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인류의 숙제, 두 마리 토끼 모두 잡기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정부가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3가지를 공개했다. 재계와 산업계 등은 그 계획에 대해 우려 입장을 밝혔다. 배출량 감소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하면 일자리 감소나 국제 경쟁력 저하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환경의 논리, 일자리 감소와 국제 경쟁력 등은 경제의 논리다. 이 두 가지 논리를 잘 융합해 가장 알맞은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정치의 숙제다. 말하자면, 어제의 탄소중립 관련 발표와 그에 따른 재계의 주장은 환경과 경제, 그리고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슈라는 의미다.

환경은 중요한 문제다. 놓을 수 없는 가치다. 기후위기가 이어지면 인간이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서 환경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러므로 환경 얘기 할 때 재계와 산업계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다른 각도의 시선에서도 보자. 경제도 중요한 문제다. 놓을 수 없는 가치다. 경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쉽게 말해 돈이 하나도 없으면 그 인간 역시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기 어렵다. 하지만 역시, 세상에서 경제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러므로 재계와 산업계 역시 다른 쪽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복잡하고 어렵지만 둘 다 해야 한다. 환경을 위해 경제를 내려놓을 수 없고, 경제를 위해 환경을 내려놓을 수 없다.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들어올려야 한다. 2021년을 사는 이 시대 인류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 환경 문제를 경제 논리 뒤로 미루지 말자

인류는 환경 문제를 경제 논리 뒤로 미뤄왔던 오랜 습관이 있다. 그 습관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역사학자 겸 작가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오염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직도 개선에 필요한 진지한 경제적, 정치적 희생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발 하라리는 “경제성장과 생태계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정치인, CEO, 유권자들의 십중팔구가 성장을 선호한다”고 말하면서 “21세기에도 이런 식이면 우리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생태학자 폴 셰퍼드는 인류의 환경 문제에 대해 “우리는 물에 완전히 빠질 때까지 거의 몇 인치만 남겨둔 채 머리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상태”라고 비유한 적 있다. 쉽게 말하면 ‘임계점이 가까웠다’는 경고다. 참고로 폴 셰퍼드는 1925년생으로 지난 1996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시간이 없다’는 얘기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의 왜곡된 주장이었을까? 아니다. 그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세자르 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내일〉을 연출했던 영화감독 시릴 디옹은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순진한 낙관주의자거나 무모하게 용감무쌍한 자”라고 경고했다.

◇ 경제 제쳐두고 환경에만 집중하라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 문제 모두 제쳐두고 환경적인 가치에만 집중하라는 건 아니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얻을 교훈이 있다. 바이러스 확산 줄이려고 사회활동을 무조건 줄이면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협적인) 경제 위기가 따라온다. 하지만 경제를 위해 거리두기를 모두 풀면 그것 역시 감염 확산의 요소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숙제고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지점이다. 쉽지 않은 문제고,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안전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니 그 문제를 모두 묶어 현명하게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그렇게 넘겨야 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에서 응답해야 한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환경신문이 아니다. 경제신문도 아니다. ‘환경경제’신문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가치라는 걸 주장하기 위한 제호다. 그래서 환경과 경제 분야 모두 취재한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를 함께 다루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함께 다뤄야 한다.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 가치가 이제는 아니어서다.

환경과 경제 문제를 함께 다루자는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다.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그동안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환경을 기본에 두고 성장을 도모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쉬우면 세상에 한 마리만 잡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 그린과 비즈니스...둘이 아닌 하나의 키워드 되어야

시간의 추를 잠시 뒤로 돌려보자. 기자는 지난 2009년 밀레와 일렉트로룩스 유럽 본사를 방문한 적 있다. 당시 밀레는 산업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75%를 난방용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등 적극적인 ‘그린 비즈니스’ 정책을 시행 중이었다. 일렉트로룩스는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녹색 제품(Green Product)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요즘 많은 기업이 관심 가지고 실천도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었다.

당시 일렉트로룩스 본사 환경감독관(environment director) 브루토씨는 “기후 변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밀레 본사를 방문해 환경 사무관 베게트씨와 만났다. 기자가 환경 분야에 투입하는 예산과 투자비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하면서 “예산을 책정하는데 ‘환경 분야에 얼마’라는 식으로 딱 잘라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는 12년 전이다. 당시 기자의 유럽 출장 주제는 ‘그린 비즈니스’였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얘기보다는, 환경 이슈를 다루면서도 그 가치를 산업적인 시선으로 연결하는 기업과 그것을 이끄는 정부 정책 얘기가 주된 화두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린과 비즈니스가 하나의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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