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소비자를 위한 기한 표기 필요”
소비기한 둘러싼 팽팽한 논란들
소비자들의 궁금증, 유통기한 넘겨도 여전히 안전할까?

지난 16일 환경단체가 국회앞에서 소비기한표시제 도입을 위한 시위를 했다.(소비자기후행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16일 환경단체가 국회앞에서 소비기한표시제 도입을 위한 시위를 했다.(소비자기후행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오현경 기자] 유통기한을 ‘음식이나 식재료를 버려야 하는 순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환경단체 등은 식품 관련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도입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러 의견을 취재했다. 

지난 16일 소비자기후행동, 자원순환사회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충분히 섭취가 가능한 제품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 심각하고 사회적 비용 손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음식은 얼마나 버려질까? 2019년 세계농업기구(FAO)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3억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고, 여기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연간 33억 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기후행동은 ”우리나라 생활폐기물의 약 30%가 음식물 쓰레기로 한 해 발생량이 570만 톤에 육박하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3년 발표한 ‘유통과정에 따른 식품 폐기 손실 비용’에 따르면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폐기비용이 5천 900억 원, 가정 내 폐기 비용이 9천 500억 원으로 한 해 평균 1조 54백억 원이 소비된다. 

◇ 환경단체 “소비자를 위한 기한 표기 필요”

환경단체들은 식품폐기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를 위한 기한’ 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이 판매 가능 기한인 유통기한을 식품의 폐기시점으로 생각해 버려지는 음식물이 더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소비기한’이란 무엇일까?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조건에서 소비할 경우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인정되는 기한이다. 일반적으로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더 길다.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제품을 오늘 구매했으면 내일이나 모레도 그걸 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제품마다 유통기한이 서로 다른것처럼 소비기한 역시 그렇다.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유통기한과 장기보관 식품에 주로 사용하는 품질유지기한만 표기하고 있어 신선품의 소비기한이 분명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다.

해외 여러 나라들은 이미 소비기한 표기를 권고하고 있다. CODEX (국제식품규격위원회)는 2018년 소비자 혼란 및 식품폐기물 감소를 이유로 유통기한을 식품기한 지표에서 삭제했다. 영국도 2011년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 도입에 따라 유통기한 표기를 삭제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Best if used-by)을 표기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소비기한이 공식적으로 표기되지는 않고 있다. 관련 제도에 대한 필요성은 2011년도부터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소비자기후행동은 “그동안 낙농업계나 특정 산업계에서 소비자 안전문제와 2가지(유통·소비) 기한에 대한 혼란을 이유로 반발했다”고 설명했다.

소비기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최근에도 꾸준했다. 지난해 7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단독표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식품안전 관리 파악 미흡의 이유로 법안이 통과하지 못했다. 

◇ 소비기한 둘러싼 팽팽한 논란들 

소비기한 표기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어보자. 냉장관리 및 유통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있다. 이는 낙농업계와 유업계가 반대의 근거로 내세운 이유기도 하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하지 않고 소비기한만 늘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현재도 오픈매대는 적정온도 보다 높아 유통기한 내에도 변질사고가 일어난다. 이 상태에서 소비기간을 늘려 변질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이 제조사에 민원을 제기하고 제조사는 유통사와 다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유에 대한 이미지도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간을 지금보다 길게 설정했다가 소비자가 구매한 제품에 혹시라도 이상이 생기면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읽힌다. 

이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개정안 도입 후에 유예기간을 준다고 하지만, 먼저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고 법안을 도입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통과하면 이후 유통관리 개선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변질 민원 발생시 책임을 떠안는 것은 제조사다. 10년 전과 냉장유통 관리 시스템이 똑같은데 왜 소비자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기한 표기제 도입을 추진하며 적극적인 홍보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6월, 소비자단체·학계·업계와 함께 ‘소비자 중심의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열린포럼을 개최했다. 당시 식약처는 포럼 개최 사실을 알리면서 “식품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잘못 인식해 정상제품임에도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는 문제가 야기되어 왔는데, 이의 해소방안으로 소비기한 도입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선정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강병원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법안심사 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식약처 관계자는 “제품 겉면에 유통․보관 방법들이 표시가 돼 있다. 원칙적으로 보관법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소비기한 내에 소비하십시오’를 표기한다”라고 발언했다. 

이와 더불어 식약처는 냉장유통 시스템이 개선돼 소비자에게 정확한 소비시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지난해 6월 식약처는 ‘식품일자표시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현재 식품 제조 및 포장기술의 발달과 냉장유통 시스템의 확장으로 유통환경이 개선되었다”라고 밝혔다. 일례로 1995년에는 우유 유통기한이 5일이었으나 2020년도에는 12~15일 사이로 길어졌다. 식약처는 P4G서울 정상회의 개최에 맞춰 ‘식품 등의 표시ㆍ광고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도 추진한 바 있다. 

◇ 소비자들의 궁금증, 유통기한 넘겨도 여전히 안전할까? 

환경단체 등은 소비기한을 적극 도입하면 신선식품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기후행동 김소담 활동가는 “소비자입장에서 폐기시점에 대한 정확한 시점을 주는 것이 식품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유통과 소비기한의 차이가 큰 우유나 두부같은 신선 식품들을 유통기한만 넘어가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소비기한을 도입하면 쓰레기 낭비 방지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식품이다”라고 주장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연구결과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2년 한국소비자원은 우유, 치즈 등 식품의 유통기한 만료 후의 상태를 분석했다. 당시 소비자원은 포장개봉 전과 개봉 후 모두 냉장온도(0∼10℃)를 유지하면 우유는 최고 50일까지, 치즈는 최고 70일까지 일반세균 및 대장균군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비기한 도입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기존의 안전하다는 유통기한을 버리고 늘어난 기한을 어떻게 신뢰를 할 수 있을지에 우려가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행 표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2월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병행표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은 반대 의견을 냈다.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이유는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자는 취지인데, 두가지 기한을 함께 표기하면 소비자들이 복잡하게 느껴서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기후행동은 “병행표기에 대한 국내 보고서(유통기한 및 소비기한 병행 표시에 따른 영향분석-한국보건산업진흥원/녹색소비자연대,2013)에서 소비기한 또는 품질유지기한 단독 표기시 구매의사 지수(WTP)에서 보다 높게 나왔고, 병행표기는 뚜렷한 이점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병행표기 사례도 없다”며 “현재 소비기한을 도입한 국가는 단독표기 형식이다. 미국은 유통기한 표시가 있지만 병행하지 않을뿐더러 소비기한을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원과 식약처 등은 안전 문제를 가장 우선 순위에 놓고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이나 기한내 식품을 섭취시 안전하다는 보장을 전제한다”며 “소비기한 도입이 식품폐기물 감소를 목표하지만 소비기한을 설정하는 것이 냉장관리나 유통시스템을 무시하고 기한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제품특성과 유통상황을 감안해 기한표시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법안이 도입하면 유통·보관 기준을 강화해 추진할 것”이라며 “유통기한처럼 제품의 공정, 포장, 유통환경 등을 고려해 소비기한을 설정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소비기한 내에만 섭취하면 안전하다”라고 밝혔다.

hkoh@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