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덕후’ 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 인터뷰
리필이 친환경이 되려면...유통 생태계 바뀌어야
불편한 이중포장...1차 농산물이라도 무포장 필요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인 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소문난 쓰레기 덕후다. 2007년부터 10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해온 그는 현재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 주 3일 출근하는 직장인이자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함께 운영하는 공동대표로 제로웨이스트 문화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인 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소문난 쓰레기 덕후다. 2007년부터 10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해온 그는 현재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 주 3일 출근하는 직장인이자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함께 운영하는 공동대표로 제로웨이스트 문화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국내 첫 리필스테이션인 알맹상점을 보면 ‘쓰레기가 있었는데 없었어요’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곳은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인 고금숙 공동대표가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취하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곳이다. 스스로 "오랫동안 쓰레기 덕질을 해왔다"고 소개하는 소문난 쓰레기 덕후 고금숙씨가 바로 알맹상점 대표다. 

고 대표는 2007년부터 10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며 유해물질 문제 해결과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사용 금지 등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은 넘쳐나는 쓰레기 대란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현재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 주 3일 출근하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비영리 섹터와 환경단체에서 15년 간 일해온 그는 비즈니스를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장사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건 재미와 효능감이 큰 일이라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거예요. 안 되면 말지. 저는 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볍게 접근하는 거죠. 우리가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이 리필은 재사용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이자 알맹상점의 공동대표로서 그의 활동과 생활인이자 소비자로서 기업에 바라는 그의 관점을 함께 담았다.

◇ 리필이 정말로 '친환경' 되려면...유통 생태계 바뀌어야

Q 2020년 6월 망원점을 오픈하고 작년 7월에는 서울역에 알맹상점 2호점 일회용 없는 카페인 리스테이션 문을 열었어요. 망원점 오픈 이후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체감하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이상하고 별난 운동이 보편화되었어요. 사회운동의 성공은 예외적인 기준이 보편적인 기준이 되고,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에 있는데요. 처음에 상점을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리필스테이션이 별나고 예외적인 것, 그저 해외의 좋은 문화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갔다면 이제는 예외가 아닌 상식, 구체적인 대안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리필이 재사용의 기준이 되어가는 거죠. ‘대형마트에서도 해야지 왜 안해?’, ‘해보니까 해볼 만한데?’라는 말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로 좋은 세상의 기준이 바뀌고 있어요. 일상화가 2년 만에 쉽게 된 것 같아요.

Q 일상화가 비교적 쉽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쓰레기 운동은 탄소저감을 위한 많은 실천과 제도적 변화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주제예요. 사소하고 쉬운데 효과에 대한 재미가 느껴지거든요. 마냥 자제하고 절제하고 그만하자는 차원을 넘어 다른 방법을 제안하니까요. 사람들 생활에서 물성화된 게 플라스틱이잖아요. 탄소를 배출해 만들어지는 석유화학 제품이고 생활용품이 많다 보니 손에 잡혀요. 그래서 파고들 구석이 많아요. ‘쓰지마’가 아니라 ‘필요하지? 그럼 이거 써 봐’가 되거든요. 생필품을 대체할 것을 제안하니까 한 마디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죠. 기후위기운동에서 ‘자원순환이 에너지를 다 잡아먹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효능감을 느끼기 쉬워요. 새로운 차원으로의 소비와 연결된다는 면에서 물건으로 다가가는 운동만큼 쉬운 게 없어요. 그런데 이게 또 양날의 검이에요. 그것 때문에 한계가 있거든요. 

Q 왜 그런 건가요?

기후위기 대응 운동 하면 제로웨이스트부터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에서 리필을 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3%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이너한 운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이긴 하지만 기준에 대한 이상과 실제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거예요. 멋져 보이고 따라하고 싶고 저렴하고 좋고 환경도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은 있어요. 불편하지 않으니 관심도 있어요. 저는 그 궤도에는 올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물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노저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뜻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더 멋지게 동참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Q 알맹상점에 프랜차이즈 문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무포장 가게 운영에 대한 사업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하셨죠. 건강한 제로웨이스트 생태계란 어떤 것일까요?

