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전자폐기물과 환경 사이의 관계
짧아지는 제품 수명...어린이 건강에 영향?

버려지는 가전 제품 중 일부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 제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다. 글로벌 정부와 주요 기업들의 노력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버려지는 가전 제품 중 일부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 제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다. 글로벌 정부와 주요 기업들의 노력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인류는 가전제품 더미 속에서 산다. 대부분의 인류는 가전제품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렵다. 식재료를 보관하거나 조리할 때, 옷을 빨아 말릴 때, 일 할 때나 누워서 쉴 때도 대부분 가전제품 하나 이상이 인류의 곁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쓰이는 가전제품들이 버려지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전자제품 사용은 얼마나 늘었을까? 연합뉴스가 지난 2월 통계청 2021년 연간 산업활동 동향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가전제품은 2020년에 21.2% 판매가 늘었고 지난해에 다시 9.5% 증가했다. 연합뉴스는 이에 대해 “가전과 가구 등 내구재 품목은 코로나19로 2년간 호황기를 맞았던 셈”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최근,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한 ‘어린이와 전자폐기물 처리장’을 번역서로 제작해 공개했다. 전자 폐기물과 어린이 건강에 관해 전 세계 학자들과 함께 각국의 사례를 수집해 지난해 6월 발간한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전자 폐기물은 약 5,360만 톤으로 5년 전에 비해 21%증가했고 오는 2030년에는 7,470만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쓰는 양이 늘어났으니 버려지는 양 역시 늘어나는 자연스러운 구조다.

◇ 1천만톤 늘어난 전기전자 폐기물

버려지는 전자제품 관련 문제는 이미 여러 번 이슈가 된 바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9월 서울환경연합 등이 주관한 ‘대담한 쓰레기 대담’ 6회차 강의에서 전기·전자 폐기물 관련 동향과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환경 관련 시선에서 지적되는 문제의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많이 버려지는데 그 폐기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나머지 상당수가 비공식적으로 처리되는데 그 과정이 비환경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홍수열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가전제품 등 전자 폐기물이 연간 5,400만톤 발생하는데, 그 중에서 17.4%만이 제도권 안에서 공식적으로 처리되고 나머지 82.6%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당시 “2019년 기준 5,400만톤의 전기전자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이는 지난 2014년 4.400만톤에 비해 약 1천만톤 가량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30년에는 지금보다 2천만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배출된 전자폐기물 중 다수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기 어렵다. 홍 소장은 당시 대담에서 “(전기전자 폐기물 중) 17.4%만이 제도권 안에서, 즉 공식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파악할 수 있고 82.6%는 폐기물이 발생했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왜 그럴까? 강의에 따르면 지역 차이에 따르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유럽은 43%가 제도권 영역 안에서 처리되지만 아프리카는 그 비율이 0.9%에 불과하다. 이건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자원순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고 집계가 잘 이뤄지느냐에 따라서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관련 폐기물이 수요가 많은 주요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있다는 관점이다.

가전제품 등 전자폐기물은 내부에 유해물질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돈이 되는’ 부품도 많이 포함돼 있다. 폐가전에서 금속 등을 얻는 이른바 ‘도시광산’이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홍 소장은 관련 폐기물이 개발도상국으로 많이 이동하고 그 와중에 불법수출 등도 이뤄지는 것이 결국 ‘가난’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버려진 전자 폐기물에서 쓸모있는 금속 등을 뽑아내는 건 자원순환 측면에서 바라보면 긍정적으로 바라 볼 지점도 있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제품을 활용해 부품 등을 재활용하는 활동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전문적인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작업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함부로 버려지는 것들이 땅이나 강으로 그냥 흘러가면 문제다.

전자폐기물에서 금속 등을 뽑아내는 건 자원순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제도 하에서 처리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게 문제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이나 등장인물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전혀 관계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전자폐기물에서 금속 등을 뽑아내는 건 자원순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제도 하에서 처리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게 문제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이나 등장인물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전혀 관계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독성물질...지역사회 전체 오염시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WHO 보고서도 이 문제를 언급한다. 보고서는 전기·전자기기 시장 급성장과 단축된 기기 수명이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전례 없는 건강 위기를 가속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유해 화학물질과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문제 역시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과 비슷하다. 어린이나 청소년 심지어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빈곤한 도시민 상당수가 급증하는 비공식 쓰레기장이나 매립지 주변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전자기기를 태우거나 독성 화학조를 사용해 컴퓨터 칩에 들어있는 금이나 케이블 속 구리를 채취한다 그 과정에서 수은, 납, 다이옥신, 난연제와 같이 위험한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유독성 입자로 오염된 공기를 마실 위험이 있다.

보고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 도착한 기기 중, 가장 쓸 만한 기기 일부는 재판매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들판이 나 강기슭, 비공식 처리센터를 포함한 공식·비공식 폐기장에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공식적 폐기물 관리 환경에서 값비싼 부품이 들어있는 장치의 경우 수작업으로 해체되어, 연소, 가열, 화학습식을 비롯한 원시적인 기술을 통해 재활용된다. 그 과정에서 독성물질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거나 토양이나 물로 침출되어 지역사회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 전자 폐기물 작업자들은 광범위한 독성물질, 화학물질, 연소가스, 기타 잔여물에 직접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폐기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고 재활용을 장려하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며 내구성이 더 강하고 수리가 쉬운 기기를 만드는 순환경제 조치를 장려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아울러 전자 폐기물이 될 수 있는 제품의 생산이나 구매 자체를 줄이는 일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전자폐기물 관련 정책·기업 차원 노력은?

