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외면한 결과에 피해자들 실망…발표장서도 제조사 측 편들기 급급

▲ 완파된 그랜저 급발진 사고 차량 =제공 국토해양부

 

정부가 급발진 의심 차량 2건을 조사한 결과 차량의 기술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 사실상 차량 제조사 측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피해자들은 예상했던 결과라면서도 정부의 이번 발표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합동조사반은 30일 피해자들이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2건의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조사반은 "3개월에 걸쳐 조사했으나 해당 차량에는 기계적인 결함도 없었고 급발진의 원인이 될 만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1차 조사는 지난 3월과 4월 각각 발생한 기아자동차 스포티지R과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급발진 사고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합동조사반은 우선 스포티지R의 급발진 사고와 관련, 충돌 사고 5초 전까지 운전자의 주행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사고기록장치(EDR)를 공개했다.  EDR은 급발진 여부를 살펴볼 수 있는 핵심적인 기록장치로, 그동안 제조사 측은 기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하지 않았었다. 

이번에 공개된 EDR에 따르면 사고 당시 분당 엔진 회전수(RPM)는 800에서 4000까지 급격히 올라가지만 브레이크를 사용한 기록은 없었다. 이는 사고 피해자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합동조사반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몇 번 연출해봤으나 피해자 주장과는 달리 급발진 수준으로 갑자기 높은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기기 결함은 없었다는 결론.

합동조사반 관계자는 "모의 실험 결과 이 정도 속도는 (급발진이 아니더라도) 날 수 있다"면서 사실상 기기 결함이 아닌 운전자 실책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 4월 대구 와룡시장에서 사고가 난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경우 차량에 EDR이 부착돼 있지 않아 사고 정황이 기록된 CCTV와 엔진제어장치(ECU)를 토대로 분석 결과를 내놨다.

사고 당시 CCTV 기록을 보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가속됐다는 운전자 주장과는 달리 브레이크 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제동장치, 제동계통의 결함, 전자제어장치 등의 고장 여부를 확인했으나 모두 다 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합동조사반은 보다 면밀한 조사를 위해 반도체 분석·시험 공인기관인 QRT 반도체에 엔진제어장치(ECU)의 분석을 의뢰했으나 급발진을 의심할 만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번에 발표된 2건을 포함해 총 6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를 연말까지 조사할 예정이다.

추가 조사에서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급발진 발생상황을 만들어 내 급발진 발생 여부를 공개 실험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번 조사를 계기로 EDR의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만 "EDR을 모든 차량에 의무 장착할 경우 무역장벽으로 인식돼 외국과의 분쟁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면서 "장착 의무화는 하지 않고 장착된 차량은 차량소유자가 요구할 경우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정부 발표 결과에도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부가 소비자보다는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제조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조사를 진행시켰다는 주장이 여전히 거세다.

결과 발표에 동석한 스포티지R 사고 피해자 이조엽 씨는 "최초 조사 당시 ECU에 기록된 결과와 EDR 결과가 시속 18㎞와 32㎞로 상이한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연출한 화면도 사고 당시 상황과 맞지 않고, 당연히 그 상황에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데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EDR 그 자체도 의심스럽다"고 항의했다.

이에 합동조사반 측이 해명을 했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게다가 EDR이 차량마다 식별 가능한 고유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바꿔치기도 가능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며 명확하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씨는 "교통안전공단은 국민을 위한 건지 제조사를 위한 건지 모르겠다"면서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조사에 들어간 것도 문제지만 제조사 측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왜 피해자의 주장은 일축하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국토부는 오는 10월말에 BMW, 현대차 YF쏘나타 급발진 의심 사고 등 2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2차로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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