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삼성그룹 차원 보상 여태 없어

"이명박 대통령도 두 번이나 찾아왔는디 정작 당사자인 삼성 측의 제일 큰 어른이라는 이건희 회장은 한 번도 이 곳에 안 왔쥬" 지난 4년 7개월여를 버티고 버티던 한 서산 지역 피해주민이 힘겹게 뱉어낸 말이다.

지난 13일 기자가 찾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삼길포 항은 여름 성수기를 코 앞에 뒀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이 지역은 2007년까지만 해도 수산물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한참 조업 중이어야 할 배들은 앞바다에 다 정박해 있었고 그 많은 횟집에도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성수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거리는 동네 주민만 몇몇 보일 뿐이었다. 손님이 없다보니 횟집에서 회를 뜨고 버릴 고기 내장도 없다. 버리는 내장을 먹고 사는 갈매기들이 가게 앞 파라솔까지 와서 눌러 앉아 있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 주는 과자 한 개라도 줏어 먹을 수 있을까 해서다.

인근 벌천포 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서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한 바닷물이 고즈넉히 자리 잡은 해송(海松) 옆 해안가를 아름답게 가리고 있었다. 뙤약볕은 여름이 온 걸 알렸지만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 관광객이라고는 한 팀 뿐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오토캠핑장도 설치돼 있었지만 휑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당연히 먹거리 장사를 하는 이들도 씨가 말라 있었다.

단지 보이는 것은 황량한 앞바다와 가끔씩 지나다니는 유조선들 뿐이다. 그리고 웅장하지만 차가워보이는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풍광을 가리운다.

사고가 난 직후 기름을 제거하겠다고, 피해 어민들을 돕겠다고 전국에서 몰려 든 자원봉사자로 북적이던 때도 다 옛일이다. 사고가 난지 5년이 지나면서 국민의 관심 속에서마저 태안은 멀어지고 있는 것.

"가장 불쌍한 분들은 맨손 어업을 하시는 분들이죠. 국제기구란 곳이 어업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영업한 자료를 달라고 하는데, 이분들이 그런 게 있나요. 유류 피해 때문에 어업도 못하고 생계비 지원을 받다가 그나마도 끊겼어요. 이후 정부 보증으로 대출을 받았는데, 그것도 만기가 다 와서 빚쟁이로 몰릴 처지들이죠"라며 말하는 마을 주민의 음성에서는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24일로 사상 최악의 유류 사고가 일어난지 정확히 1630일이 지났다. 2007년 12월7일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대산 석유화학단지로 향하던 허베이스피리트 호와 삼성중공업의 예인선 삼성1호기가 충돌하면서 1만900t의 원유가 서해안 바다로 쏟아졌다.

피해 범위만도 375km로 사고 해안인 태안이 위치한 충청남도부터 전라남도까지 3개도 11개 시군에 피해가 미쳤다.

유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었다고 조사된 건수만도 12만7414건이다. 금액 규모도 압도적이다. 피해 보상으로 총 2조6295억원의 보상액이 청구됐다. 이전에 가장 큰 유류 피해로 회자되던 1995년 씨프린스 호의 1000억여 원에 비하면 26배 이상의 금액이다.

그러나 4년 7개월이 지나는 동안 유류피해 보상이 지연됐고 당장 생계비로 받은 수협 대출이 만기에 이르면서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피해민도 4명이나 된다.

피해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보상 문제가 삼성 측에서도, 국제기금 측에서도 거의 해결되지 않으면서 이같은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 차원에서의 보상은 없었다. 사고가 난 지 2개월이 지난 2008년 2월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1000억원의 지역발전기금을 약속했다. 법적인 금액이 아닌 사회적 책임 차원의 금액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급된 금액은 없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돈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단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 등 수령하려는 주체가 나타나지 않았고 유류피해민들은 5000억원의 너무 많은 금액을 보상하라는 요구 때문에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서해안유류피해민대책협의회 측은 이 금액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등 5개 기관이 산정한 피해액 평균만도 6655억원 수준이다. 게다가 지급 의지가 있었다면 다른 방안을 강구했을 거라고도 반박한다.

박종권 서산시유류피해민연합회 회장은 "그 금액(1000억)을 4년 7개월 동안 제3기관인 은행에만 넣어놨어도 이자만도 몇십 억일 것"이라며 "보상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피해민들은 삼성토탈 공장 증설 문제 제기를 기점으로 오는 8일 삼성토탈 대산 공장 정문 앞에서 서해안유류피해민총연합회 출정식을 갖고 삼성과 정부에 대한 농성에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거대 기업 삼성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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