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부족에 농민들 시름. 일용직 근로자도 '비 피해'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워졌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두번에 걸친 태풍, 거기다 집중폭우까지 겹쳤다. 8월 중순인데도 여전히 우중충한 하늘을 보면 마치 변덕심한 런던의 축축한 날씨가 연상된다.

이같은 현상은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 비는 계속되고 하늘은 어둡고, 올 여름 서울 맑은 날 20여일밖에...


올해 6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일조량과 강우량을 분석한 기상청의 자료에 따르면 평년에 비해 올 여름 강우 일수는 1/3가량 늘었고 일조시간은 1/4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주요지점 47곳의 측정 자료를 보면 일조시간은 평년 451.3시간에서 337시간으로 줄어들은 반면 강수일수는 30.4일에서 40.7일로 대폭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지난 7월말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서울의 경우 일조시간과 강수일수가 각각 평년 380.4시간과 33.2일이었던 것이 272.4시간와 47일로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도로들이 통제되는 등 비피해가 특히나 컸던 서울은 6월1일부터 8월15일까지 76일 중 무려 47일이나 비가 내렸다.

강우일수가 60%가 넘는다. 여기다 흐린날까지 포함하면 6월부터 지금까지 맑은 날이 불과 20여일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기상청 정관영 예보분석관은 "날씨가 급격히 변화한 기간이 길지 않아 속단하긴 이르다"며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기후변화의 추이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장 이같은 강우일수와 일조량의 변화로 인한 피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습한 날씨에 병해충 늘어 농작물 수확 비상, 추석 장바구니 물가도 덩달아 껑충...


계속되는 강우로 습기가 높은 날이 지속돼 병해충이 늘면서 채소와 과일 작황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장마부터 제9호 태풍 ‘무이파’까지 비피해가 연속된 전남도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전남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수확시기를 코앞에 둔 고추들이 역병이 번지면서 대부분 무르고 썩어버리는 피해를 입고 있다.

올해 고추 생산량은 수해에 병충해 피해까지 겹치면서 절반가량 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고추뿐만 아니라 사과․복숭아 등의 과일과 배추 등의 채소들도 비 피해와 일조량 부족으로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과는 습한 날씨 탓에 갈색 무늬 병이 돌면서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일조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 복숭아와 배도 크기가 작고 짓물러 작황은 예년의 1/3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남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예상했다.



고랭지 농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배추의 경우도 한 달가량 이어지는 비에 짓무름병이 발생하면서 상품 가치가 떨어져 많은 농가들이 밭을 갈아엎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 강원지역본부 이찬옥 고랭지채소사업소장은 "최근 1개월 가량 비가 내리면서 물기가 많다보니 배추의 뿌리무름병이 발생하고 있다"며 "추석을 대비해 배추를 많이 심어놨다고 하지만 수요가 많기때문에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물가정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채소와 과일 모두 적게는 20~30%, 추석 상에 오르는 품목 중심으로 많게는 220% 이상 값이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 계속된 비로 일상생활도 피해


올 여름 비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농작물 피해가 커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비로 인한 불편함이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의 이동희(48)씨는 발코니 한구석에 쌓여있는 빨랫감 때문에 고민이다.

며칠간 비가 계속되면서 날이 맑아지면 빨려고 모아둔 옷가지들이 이제는 바구니를 차고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씨는 “이렇게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 빨래를 해 널면 제대로 마르지 않는데다가 퀴퀴한 냄새도 나 안하느니만 못하다”며 “맞벌이를 해 낮에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제 막 군복무를 마치고 다음 학기 복학 준비 중인 대학생 손성원(27)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학교주변인 안암동에 자취방을 마련한 손씨는 군복무 기간 동안 등록금이 인상되고 월세까지 올라 반지하를 구하는데도 빠듯했다.

그렇게 구한 반지하 방이 장마철부터 끊이지 않고 지루하게 내린 비로 벽지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피고 침구류와 옷이 눅눅하게 젖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손씨는 “예전에는 반지하라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축축한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올해는 많이 심한게 몸으로 느껴진다”며 “이런 저런 비용이 올라 생활하기도 어려운데 잠자리마저 불편을 겪어야 하니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기록적으로 많은 강우일수는 하루하루 날씨에 기대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겐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지난 15일 오전 7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다가구주택 옥탑방에서 A(51)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있었다.

조사를 진행한 서울 관악경찰서 경찰 관계자는 "올 여름 유난히 많이 내리는 비 탓에 건설 현장에서 일감이 줄다 보니 일용직 근로자인 A씨는 심해진 생활고를 비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태풍 1~2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이며 9월 초순까지 비소식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같이 비가 계속되는 날씨가 이어지면서 농작물 수확 실패로 농가와 시민들의 피해는 물론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생활고도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권윤 기자 amigo@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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