프랜차이즈는 표준 기준을 만드는 것이에요. 수익도 나고 관리가 된다는 것인데 알맹상점은 마진율이 높지 않아요. 일하는 데 손이 많이 가고 사람은 많지만 회전율은 낮아요. 저희는 슬로우 비즈니스예요. 제품 10개를 계산했는데 2600원이 나올 때도 있어요.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에게는 수익을 보장하기 어렵죠. 대신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한 운영이 되고 이 운동이 확산되길 바라는 분들이라면 약간의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처음에 '삽질'을 많이 했거든요. 소량식 무포장 제품은 어디에서 사는지부터 20리터 말톤 소분기를 벨브형으로 놓을지, 펌프형으로 놓을지 세세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동네에서 1평이라도 샵인샵이나 팝업을 해본 다음 시작하라고 해요. 사업설명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마진율, 부가세를 알고 각오가 서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할지 결정하라는 거죠. 저는 특색있는 제로웨이스트샵이 많이 나오는 게 우리의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사업적인 영감을 줘서 거점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영향력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짜 성공은 제로웨이스트샵이 따로 있는 세상이 아니겠죠. 소매품에서도 포장된 것만큼 무포장 제품이 같이 있게 된다면 굳이 여기 올 필요가 없어요. 결국은 그걸 원합니다. 

한국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특징은 쓰레기를 모으는 거점 수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풍경이 처음 시작된 곳이 알맹상점이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특징은 쓰레기를 모으는 거점 수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풍경이 처음 시작된 곳이 알맹상점이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특징은 쓰레기를 모으는 거점 수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병 뚜껑이라도 걷어서 재활용하는 이런 모습은 외국 제로웨이스트샵에서는 볼 수 없다. 이 풍경이 처음 시작된 곳이 알맹상점이다. 고 대표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긍정적 기준을 만들어낸 것을 상점이 제일 잘 한 일이라고 꼽는다. 수익이 되지 않는 일을 병행하는 건 제로웨이스트샵이 실천가들의 거점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Q 알맹상점은 생산업체에 생산단계에서부터 무포장을 요구합니다. 소비자도 그 방향을 이해하고 소비를 하고 있고요. 결국 생산-유통-소비라는 삼합이 잘 맞아야 친환경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유통기업이 진짜 친환경을 잘 하려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나쁜 사례가 한 가지 있어요. 저희 손님 중에 한 분이 대형마트에서 먹거리 리필 사업을 시범 도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실까지 가서 경험한 일이에요. 원하는 제품이 리필용으로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직원이 소비자 판매용을 뜯어서 리필 기계에 넣더라는 거예요. 포장을 뜯어서 버릴 거면 정식 제품으로 사겠다고 말했더니 직원이 친절하게도 리필로 구매하면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더군요.

심지어 자기 용기를 가져갔는데 깨끗하게 종이봉투를 이용해보라며 빵종이를 권유하고 구매 직후에는 이벤트 기간이라며 플라스틱 다회용 용기를 증정품으로 주더라는 거죠. 그 결과 손님은 결국 이게 무늬만 리필이구나, 친환경이 아니구나를 느꼈대요. 유통이 따라주지 않고 일하는 직원들의 마인드가 따라주지 않는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응축하고 있는 얘기죠. 저는 이게 나중에는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변해야 해요. 그냥 리필만 한다고 접근할 게 아니라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Q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유통 생태계라는 건 뭔가요?

리필을 하려면 벌크로 들어와야 해요. 화장품을 200g씩 리필해가는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는 화장품을 큰 말통으로 공급하는 화장품 업체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제품을 하나하나 까서 말통에 넣는 상황이 발생해요. 유통에서부터 벌크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죠. 문제는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뤄 표준화된 유통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기업에서 리필을 위한 벌크 생산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예요. 소량이라 돈은 안 되고 손은 많이 가죠.

