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재난 불평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역대급 폭우에 반지하 주택이 속수무책으로 침수됐고 사람이 죽었다. 기후재난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기후재난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올 것으로 예상된다. 재난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2월 28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공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직전 평가보고서가 나왔던 8년 전과 비교해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 홍수 등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났다. 특히 이러한 이상기후는 취약 지역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후재난에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3억 3200만명,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는 1억9700만명이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는 사이클론과 홍수, 태풍으로 2019년에만 96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폭우로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재확인됐다.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었고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기후재난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재난 속에서도 집은 마지막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만 집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자 반지하라는 주거 공간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이에  ‘반지하’라는 열악한 주거 형태를 순차적으로 없애고, 현재 반지하 거주민들이 추가적인 부담 없이 고품질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열악한 주거 형태라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난 만큼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고 서울시는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 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96%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서울시 내 지하(반지하) 주택은 20만 849가구에 달한다. 이는 서울시 전체 가구의 6.6%다. 관악구(2만 113가구)와 중랑구(1만 4126가구), 광진구(1만 4112가구) 등 노후주택 단지에 몰려 있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실시해 서울시 내 약 20만 가구인 반지하 주택의 정확한 위치와 침수 위험성, 취약계층 여부, 임대료와 자가 여부 등을 파악하고, 종합적인 로드맵을 마련해 임대주택으로의 이주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20년간 258개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23만호 이상 물량을 확보하고,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모아 주택 등 정비사업을 통해 임대주택 물량이 증가하면 서울시 내 반지하 주택 20만 가구를 충분히 순차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로드맵은 단지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 폭우는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는데 20년간 반지하주택을 없앤다는 것은 제대로된 대책이라고 할 수없다.  더 속도를 내야할 뿐만 아니라 돈이 없어 반지하주택에 사는 서민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도 빠졌다.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상에 거주할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없어서 수많은 문제와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러한 대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수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서울시는 침수지역 반지하 주택의 건축허가를 제한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공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20년에도 영화 ‘기생충’ 효과로 한국의 반지하 현실이 주목받았고 정부와 수도권 지자체들이 대책을 쏟아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번 대책에서 놓친 게 더 있다.  폭우만이 기후재난이 아니고 기후재난으로 반지하만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여름의 폭염과 겨울의 혹한에 대한 대책도 함께 고민했어야 한다.  폭염과 혹한에 취약한 주택이 서울에 널려있다. 

서울시는 이번에 반지하만 아니라 이런 취약주택을 모두 고려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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