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언젠가 본 만화책에서 일본인 작가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가방을 꾸려 대피할지 고민했다. 반려동물과 사는 작가는 자기 것보다 반려동물 용품을 먼저 챙겼는데 일단 사료와 물, 밥그릇, 물그릇을 챙겼다. 혹시 대피소가 추울지 모르니 옷과 모포도 챙겼다. 그런데 반려동물이 여럿이라 짐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후에는 머릿속으로 대피 순서를 시뮬레이션했다. 가장 먼저 반려동물을 이동장에 넣고 가방을 챙겨 어떻게 집을 탈출할지를. 아마 그 에피소드를 만들었을 때가 고베 지진 때였을 것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도 준비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책을 만들면서 원전 사고는 다른 재해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방사선은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몸으로 위험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피난령이 내려져 집을 비우라는 정부의 명령에도 사람들은 가볍게 집을 나섰다.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니 반려동물도, 가축도 그냥 두고 나왔다. 집을 나서는 순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책 속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일지 알았다면 사람들도 그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겁지겁 집을 떠나느라 자기 옷도 챙겨갖고 나오지 못한 사람, 급하게 떠나온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난민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 대한 죄는 사람이 아니라 원자력 이익집단인 정부, 기업에 물어야 할 것이다.

그곳에 남겨진 동물들을 유기동물로 부르는 게 맞을까?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졌으니 유기동물은 맞지만 반려인에게 버려진 유기동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의 사람들 또한 국가와 사회로부터 유기된 상태다. 주민들의 허락도 없이 그곳에 원전을 짓고 나오는 이익을 챙긴 자들은 따로 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받고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대피소를 전전하는 사람들. 국가로부터 유기된 동물들, 유기된 사람들이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묶인 채로 죽거나 용케 줄이 풀려있었다면 거리를 떠돌며 주린 배를 채우거나 정부로부터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면 죽을 수밖에.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재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물들. 그래서 책 속 동물들의 모습이 더 슬프다. 스스로 선택할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선택권은 없다. 원전 폭발 사고 후의 후쿠시마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0.23마이크로시버트-후쿠시마의 미래’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대피소 난민들도, 다행히 피난령이 해제돼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라고 강요를 당할 뿐 별다른 선택권은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에 남겨진 동물들의 모습이 겹쳤다.
   
책에는 저자가 고속도로에서 주운 고양이 목걸이가 나온다. 사체는 부패하여 특징도 알 수 없지만 목걸이에 고양이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다. 야마모토 미. 저자는 목걸이에 적힌 연락처로 계속 전화를 하지만 끝내 통화를 하지 못한다. 저자는 고양이의 반려인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반려동물이 죽은 경우, 반려인이 죽은 경우, 대피소에 반려동물을 데려가지 못해 끝내 반려동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 등 가슴 아픈 이야기는 넘친다. 자식같이 키우던 강아지를 사고 후에 1년 넘게 찾아 헤매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잠깐의 이별이 영영 못 보게 되는 이렇게 긴 이별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후쿠시마의 사람과 동물이 빼앗긴 평범한 일상이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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