국내에서는 어떤 대책이 마련되고 있을까. 환경부는 지난해 6월 LG전자, 자원순환사회연대 등과 함께 가전분야 탈플라스틱 실천 협약을 체결했다.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당시 환경부는 협약에 대해 “텔레비전, 사운드바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면서 기존 플라스틱도 재생원료로 대체하는 등 가전분야 탈플라스틱 실천을 위해 마련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협약에 따라 LG전자는 텔레비전과 사운드바 본체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원료의 약 30%를 폐자동차 전조등 또는 폐가전제품 등을 재활용해 생산한 재생원료로 대체하기로 했다. 유통과정에서도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사운드바 포장에 사용하는 스티로폼은 종이 완충재로 대체하고 에어콘 실외기 포장에 사용한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완충재도 다회용 포장재로 교체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친환경 가전 관련 행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올해 에어컨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국내 에어컨 최초로 친환경 냉매 R32를 적용하고(2월 23일 한국에너지공단 전기냉방기 신고제품 기준) 일회용 건전지를 사용하지 않는 솔라셀 리모컨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아파트 세대별로 전력 데이터를 수집해 소비자들이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절감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협약이다.

환경부와 지자체, 전자제품 생산자 등은 소비자들이 폐가전제품을 배출할 수 있는 수거 체계도 구축했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은 ‘폐가전 무상방문수거’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

정책 관련 노력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위 언급된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전자 폐기물 관리를 위한 정책 입안의 참고자료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국내 어린이 환경보건 종사자와 교육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했다. 정현미 국립환경과학원 세계보건기구 취약계층 환경보건 협력센터장은 “이번 번역서가 전자 폐기물 발생량 감소에 대한 필요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취약계층의 환경보건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다. 널뛰는 날씨가 인류의 건강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지속가능 시스템이 실물 경제에 폭넓은 영향을 미쳐 ‘기후불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들린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은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가열화’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10월 ‘2021 기후 상태 보고서’를 통해 당시 기준 전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09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WMO는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이제 새로운 표준”이라고 경고했다. 한파와 무더위, 산불과 큰 바람 등이 세계 곳곳을 덮친다. 뜨거워지는 지구 온도를 더 늦기 전에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억제해야 할까?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연중기획 <기후불황 막아라! 인류의 도전 0.99℃> 보도를 시작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고 기후불황을 막자는 취지다. 인류의 목표였던 1.5℃ 또는 이미 넘어섰다는 경고가 나오는 1℃보다 더 억제하려는 마음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자는 취지다.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나의 생존과 경제활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연중기획을 통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평균기온 상승 억제가 왜 중요한지, 달라지는 날씨와 실물경제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고 어째서 기후불황이 닥치는지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연재는 11월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총 35회차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주]

[연재계획]

PART 1 인류의 새 숙제 0.99℃

 달라진 날씨의 위협과 지구 운명 바꿀 온도

 기후위기 경고하는 세계의 리더와 학자들

 널뛰는 날씨에 달라진 작물 지도

 더워지는 지구가 장바구니 물가 바꿨다

 다시 꺼내보는 교토와 파리에서의 약속

PART 2 기후불황 파도가 세계를 흔든다

 기후불황의 서막 60조 달러(북극얼음)가 녹는다

 산불은 나무가 아니라 돈을 태운다

 환경 파괴·팬데믹·글로벌 경제의 나비효과

 굶주리는 세계...식량위기가 지구를 흔든다

 기후위기 경각심...당신은 얼마나 느끼나요?

 영국과 독일에서 배운다...환경으로 경제 잡기

 美 연준 기후위기 대응 전략 보니

 기후위기 대응이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환경·경제·기후 3대 위기 “대전환 절실”

 기후위기와 인플레이션의 관계

PART 3 호모플라스티쿠스 생존전략

 키워드로 정리한 0.99℃와 2050 탄소중립

 0.99프로젝트 1_하루에 한끼씩 버리겠습니까?

 0.99프로젝트 2_플라스틱 더미에 묻힌 인류

 0.99프로젝트 3_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0.99프로젝트 4_버려진 제품에 흔들리는 미래

 0.99프로젝트 5_쓰레기의 88%를 줄여볼까?

 재활용의 기술...무엇을 버리고 어떤걸 재활용하나?

PART 4 탄소중립 실천 나선 기업들

 기후와 경제 두 마리 토끼 잡는 ESG

 ESG 점수 높으면 재무성과 더 좋을까?

 플라스틱 줄이기 나서는 식음료 기업

 유해화학물질 저감 나선 화학업계

 녹색금융 확대 나선 금융계

 “석탄발전 줄여라” 자동차 기업들의 미래 약속

 스웨덴과 독일에서 본 15년전 친환경

PART 5 에너지에서 찾는 0.99℃ 성공열쇠

 인류세 넘는 지구...에너지 사용 줄일 수 있을까?

 0.99 성공 열쇠, 에너지전환 플랜 짚어보니

 전기사용의 2가지 키워드. 효율과 전환

 신·재생에너지 둘러싼 논란과 진실

 탄소세 이슈로 읽는 환경경제

 인류 모두의 숙제...0.99℃를 위하여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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