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문 기자

“지금부터 50년 전, 대한민국은 권위적 군사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연속적으로 밀어붙이며 굴뚝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에 뿌듯해하던 시절이었다.”

세계 환경의 날 50주년이던 지난 6월 5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앞에 머리가 희끗한 시민들이 모였다. 60대 이상 회원들로 구성된 ‘60+기후행동’은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앞의 절박한 호소-50년 이후 미래세대의 생존을 염려하면서’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세계환경의날 이후 50년을 허비한 우리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늦었더라도 행동을 멈출 수 없다. 광란의 화석연료 탐닉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내일을 파국으로 몰아간 우리, 60세 이상의 세대가 50년 세계환경의날을 맞아, 오늘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날로부터 4일 전 치러진 전국 지방선거 과정에서 이러한 호소는 외면당했다. 집권당인 국민의 힘 후보들 공약에서 기후·환경 정책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환경보다 개발 공약을 앞세운 후보가 많았다. 기후위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적극적인 대응을 공약한 후보들은 대부분 정의당, 녹색당 등 소수정당 소속이었다.

전국 각지의 대학 동아리·기후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기초단체장 후보자 568명의 5대 공약 2,760개를 전수조사 및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실현에 관한 ‘기후공약’은 124개로 전체 공약 대비 4.5%에 불과했다. 전체 기초단체장 출마 후보자 568명 중 기후공약을 발표한 후보의 수는 112명으로 전체의 19.7%뿐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은 재개발·재건축 등 부동산 개발 공약 일색이었고, 지역을 불문하고 대다수 환경 관련 공약들은 단순히 녹지 면적 확대 등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과거의 환경공약이 다수였다. 또한 “기후환경 공약이 개발 공약과 묶여 있는 그린워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런 이유로 기후환경 공약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하는 등 유권자를 헷갈리게 만들어 표를 유도한다는 점이 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도 기후위기는 토론주제로조차 선정되지 않았다. 또한 모든 대선 토론회에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언급은 다 합해봐야 ‘RE100’, ‘재생에너지와 원전 문제’, ‘철강산업 탄소중립’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탄소국경세’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와 산업·무역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대기업들이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할 뿐, 정부와 정치권은 50년 전 ‘개발’의 시대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듯하다.

대선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됐던 지방선거였지만 기후위기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선에서의 기후정치 논의가 더욱 필요했다. 때 이른 폭염 등 기후재난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시급한 대책을 논의하고 기후재난에 안전한 주거와 필수적인 에너지복지, 폭염에 쉴 수 있는 노동권, 지역사회의 정의로운 전환 등 중·장기 대책을 토론했어야 했다.

오는 13일, 5세 이하 영유아를 주된 청구인으로 한 ‘아기 기후소송’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된다. 지난 3월 25일 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서 명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어린이들의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충분히 보장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이번 헌법소원의 골자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양육자들이 법정 대리인으로 나섰다.

이번 소송을 공동 주체한 단체들과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인단은 당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당일 현장에서는 이번 ‘아기 기후소송’에 대한 청구취지 설명과 함께, 소송에 참여한 양육자들의 발언도 이어진다. 또한 60대 이상으로 구성된 ‘60+기후행동’ 등에서도 연대 발언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방선거에서 기후정치는 실종되었지만, 이처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지방선거 후보들의 우수한 기후공약들도 발견되었다. 지방선거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한 청년들은 당선자들에게 기후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다른 후보들의 우수 기후공약이 민선 8기 4년 동안의 정책 추진에 함께 반영되도록 제안하며, 정책 공약 이행 여부도 계속 감시할 계획이다.

지난 5일 발표된 ‘60+기후행동’의 성명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60+기후행동’은 편리와 낭비와 포만을 버리고 불편과 검약과 부족의 삶으로 삶을 솔선해 전환하고자 하며, 나이듦을 핑계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젊은이들이 싸우는 기후행동 현장으로 함께 달려갈 것을 천명한다. 나아가, 하나뿐인 지구에서 미래세대가 거뜬히 생존할 수 있도록 절박한 마음을 모아 여러분에게 손을 내민다.”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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