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와 이전 발표 틀려

급발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인 사고기록장치(EDR, Event Data Recorder)에 기록되는 항목이 차량 제조사마다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는 국토해양부 자료와 이전 국토부 공식 발표가 서로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10일 임내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사들 중 최근 국토부 급발진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스포티지R 급발진 의심 사고 조사 결과가 서로 틀린 부분이 발견됐다. 합동조사단은 스포티지R 사건 조사에서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보면 기아자동차 모델로는 아예 이 사실 자체를 알 수가 없다.

조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얘기다.

◆'늑대 소년'은 누구인가
논란의 핵심은 기아자동차에서 정부 측에 제공한 자사의 EDR 기록 항목이다. 임내현 의원실이 지난 5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아차는 EDR을 통해 수집할 수 있는 45개 항목 중 31개 항목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기아차에서 제조한 차량은 운전자 안전벨트 착용 여부(Safety belt status, driver), 전면 에어백 배치(Frontal air bag deployment) 등 두 개 항목의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30일 국토부 급발진 합동조사반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두 대의 사고 차량 조사 결과 중 기아 스포티지R 차량 EDR 데이터에는 이 두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박기욱 교통안전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국토부 브리핑 현장에서 직접 뽑아 낸 데이터를 토대로 합동조사반은 "조사 결과 운전자가 사고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었다.

발표 현장에서 피해자 이조엽 씨는 "블랙박스 영상에 들어 있는 소리를 들어 보면 내가 안전벨트를 매는 소리가 들리는데, 합조반이 추출한 EDR 기록에는 안전벨트를 안 맨 것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본지가 입수한 스포티지R 사고 차량 EDR 데이터를 봐도 이 두 항목은 포함돼 있다.

합동조사반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제시한 근거는 바로 이 자료에 나와 있는 'Not Supp(orted)'라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다.

▲ 지난 8월 30일 국토부에서 발표한 스포티지R 사고 차량의 EDR 데이터 일부

 

게다가 기아자동차의 정비매뉴얼을 보면 이 항목들이 분명히 포함돼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기준으로 정한 총 15개 항목을 보여주는 이 자료에 따르면 운전자 안전벨트 착용 여부, 전면 에어백 배치 및 작동 상황 등이 수집되게끔 돼 있다.

그 중에서도 에어백 작동 여부는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해당 매뉴얼은 강조하고 있다.

결국 30일날 발표한 EDR 조사 결과가 잘못됐든지, 또는 제조사 측에서 EDR 기록 항목 자체를 누락·조작해 정부에 제출했고 국토부는 조사 결과 발표 후에도 제출 자료의 진위조차 몰랐다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천차만별인 EDR 수집 항목…정말 기준은 없나
자료에서 두 번째로 따져 봐야 할 점은 각 사마다 다른 EDR 기록 항목이다.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 37개, 기아차 31개, 지엠대우 29개, 르노삼성 38개, 쌍용자동차 5개 항목이 EDR에 기록된다.

주요 차별점을 살펴 보면, 르노삼성은 급발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 항목인 '엔진 스로틀 장치 개폐 여부'가 기록되지 않고 쌍용차는 '브레이크 작동 여부'가 기록되지 않는다.

그런데 EDR에 이 기록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해 안 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내용이 없으면 EDR의 주된 기능인 사고 시 에어백의 적정한 전개 여부를 EDR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주요국은 수집 항목 기준을 세워놓기도 한다.

EDR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는 EDR에 기본적으로 탑재돼야 하는 공통된 정보가 있다"며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도로교통안전국 관보를 통해 15개 항목은 기본으로 (EDR이) 기록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2006년 8월 EDR에 포함돼야 하는 수집 항목의 최종 기준을 결정해 발표했고, 여기에는 르노삼성과 쌍용자동차가 자사의 EDR에 없다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 전문가는 "5개 부품 회사가 전세계 EDR 관련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개별 제조사마다 수집 항목 기준이 다른 제품을 판매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기록장치(EDR, Event Data Recorder)란? 자동차 사고 전 5초 간의 차량 상황을 기록하는 장치로, 에어백 작동을 조절하는 에어백 전자제어장치(ECU) 안에 들어 있는 칩이다. 원래 자동차 사고 기록을 토대로 에어백 성능을 확인·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차량에 탑재돼 왔으나, 최근에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정말 있었는 지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비휘발성 메모리로 된 EDR은 다음 기록이 덧씌워지거나 자료를 인위적으로 삭제하지 않을 경우 영구적으로 기록이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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