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2012년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상호 협력방안 실행을 위한 협약서' 체결 이후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주요계열사 CEO들이 '따로 또 같이3.0' 체제 출범을 기념하는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K

 

지난달 23일 한 중앙일간지 경제면에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최 회장이 그룹의 동남아 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주요국을 잇달아 방문해 기업,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현지 생산기지 현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 회장이 싱가포르 석유물류기지를 찾아 현장 직원들과 악수하는 사진은 기사보다 더 큼지막하게 실렸다. 물론 해당 사진은 SK그룹 홍보실이 제공한 사진이다.

신문지면의 4분의 1 가량을 최 회장 기사와 사진으로 도배했으니, 대기업 오너의 동정 기사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지면할애라 할 수 있다.

또 이 기사 아래에 SK텔레콤의 실시간 교통정보 안내 애플리케이션인 T맵의 온실가스 감축효과 측정기법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국제표준으로 승인받았다는 기사도 함께 실렸다.

계열사 자금 636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 회장의 1심 결심(구형) 공판이 열리기 꼭 한 달 전이다.

1심 구형이 있은 지 나흘 뒤인 26일에는 최 회장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진이 관련 기사와 함께 온-오프라인 미디어를 통해 뉴스 소비자들에게 노출됐다. 그룹 홍보실에서 배포한 사진이다.

이날 최 회장은 서울 광장동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계열사 CEO, 사외이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2차 CEO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논의한 내용의 핵심은 앞으로 최 회장이 계열사 CEO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 등 ‘100% 계열사 자율책임경영’을 그룹경영체제에 도입한다는 것이다.

물론 논의하겠다는 것이지 결정된 것은 아니며, 도입이 결정되면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다.

최 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 대통령 선거 열흘 뒤인 다음달 28일로 잡혀 있으니, 만약 내년 1월1일부터 이를 시행한다면 선고 후 채 열흘도 안 돼 SK그룹은 계열사 ‘자율책임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셈이다.

 이처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 회장의 1심 결심 공판을 전후해서, 최 회장에게 호의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구형 및 선고에서 최대한 최 회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그룹 계열사의 해외시장 공략에 발 벗고 나서며, 총수로서 군림하지 않고 자율경영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최 회장을 ‘아주 훌륭한 그룹총수’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의도가 아니라 통상적인 홍보활동으로 이런 자료들을 릴리즈 한 것 뿐 이라고 한다면, 그룹 홍보파트는 조직 구성원으로서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룹의 총수가 징역살이를 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이를 막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홍보실의 존재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최 회장은 지난 22일 1심 결심 공판에서 아주 ‘선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최 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4년 구형은 법원이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 범죄에서 감경 사유 등을 최대로 참작했을 때 선고하도록 권하고 있는 최저 형량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 범죄 양형기준의 기본 형량은 징역 5~8년이다.

결심공판 직후 “한상대 검찰총장이 고려대 동문인 최 회장의 구형량을 직접 지시했다”는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있을 정도로, 징역 4년은 ‘봐주기 구형’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낮은 형량이다.

따라서 다음 달에 1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자의 생각은, 구형 직후 ‘봐주기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을 법원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 일반의 정서가 기업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법원 내부의 기류도 국민 일반의 정서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지난 9월 부산에서 열린 ‘2012년 전국형사법관 포럼’에서 과거 기업인들에 대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란 일관된 ‘정찰제 판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점을 최 회장 1심 재판부가 충분히 새길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최근 한 판결문에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한 점도 대기업 총수의 범죄에 대해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정서에 합치한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최 회장은 비단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여러 불법행위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탄을 받아왔다.

SK가 그룹차원에서 계열사인 SK C&C에 부당지원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자,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최 회장은 그룹계열사의 SI 사업을 유용하여 개인의 지배력확대 및 자금확보를 해왔다”면서 SK C&C를 통한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여부에 대해 검찰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SK텔레콤 등 SK그룹 7개 계열사는 SK C&C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장기간 전산 시스템 관리 및 운영과 관련한 IT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 2008년부터 2012년 6월말까지 SK C&C에 모두 1조7714억원을 지급했다.

 인건비를 현저히 높게 책정하거나, SK텔레콤의 경우처럼 높은 유지보수비 지급, 5년~10년의 장기간 수의계약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제공했다는 게 공정위의 조사결과다.

이 하나의 사안으로 SK텔레콤은 2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시민들의 통신비를 통해 챙긴 이익의 상당액을 과징금으로 물었으니, 결국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과징금을 낸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22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최 회장의 범행가담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유사한 사건에서 다른 대기업 오너들도 지시, 관여 등 9가지 조건 중 4~5가지만 충족하면 유죄로 인정됐는데 최 회장은 9가지 모두에 해당 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최 회장 측에 대해 동종 전과, 은폐 시도 등을 언급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할 아무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최 회장은 유죄를 피할 길이 없다.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4년6개월이 선고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최근 전례에 비춰볼 때도 그렇다.

경제계 인사들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공소내용 대로라면 최 회장의 죄가 김 회장 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은 신뢰는 평등으로부터 나온다.

죄가 없는데도 여론몰이로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죄가 위중한데도 부와 권력이 있다고 가벼이 처벌돼서도 결코 안 된다.

일반 국민들은 부와 권력이 없다. 

법원이 최 회장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이유다.(2012. 11. 26) 

mazinger@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