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계획, 고준위방폐물 문제 고려하지 않아 비현실”
2차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도 관리정책 불확정

현재 운행 중인 24기 원전 중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10기(42%)에 이른다. 정부는 2031년부터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는 원전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운행 중인 24기 원전 중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10기(42%)에 이른다. 정부는 2031년부터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는 원전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정부가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4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가 다시 쟁점화되고 있다. 정부의 원전 정책이 임시저장하고 있는 핵폐기물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시설이 2031년부터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련 입법 및 시민 수용성을 고려한 공론화가 시급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정부 계획, 고준위방폐물 문제 고려하지 않아 비현실”

정부는 원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 공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실무안에는 2036년까지 계속 운전하는 노후원전 12기(10.5GW)와 준공 예정 원전 6기(8.4GW)가 포함됐다. 실무안에 따르면 2022년~2025년 동안 신한울 원전 1·2호기(2.8GW)와 신고리 5·6호기(2.8GW), 2032년~2033년 기간 신한울 3·4호기(2.8GW)가 준공 예정이다. 

원전 발전설비가 증가하면서 2030년 원전 발전량 비중은 32.8%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발표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원전 발전량 비중(23.9%)과 비교하면 8.9%나 늘어난 수치다. 2030년 원전 발전량도 146.4테라와트시(TWh)에서 201.7TWh로 증가할 전망이다. 

원전 발전설비와 발전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고준위 방폐물) 처리 문제가 다시 지적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해 “원전을 2036년까지 12기를 수명연장 하겠다는 것은 안전성은 물론 대책이 없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원전을 운영해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은 중저준위와 고준위로 구분된다. 방사선 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저준위 방폐물은 반감기(방사성물질의 방사능이 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가 평균 300~400년이다. 반면 열과 방사능의 준위가 높은 고준위 방폐물 반감기는 평균 10만년이다. 이 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경우 고준위 방폐물은 원전의 사용후핵연료가 대부분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법은 중간저장 시설, 재처리, 직접 처분, 최종처분 시설 등이 있다. 정부는 이 중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확정하지 못해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저장되어 있다. 현재 운행 중인 24기 원전 중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10기(42%)에 이른다. 정부는 2031년부터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는 원전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원전 포함 녹색분류체계에 방폐물 기준 제시 못해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지난 20일 원전을 포함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이하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했다.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을 ‘전환부문’에 추가하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 된 세부계획이 존재하며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되었는지를 조건으로 달았다. 

하지만 이번 녹색분류체계안이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와는 달리 고준위 방폐물 처분 부지 및 건설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EU의 분류체계는 2050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운영할 세부 계획으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달리 환경부 안은 관련 계획(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법제화할 경우 세부 계획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환경부는 EU 체계처럼 구체적인 연도를 명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준위 방폐장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국내의 경우 정부 계획이 존재해 구체적인 연도 제시는 불필요하다”며 “다만 정부계획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법률제정)을 조건에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2차 고준위 방폐물 기본계획 역시 부지확보 및 건설에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 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라며 “결국 녹색분류체계에서 독자적인 엄격한 규정이 필요한 대목에서 환경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원자력 법률의 제정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 2차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도 관리정책 불확정

고준위 방폐물 처리 문제는 1978년 원전이 처음으로 가동된 이후 4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과제다. 역대 정부는 1980년대 이후 부지 선정을 9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박근혜·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관리 공론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중립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에 걸친 공론화를 거치고도 아직까지 사용핵연료 관리정책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운영된 2차 공론화 위원회는 1차 공론화 위원회 논의에서 큰 진전이 없이 부지선정 절차 착수 후 20년 내 중간저장 시설을, 37년 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수정 로드맵을 제시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처분을 위해 관련 절차와 일정, 방식을 규정한 특별법을 마련하고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산하에 전담 조직을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국회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3개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 처분에 관한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결국 시민 수용성을 기반으로 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선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사용후핵연료 관리 공론화의 쟁점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시민 수용성을 기반으로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사례를 참고해 공론화 과정에 시민참여를 강화하고, 공론화 과정과 절차 등에 대한 제도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선희 입법조사관은 “프랑스는 다양한 권력기관에 위원 위촉권을 분산하고 있어 특정 국가기관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위원회가 독립행정청으로 승격해 특정 부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 입지를 보장할 수 있다”며 “또한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독일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공론화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공론화위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객관적·중립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방안에 관한 공론화를 주관하는 민간 자문기구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위원회 운영과 기한, 위원 위촉권 등을 갖고 있어 그동안 정부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 조사관은 “공론화 단계별 진행 절차를 모두 입법화하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의 사례를 입법모델로 활용해 공론화 활동 내용, 절차, 시한 등 공론화 과정 전반을 제도화 또는 법제화함으로써 공론화의 권위를 회복하고, 실효성 있는 공론화가 개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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