그런 면에서 오히려 작은기업들과 무포장 거래를 하는 건 쉬워요. 일단 업체 측에서 원하는 최소 수량이 많지 않아요. 보통 무포장을 하게 되면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래치나 오염을 걱정하는데 반품을 하지 않겠다고 보장하면 포장을 없앨 수 있어요. 제품은 좋은데 알릴 기회가 없었던 기업들은 소비자를 만날 접점을 만들고 우리는 무포장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서 서로 상생하는 구조가 생기죠. 리필 스테이션은 소비자를 만나는 최종 말단이에요. 이곳에서 소비자는 플라스틱 용기도 안 쓰고 펌프질도 직접 해 가기 때문에 가격이 더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작동하려면 포장을 최소화한 형태의 유통벌크와 무포장 제품은 포장이 빠진 만큼 싸게 공급돼야 해요. 그런데 이게 아직 안 됐어요. 그래서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하려면 생태계가 필요한 겁니다.  

◆ 불편한 이중포장...1차 농산물이라도 무포장 필요

소비자로서의 고금숙은 잘 먹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프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직거래와 탄소저감농업 식자재를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태농업을 한 저탄소 식품을 무포장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늘 아이러니다. 특히 소분 규제가 가장 낮은 1차 농산물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포장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것의 그의 시각이다. 고 대표는 이 문제에 있어서 기업이 분명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Q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을 하다 보면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가장 많이 버리는 쓰레기는 뭔가요?

비닐류예요. 집이나 자연에서만 사는 게 아니니 플라스틱 프리를 100% 할 수는 없잖아요. 문제는 먹을거리가 대부분 묶음포장 돼 있다는 겁니다. 저는 웬만하면 온라인 쇼핑은 하지 않고 주로 망원시장과 생협에서 직접 쇼핑을 해요. 생협은 직거래와 탄소저감농업이 플라스틱 프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이 이용해요. 그런데 생태농업을 한 저탄소 식품을 무포장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요. 망원시장에서는 포장 없는 것을 고르지만 생협에 갔을 때는 받침 트레이가 없는 것, 비닐에만 들어있는 것을 선택해요.

버섯을 예로 들면 비닐에만 든 게 있고 받침접시가 들어간 게 있어요. 받침이 있다는 건 비닐에도 싸여진 이중포장이라는 거거든요. 그럴 때는 비닐만 있는 걸 선택해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비닐이 많이 나오는 거죠. 생협이 자원순환 문제를 인식하고 재사용 운동에 나서고 무포장 제품으로 변화하고는 있지만 무척 느린 것 같아요. 묶음포장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Q 어떤 방향으로 더 적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적극적으로 포장을 없앨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제품에서 100% 플라스틱 프리를 하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농산물에 한해서라도 포장을 풀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특히 생필품인 1차 농산물은 법적으로 포장지 규제나 소분 규제가 낮아서 포장을 안 하고도 팔 수 있거든요. 제품을 모아놓고 ‘감자’라고 크게 써놓기만 해도 돼요. 물론 생협은 기업이라서 법적 문제와 규모의 경제를 생각해야 하지만 1차 농산물이나 유통과정에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 등을 산지 직거래를 하고 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포장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포장 없이 사먹을 수 있는 것은 생협에서도 까서 판매했으면 하는 거예요. 만지면 무르기 쉬운 딸기 같은 것을 제외하고 당근이나 애호박은 포장 없이도 팔 수 있잖아요. 시장에서도 인큐베이터 호박이 아닌 걸 사기가 힘들거든요. 그런 대안을 위해서 조금만 더 나아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소비자로서 원하는 거예요. 먹는 건 생존에 필요하기에 농산물 소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사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기업에서 좀 더 많은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Q 소비에도 이 정도면 환경에도 나쁘지 않고 즐겁다고 느껴지는 선이 있습니다. 어떤 물품을 소비할 때 즐거움을 느끼나요?

