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점점 빨라지는 개화시기

본지 편집국 내에서는 최근 이상기온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초등학생들에 대한 얘기가 공유됐다. 지난 4월 26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낮에 길을 걸으며 “오늘 27도래!”, “어? 거의 30도네. 30도는 여름에 나오는거 아냐?”라고 말하는 걸 직접 들었다는 얘기였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10년 뒤, 20년 뒤 지구의 기온은 얼마나 더 올라가 있을까. 그때도 봄을 여전히 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올해 봄, 꽃들이 원래 피어야 하는 시기에 피지 않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5월에 피어야 할 튤립이 사라진 곳도 있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한 달 앞서 피고 졌기 때문이다. 튤립은 4월에 벚꽃과 함께 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꽃들이 한꺼번에 핀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모든 꽃이 다같이 피는 현상은 비단 올해 봄에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은 아니다. 꽃들은 지속적으로 개화시기가 빨라지거나 늦어지면서 같이 피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지난 2월 25일 전국 주요 산림에 자생하는 봄꽃 개화 예측지도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벚꽃, 진달래 등 봄꽃은 4월 초순 만개할 것으로 예측됐다. 봄꽃의 절정은 종별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대체로 비슷할 것으로 분석됐다. 남부에서 중부지역으로 점차 확대되던 과거와 달리 제주도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꽃이 활찍 필 것이란 얘기였다.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건 지구 평균 기온 상승 때문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지난 12월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우리나라 산림의 ‘계절시계’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개화, 개엽, 단풍, 낙엽 등 식물계절 변화는 온도 등에 반응하는 식물의 생리작용으로 기후변화 영향을 파악하는 지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연구팀이 지난 10여 년간 국내 산림에 자생하는 식물 25종의 식물계절 변화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침엽수의 봄철 화분 꽃가루 날림 시기가 13일 빨라지는 등 봄철 식물의 잎이 펼쳐지는 시기가 빨라지며 봄이 앞당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따르면 식물계절 변화는 계절의 평균 온도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며 개엽의 경우 봄철 평균 기온이 1℃ 올라가면 3.6일 빨라진다. 

봄이 빨라지는 등 계절시계가 변하면 먹이사슬, 물과 에너지 흐름에도 변화가 초래돼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절시계의 변화는 국립수목원 등 국가기관에서뿐만 아니라 서울숲과 창덕궁 등을 산책하는 시민들도 느끼고 있다. 

기자는 최근 SNS에서 신예희 작가가 올린 서울숲 사진을 봤다. 튤립이 만개한 사진 여러 장과 함께 “튤립의 경우 5월이 끝물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일부는 벌써 시들고 있더라”는 코멘트와 게재돼 있었다. 딱 한 달 전인 4월 11일, 서울 온도가 25도로 기록된 날이었다. 

지난 4월은 국내 곳곳에서 역대 최고기온이 경신됐던 달이다. 올해 4월 평균기온은 최근 10년간 평균기온보다 1.6도가 높은 20.4도였다. 기상기록을 살펴보면 강원도 강릉과 속초, 경상도 포항과 의성이 4월 초 기준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동해안에서는 30도가 넘는 한여름과 맞먹는 더위가 나타나며 고온현상이 이어졌다.  

이렇게 기온이 오르게 되면 식물도 동물도 예측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생존고리를 잃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올해 봄처럼 꽃이 한꺼번에 개화했다 져버리면 꿀벌이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지고 이는 곧 꿀벌의 개체수 변화로 이어진다. 100대 작물 중 70%가 꿀벌의 수분으로 번식하고 생산물을 만드는 환경에서 꿀벌이 줄어들면 벌꿀과 과실수 생산량에 곧바로 타격이 온다. 

이미 국내에서 꿀벌이 사라졌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은 위기가 코 앞으로 닥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와 빨간 튤립이 예쁜 꽃길을 만들고 있는 4월의 사진에서는 같은 공포감이 느껴진다. 기후위기의 서막과도 같은 위기감이다. 

최재천 교수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서 이러한 현상을 ‘생태 엇박자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명백하게 기후위기의 징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재앙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무조건 날씨가 더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해진 기후를 의미한다. 기후위기란 ‘나쁜 날의 연속’이 아닌 ‘예상하지 못하는 날의 연속’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 이르게 피는 꽃이나 늦게 지는 잎은 결국 예상하지 못하는 날씨가 만들어낸 모습이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함은 사막화와 식량대란의 전조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현상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꽃이 자기가 펴야 할 시기에 제대로 피기 위해서는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은 육식보다 채식을 늘리고 일회용품을 덜 쓰는 대신 되도록 개인용기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등 탄소발자국과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기업은 소비자와 지구를 위하는 방향으로 물건을 만들고 정부는 더 엄격한 환경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진 자리에서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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