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요, 절감에도 매년 계속 높아져
기업들, 기술력 해외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제도 못 따라가
정부, ESS·EMS 보급 진흥 정책으로 수요 늘릴 것

지독히도 더운 여름이다. 체감온도만 보면 기상청 통계 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 1994년보다도 더 덥게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부족한 전력 때문에 1997년 IMF 당시 대국민 금모으기마냥 직장·학교 등 여기저기서 '절전'을 강요받고 있어서다. 에너지의 96% 가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과연 정부 말대로 대안이 없는 건지, 환경TV(그린포스트코리아)는 오는 22일로 10년째인 '에너지의날'을 맞아 전력위기 현황과 극복 방안을 살펴보려 한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①공무원·직장인·학생, 절전 때문에 "일·공부 못하겠다"
②3년째 전력난, 언제 쯤 스마트그리드 수혜받나
③신재생에너지 고작 1%, 세계는 광속 한국은 저속
④환경부 장관, '에너지와 기후변화' 공존(共存)을 말하다

▲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제안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한 이상적 도시. 여기에서도 스마트그리드는 핵심적인 축으로 사용된다 = 제공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여름철 전력 사용량이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피크타임 때인 오후 2~3시 사이 순간 전력수요가 7498만㎾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6일 기록한 7490만㎾보다도 8만㎾를 더 사용했다.

국민들이 "더워서 못 살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도 높은 대국민 절전 운동을 시행했고, 산업체의 조업 조정 및 각 사업장별 자가발전기 가동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전력 수요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모습이다.

여기에 2014년 신규 원전 2기가 가동하면 전력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산업통상자원부의 장미빛 전망도 원전 비리와 수요 증가 속에 쏙 들어갔다.

결국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주목받아 온 기술이 있다. 지능형전력망, 바로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다.

◇스마트그리드, 순항? 표류?

스마트그리드란 전력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발전소와 송전·배전 시설, 전력 소비자들을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해 전력 소비량을 쌍방향으로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전기를 충전, 전력이 부족한 피크타임 때 충전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반 가정에서도 효율적 전기 사용이 가능하고, 여분의 전기는 되팔수도 있다.

스마트그리드를 통한 수요관리가 정부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은 2009년 11월 제6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 이후다. 당시 정부는 2016년까지 핵심기기인 스마트계량기의 보급과 20만㎾h 규모 ESS 설치, 전기차충전기 15만기 설치 등을 통해 원자력 발전 1기 분량인 120만㎾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 2011년 9월15일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발생하며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진흥 정책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력 수요관리의 필요성이 당장 코앞에 다가와서다.

산자부 관계자는 "스마트그리드 정책은 그 전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주목을 받게 된 건 블랙아웃 이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2월28일 제6차 녹색성장 정책 이행 점검회의에서는 3년 전 논의된 안들이 정부 추진 정책으로 확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꾸준한 정책에 비해 전력수요는 급격히 늘어났다. 국민들이 스마트그리드 효과를 체감하기는 아직 요원하다.

산자부 관계자는 "각 가정에서 전기 계량 지수를 알 수 있는 지능형검침인프라(AMI) 전환 계획을 오는 9~10월 중에 발표할 예정"이라며 "로드맵 상으로만 보면 그리 늦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제도는 후진국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위치한 SK케미칼 사옥의 '에코렙'은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이 시설은 기상예보를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을 예측하고 부족분은 값싼 심야전력으로 충전한다. 이렇게 전력 부하를 분산하다보니 전력소비 비용은 최소화된다.

이를 통해 연간 에너지 사용량을 44%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연간 약 4억4000만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동반한다.

2010년 10월 입주 이후 2년 10개월여가 지난 이날까지 모두 2897명이 이 시설물 소개 프로그램인 '에코렙' 투어에 참가했고, 해외에서도 투어 문의가 오고 있다.

이처럼 기술력만으로 보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는 단계다.

국내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포스코ICT는 일본의 에디슨파워와 공동으로 일본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시장에 진입했다.

조영구 포스코ICT 스마트그리드 추진단 팀장은 "중동 쪽에도 컨설팅을 실시했으며 미국의 경우 주파수 조정 사업 참여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그리드의 핵심 기술인 ESS 역시 세계 시장이 주무대다. 효성은 홍콩 전력청과 400㎾급의 대규모 ESS 구축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

효성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한 북미, 유럽, 홍콩 포함 중국, 호주 등 선진국 시장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전력시장과 신재생에너지 도입량이 큰 국가일수록 우선시해서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수지가 맞아서다. 1000㎾를 구축하는 데 수십억원의 비용이 소요될만큼 ESS 장비 자체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수요자 입장에서는 구축 대비 효과가 있어야 한다. 선진국들의 경우 전기요금 자체가 비싸기도 하지만 시간대 별로 차등화 된 요금 구조 때문에 가정까지도 수요가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그리드의 가정 보급이 가장 활발한 일본의 경우 비싼 가격에도 수요가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소형 ESS를 생산하는 FXT사의 김흥배 이사는 "2시간 정도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4㎾급 가정용 ESS는 구축에만 1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지만 일본은 수요가 있다"며 "정부 지원책 등이 동반됐기 때문에 가정에도 보급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전기요금 자체가 싼데다 시간대별 가격 구조도 아직 가정까지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강릉 저탄소 녹색도시 시범사업에 스마트그리드 운영 체계인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설치한 SK C&C의 정재열 그린IT개발팀 차장은 "국내의 경우 가격대비 투자비 회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기업은 가격대비 효율을 극대화한 ESS를 개발하고 정부가 체계적이면서 구체적인 지원책을 수립한다면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달 19일 산자부가 발표한 ESS와 EMS 시장 활성화 대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산자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2017년까지 3.5조원대의 수요관리 시장과 원전 1기분인 100만㎾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덕중 산자부 사무관은 "전기요금 등의 체계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속도가 더뎠던 것"이라며 "10월과 내년까지 계속해서 체계를 구축해가면 시장 상황이 확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을 내비쳤다.

sman321@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