온라인을 잘 안 쓰는지만 요즘은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어글리어스 물건들을 살 때 즐거워요. 저는 저희 상점 외상 VIP이기도 한데 리필 제품은 물론 선물도 상점에서 삽니다. 특별한 걸 선물하고 싶을 때 새 소비재를 쓰지 않은 좋은 재활용 제품이 많거든요. 망원시장에서 즉석 식품을 살 때 제 용기에 받아올 때도 즐거워요. 며칠 전에 공덕에 식료품을 리필하는 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이 새로 생겼는데 거기 가서 플렉스 할 때도 즐거웠어요. 그런 곳에서는 쇼핑할 맛이 나요. 먹을 걸 많이 사면 아래 층에 사는 친구들과 같이 나눠 먹습니다. 

고금숙 대표는 자타공인 알맹상점 외상 VIP다.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을 리필스테이션에서 리필하고 선물도 상점에서 재활용 제품으로 산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고금숙 대표는 자타공인 알맹상점 외상 VIP다.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을 리필스테이션에서 리필하고 선물도 상점에서 재활용 제품으로 산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Q 환경보호는 거창한 게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고금숙 대표는 처음에 어떤 것부터 시작했나요?

제로웨이스트 제품 중 가성비가 컸던 걸 꼽아보자면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생리컵이에요. 생리대는 달마다 사야 하고 환경에도 유해하죠. 제 해외 첫 직구가 생리컵인데 사용한지 20년 정도 됐어요. 흔히 제로웨이스트 제품에 대해서 ‘불편한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불편함은 없고 효능감이 컸어요. 돈도 덜 들고 냄새도 안 나고 쓰레기도 안 나와서 즐겁고 좋아요. 실제 매달 계속 쓰니까 지속적인 실천도 가능하고요.

Q 환경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에코 페미니즘을 접하면서부터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절실하게 다가왔나요? 

자본주의 사회가 그동안 비용을 떠넘겼던 두 존재가 있어요. 여성과 자연이죠. 자연이 주는 햇빛과 흙은 공짜라고 생각하고 비용을 계산하지 않아요. ‘어머니 지구’라는 표현처럼 한없이 퍼주는 대상으로 인식하죠. 당연히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착취하고 되돌려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게 사실상 자본주의가 부를 이뤄냈던 방식이에요. 에코 페미니즘은 이런 고리들을 보게 해주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 지구라는 말이 맞을까요? 그건 사랑을 많이 주는 대상이라는 것이지, 존중받지 않아야 할 대상이라는 게 아니잖아요.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책이 있어요.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 말하면서 농부의 손과 제품 업자의 손을 거쳐서 빵이 식탁에 올라왔다고 말하죠.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게 두 가지 있어요. 밀은 누가 키우는가, 밥상은 누가 차리는가예요.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이 두 영역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부러 보이지 않게 해놨어요. 이것에 정당한 가격을 치르기 시작하는 순간 성장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연이 이렇게 된 거예요.

제대로 된 물과 햇빛이 없으면 밀은 자랄 수 없어요. 애덤 스미스는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평생 따라다니면서 밥을 챙겨줬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는 빠져 있죠. 이 두 가지를 보는 게 에코 페미니즘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제 목소리를 찾아주고 존중하자는 거예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깨우는 거죠. 

Q 홍수열 소장을 비롯해 환경 활동가들과 단체톡에서 얘기를 나누신다고 들었습니다. 단톡방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가 뭔가요?

가장 최근 방에서 나온 주제는 음식물 분쇄기예요. 한 유력 대선후보가 음식물 분쇄기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는 듯한 발언을 했고 사람들과 분노하면서 음식물 분쇄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음식물 분쇄기 관련 사안과 관련해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서명을 하고 그건 쓰레기 무단투기와도 같다고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겨우 틀어막고 법적으로 금지시키려고 하는데 규제를 풀어주자고 발언하니 우려가 되었죠.

