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플레이션, 친환경 정책 속 늘어난 수요가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현상
"물가 인상으로 인한 충격 최대한 완화하면서 탄소중립 실현하는 방안 시급"

풍력발전에 필요한 고성능 자석은 네오디늄과 같은 희토류가 필요하고 태양광 패널에는 인듐이나 갈륨 등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사진 Pixabay)/그린포스트코리아
풍력발전에 필요한 고성능 자석은 네오디늄과 같은 희토류가 필요하고 태양광 패널에는 인듐이나 갈륨 등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사진 Pixabay)/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기후변화 대응책 영향으로 에너지 가격이 장기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벨 슈나벨 ECB 시장조작 담당 이사는 최근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 참석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독일 경제학 교수인 슈나벨 이사는 ECB 내 대표적인 매파로 꼽히는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슈나벨 이사는 7년 전 유럽에서 시작된 4조7000억유로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에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유럽 각국의 탈탄소 정책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고 진단했다.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지만 기후변화 부작용 탓에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친환경 정책은 정말로 인플레이션을 부를까?

◇ 친환경 정책, 왜 인플레이션 일으키나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이라는 말과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 현상의 합성어다. 탄소 규제 등 친환경 정책으로 아연·알루미늄·니켈·구리 등 산업금속이나 화석연료의 공급은 줄었지만, 수요는 증가해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이다. 친환경 정책에 따라 가격이 올라간 화석 연료 등에 투자하는 그린플레이션 투자라는 말도 있다.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전반적인 비용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즉,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을 규제하면 필수 원자재의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생산 감소로 이어지면서 가격이 높아진다.

지난해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재료인 리튬과 망간, 주행거리 증가에 필요한 차제 경량화 필수품인 마그네슘의 수요 증가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전기차 생산과 태양광·풍력 발전에 필요한 구리·알루미늄·희토류 등의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마그네슘·희토류·리튬 등의 주요 생산국인 중국의 경우 환경규제와 이에 따른 전력부족 사태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원자재 생산량이 감소했다. 구리를 주요 공급하는 칠레와 페루에서도 같은 이유로 공급이 감소했다.

◇ 기후위기, 기술로 해결하기 힘들어...충격 최대한 완화하면서 해결해가야

현재 유럽 내 물가 상승세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5% 상승하며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7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ECB는 에너지 가격이 곧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최소 1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지난달 ECB는 유로존의 올해 물가 상승률을 3.2%로 상향 조정하면서도 내년에는 2%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계절이나 기후에 따른 변동이 심해 화석연료 발전소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석탄·천연가스 등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의 경우 기후변화로 풍력 발전량이 부족해지면서 화석연료 발전량이 증가했다. 여기에 석탄과 전기값이 오르면서 그린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친환경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와 전기차 등과 관련된 원자재 수요가 급증하지만,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원자재 생산량이 줄어들면 공급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공급 부족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소비자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린플레이션 현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의 친환경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며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로, 기후변화라는 말로는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범인류적 과제로 기술로 되돌려 놓으려는 정책은 번번히 실패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장의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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