽 다리를 8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었는가 하면, 인근에서 복숭아와 고구마를 키우는 한 농민은 수풀에서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로 인해 농작물보호는 고사하고 급히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야생동물 피해 방지단’ 등 예방책

지난 7월 25일 환경부는 농작물의 수확기 피해 예방을 위해 일선 시·군이 8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 77일간 ‘농작물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 방지단’을 운영토록 지침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각 시군 지자체는 모범 엽사 20명 이내로 구성된 방지단을 운영중이며 경기도의 경우 오는 11월까지 방지단 운영기간을 늘리는 특단의 대책도 내놨다.

방지단은 유해 야생동물의 출몰 또는 피해 신고가 있을 경우 즉시 출동하며 주된 포획 대상은 멧돼지를 비롯해 고라니, 까치 등이다. 또 지역 특성에 따라 멧비둘기와 청설모 등을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시·군들이 방지단 운영을 미루고 있다.
이에 대해 시·군 관계자들은 “해당 경찰서 등과의 총포류 사용 허가 협의 등이 지연돼 방지단 운영이 미뤄지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말못할 고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해조수 구제활동이 집중되는 봄 가을철에는 산과 들에 행락객이 많아 자칫 총포에 의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 이 기간을 틈탄 불법밀렵도 극성을 부리는 때문이다. 여기에 동물보호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애를 끓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민들과 일부 지자체는 농작물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치거나 허수아비ㆍ경음기ㆍ경광등 등을 동원해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야음을 틈탄 야생동물의 습격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 야생동물의 의한 농작물 피해, 막을 방법 없나?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5월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농어업재해대책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5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했다.

9월부터는 유해 야생동물이나 일조량 부족으로 산림작물을 포함한 농작물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재해복구비 지원이 가능하도록 농어업재해대책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조량부족에 의한 농작물 등의 피해가 시군별로 50ha 이상, 유해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가 시군별로 10ha 이상인 경우 대파대와 농약대 등을 시군에 국고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유해 야생동물의 농작물 피해는 일부 시군만 조례를 마련해 지원하고 있으나 앞으로 조례가 없는 시군의 농가도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재해복구비를 지원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면 우선 포화상태에 이른 개체수 조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수렵장 운영과 함께 봄~가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 구제활동를 펴고 있으나 개체수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풀이 우거진 여름, 가을철에는 야생동물을 추격하기 쉽지 않은데다 번식자체를 차단하는 개체수 관리가 효과적이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느 선까지 관리해야 하는지 아직까지 구체적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4~5년마다 시ㆍ군 단위로 순환수렵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멧돼지나 고라니의 개체수 조절은 불가능하다"며 "수렵구역을 시ㆍ도 단위로 광역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을 쫓는 전기울타리나 철조망ㆍ경음기 등 피해방지시설에 대한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
(사)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각 지자체의 피해방지시설 설치비가 자부담 30~40%와 지원보조금 60~70%로 돼 있는데 지원비 수준을 더 높여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피해가 매년 증가하며 문제가 되자 환경부는 최근 농촌의 골칫거리가 된 멧돼지 관리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대 이우신 교수팀에 수렵장 운영, 포획제도 개선, 수렵동물에 대한 태그(Tag)도입 방안 등이 포함된 용역을 의뢰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손상기 사무관은 "포화상태에 이른 멧돼지 피해를 줄이려면 적정 밀도까지 솎아내는 게 필요하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발도 만만찮은 상황"이라며 "용역을 통해 효과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문 기자 jmoonk99@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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