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문 기자
권승문 기자

에너지 위기와 고유가 시대에 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친 여파가 우리 동네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치솟게 하더니 떨어질 줄을 모른다. 석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은 모든 물품의 가격(물가)을 끌어올린다. 에너지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재화이기에 에너지 위기는 곧 우리 삶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위기에 내놓은 대표적인 대책이 유류세 인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일까지 3차례 유류세를 인하했다.

최근에는 유류세를 법이 허용하는 최대폭인 37%까지 인하했다. 더 나아가 거대 양당은 유류세 인하폭을 최대 50%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앞다퉈 발의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책이 유류세 인하여야만 하는지, 과연 가격 하락 효과는 있는지,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유류세를 인하한 만큼 실제 기름값이 떨어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자단체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최근 전국 1만 744개 주유소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유류세 인하분만큼 휘발유와 경유 평균 가격이 낮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유사나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유류세 인하로 정유회사만 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제기된다. 반면 정유업계는 유류세 인하 전 들여온 재고를 모두 소진하면 국내 석유 가격이 내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류세 인하가 저소득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유류 소비량이 많은 고소득층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석유 가격이 인상되면 저소득층은 석유 소비를 줄이지만 고소득층의 수요는 큰 변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류세를 내렸을 때 소득 하위 10%보다 상위 10%에게 6.3배 이상 더 큰 혜택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일시적으로 세율을 낮추어 유가 부담을 낮출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정책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을 수밖에 없고 정부의 세금 수입이 감소해 국가 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류세 인하로 세수가 3조8000억원 줄었고, 앞으로 5조원이 더 줄어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기후 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에 맞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비판도 있다. 유류세 인하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높여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비판이다. 가격 변화에도 불구하고 휘발유와 경유 소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유류세 인하는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하는 데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과감한 대중교통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중교통 활성화는 고유가 시대에 불필요한 석유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기후 위기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독일의 ‘9유로 티켓’ 정책과 뉴질랜드의 대중교통 반값 요금 정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독일 정부가 지난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시행하는 9유로 티켓 정책은 9유로(약 1만2000원)만 내면 한 달간 전국의 근거리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또한 지난 3월 뉴질랜드 정부는 3개월 동안 모든 대중요금 요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와 같은 정책이 고유가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유류세로 통칭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들리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1994년 교통세라는 세목으로 교통 인프라 확충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다가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치면서 일몰 기한이 연장돼왔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단일 세목으로 조세 규모가 중 4번째로 크지만, 재원 중 대부분이 토목 분야나 화석연료 보조금 등에 사용돼 실제 환경 부문에 사용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에너지 위기와 기후 위기가 함께 몰려오는 상황이다.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 및 폐지 방안을 논의하고 장기적으로 에너지 세제 개편과 탄소세 도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환경연구원, 교통연구원 등 5개 국책 연구기관은 지난 2월까지 총 1년여에 걸쳐 ‘탄소가격 부과체계 개편방안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비공개로 남았다. 연구보고서를 캐비닛에 넣어두지 말고 함께 논의해야 한다.

smkwo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