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 추진 중
그리스, ‘탈석탄’ 선언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립
폴란드, 국가와 지역 단위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 중
독일·스페인·영국 스코틀랜드, 협약 체결·위원회 구성
한국, 정의로운 전환 위한 사회적 논의 시급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1월 확정된 유럽 그린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석탄산업 등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하는 지역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처음 공식화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1월 확정된 유럽 그린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석탄산업 등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하는 지역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처음 공식화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연합(EU)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과 스페인, 그리스, 폴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구성해 기금 설립과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내에서도 유럽의 사례처럼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사회경제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EU,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 추진 중

현재 EU는 정의로운 전환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1월 확정된 유럽 그린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석탄산업 등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하는 지역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처음 공식화했다.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은 전환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1,000억 유로(약 134조원)를 석탄지역에 지원하는데, 지원금은 지역별로 탄소집약도와 석탄 광산 고용자 수, 산업 고용자 수 등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폴란드처럼 석탄 광산이 주요 산업인 지역이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된다.

여형범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월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에너지포커스’에서 “EU의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은 아무런 조건 없이 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각 지역은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해서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EU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매년 지역별로 배당된 기금의 50%를 삭감해 지원하게 되고 남은 기금은 기준을 만족한 다른 지역에 배분하게 된다.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의 원칙은 유럽연합 내에서 화석연료와 탄소집약적 산업에 의존도가 큰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저탄소 경제 및 기후회복력 있는 지역으로의 전환 지원, △녹색 경제를 위한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적 지원 제고, △재생에너지원에 적극적인 투자, △디지털 기술의 향상, △저금리의 재정적 지원 제공, △에너지, 지역난방, 교통수단에 관한 기반시설 향상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한 EU 집행위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나 해체, 담배 관련 산업, 화석연료 관련 투자,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 지원 등에는 기금을 사용할 수 없다.

◇ 그리스, ‘탈석탄’ 선언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립

국가별, 지역별로 정의로운 전환 계획의 수립 과정과 내용은 차이가 있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탈석탄’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설립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결정에는 석탄 광산과 석탄발전소가 위치한 지방정부와 기후·환경단체의 지속적인 요구가 바탕이 되었다. 2015년 5개 지역 지방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수익으로 국가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했고, 2016년에는 세계자연기금(WWF)이 그리스 서부 마케도니아 지역을 탈석탄으로 전환하기 위한 비용이 포함된 상세한 로드맵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리스 정부는 2018년 지방정부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치 제안을 받아들이고 기금 설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2019년 그리스는 2028년까지 석탄 광산을 폐쇄하고 2023년까지 기존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했고, ‘탈석탄위원회’를 설치해 ‘정의로운 전환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2020년 5월에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9월에는 정의로운 전환 개발 계획 초안이 발표되었다. 그리스는 또한 이와 별도로 EU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에 따라 지역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을 진행했다.

여형범 연구위원은 “그리스의 지방정부는 국가와 EU 차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논의를 확장해나갔고,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지역사회 단체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토론도 입장을 정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며 “석탄산업 폐쇄가 닥쳐오는 지금, 석탄지역의 미래에 대한 더 많은 그룹과의 대화와 협력은 더욱 시급한 일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폴란드, 국가와 지역 단위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 중

유럽에서 석탄산업 규모가 가장 큰 폴란드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을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는 국가 단위의 정의로운 전환 계획과 6개 지역 단위의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각각 준비하고 있다. 6개 석탄지역은 계획수립을 위해 EU 집행위, 폴란드 관계부터, 지역개발기관, 지방정부, 상인회, 기업조직, 과학 및 교육기관 대표, 비정부조직, 노동조합, 언론 등이 참여하는 특별워킹그룹을 구성했다. 지역마다 정의로운 전환 계획의 내용과 목표, 의견 수렴 방식은 다르지만, 이 지역들이 EU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광산을 폐쇄하는 로드맵을 수립하거나 석탄생산량을 상당히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여형범 연구위원은 “폴란드는 유럽의 기후변화 정책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지역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지역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아서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전환이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지방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독일·스페인·영국 스코틀랜드, 협약 체결·위원회 구성

독일과 스페인,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독일은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을 통해 석탄 광산 및 발전소가 폐쇄되는 지역에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신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2038년까지 400억 유로(약 53조원) 규모로 지원하고 있다. 스페인은 석탄 광산, 석탄발전소, 원전이 폐쇄되는 지역들과 다양한 형태의 정의로운 전환 협약을 체결하고 유럽 및 국가 기금으로 청정에너지사업 투자, 광산 노동자 조기 은퇴, 녹색 일자리를 위한 재교육, 환경복원 등을 지원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주정부는 2019년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구성한 후 2021년 3월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발표했고, 4월에는 석유와 가스 산업 중심 지역인 에버딘을 ‘에너지전환지구’로 지정해 다양한 패키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전국 탈석탄 네트워크인 ‘석탄을 넘어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오크니 섬에서는 EU에서 제공한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통해 해양 및 조수 에너지와 관련된 일자리 300개가 생겼고, 이 섬은 스코틀랜드 내에서 2019년 기준 실업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 정의로운 전환 위한 사회적 논의 시급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정의로운 전환에서 특히 고려되어야 할 취약계층과 노동상황 규모를 추정한 결과를 보면, 국내 노동시장에서 탄소유발계수가 높은 상위 업종의 종사자가 2018년 기준 314만 2,000명에 달하며 이 중 33.2%가 비정규직 종사자로 조사됐다. 특히 ‘석탄을 넘어서’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 발전자회사의 석탄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협력사, 플랜트 산업 고용 인력 등을 포함한 석탄발전 부문 전체 고용 인원은 5만 2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 연구단’이 지난해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노동자와 시민 2,700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서베이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이 8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과 지원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국내에서의 정의로운 전환 추진 현황과 과제를 짚어본다.

smkwon@greenpost.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