또 요즘 핫한 건 종이팩 재활용 문제예요. 종이라고 하면 친환경이라고 생각되지만 종이팩 재활용률은 16%로 제일 낮아요. 우유팩의 84%가 버려지고 있는데 이건 시스템 때문이지 사람들이 종량제 봉투에 우유팩을 버려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걸 바꿔보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 저도 올해 이와 관련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Q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정책이 중요합니다. 기업도 법적인 가이드라인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방선거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환경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탄소세나 플라스틱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규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유럽처럼 재생원료 사용의무화에도 속도를 내야죠. 결국 환경은 경제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경제의 일부로 환경이 비용을 발생시키고 돈을 벌게 만들어야 환경이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 같아요. 환경을 경제에 편입시킨다는 게 뭘까요. 지금은 재생 플라스틱이 신제 플라스틱의 30% 이상 비싸요. 규제가 없으면 누가 재생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플라스틱세나 탄소세를 도입해서 강제로라도 이득을 보는 행동이 되게 만들어야 하죠.

리필 가게를 이용하거나 종이영수증을 쓰면 포인트를 제공하는 탄소중립 실천포인트제도 제도적 장치 중 하나예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통합해서 기후위기에 전 사회가 전시에 준하는 것처럼 체계를 짜야 합니다. 산업체계를 개편하고 로드맵을 짜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부서가 산자부나 기재부와 맞먹는 위상과 힘을 가져야 해요. 앞으로 10년간 선도적으로 대응을 못 해내면 경제도 무너집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등 고탄소 석유화학 사업으로 먹고 살고 있는 국가인데 고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체계를 저탄소로 돌리는 데 굉장한 고통을 요구할 거예요. 이 전환이 힘든 만큼 지금부터 대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상점에 오셨죠. 일상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실천이 많을텐데 어떤 걸 제안할 수 있을까요? 

비행기 대신 웬만하면 기차나 버스여행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국내에서는 제주도만 빼면 기차여행이 가능하죠. 단거리 비행기 여행은 특히 가성비가 떨어져요. 돈의 가성비가 아니라, 탄소발자국 문제죠. 비행기에서 탄소가 배출될 때는 이륙과 착륙할 때예요. 그래서 단거리 비행이 거리당 탄소배출량이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은 채식지향 식사를 하고 텀블러 사용을 생활화하기, 5층 이하는 계단 이용하기, 손수건 들고 다니기, 고체형 치약이나 샴푸바 사용하고 선물하기, 필요없는 건 거절하기, 분리배출 잘하기 등이 있겠네요. 분리배출은 너무 세세하게 잘 하려고 하기보다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는 4대 원칙만 잘 지켜도 재활용질이 높아져요. 

Q 외출할 때 가방에 항상 챙겨다는 물건은 뭔가요?

지금은 텀블러, 가벼운 장바구니, 고체치약, 수저, 생리컵, 손수건, 대나무칫솔, 리필한 로션이 있네요. 가죽쇼파를 재활용해서 만든 지갑과 종이비누로 만든 명함도 있습니다. 물을 묻히면 비누가 돼요. 그리고 소소한 먹을 거리요. 

Q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뭘까요?

사안이 심각하다 보니 기후위기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속적인 비관적인 생각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아요. 같이 손을 잡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비관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행동을 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나는 기후위기 집회는 어렵고 무거운데 하면 온라인 댓글이라도 다는 거죠. 예를 들어 컵보증금이 300원이 되었다고 화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찬성한다, 텀블러도 있고 제대로 갖다 주면 돌려받는데 왜 그러냐’고 하는 거죠. 우울한 상황이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삶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찾아서 하나라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어요.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예고된 미래 앞에서 같은 운명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늦출 순 있어도 막을 순 없다고 말합니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의 가속화 여부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경제 활동은 환경 문제를 동반합니다. 내딛는 걸음마다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고 경제 논리의 한 가운데 있는 기업에 우리가 책임을 묻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기업도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그 속에는 의식있는 소비자못지 않게 환경 문제를 정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호와 외침을 넘어 자기 자리에서 환경을 위한 디테일을 하나씩 더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장의 히어로는 각자의 현장에서 환경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환경과 경제를 양 손에 올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환경과 경제에 대한 새로운 환기점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key@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