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희소성’ 브랜드 가치에 타격 이유로 재고 소각
패션 브랜드 관리비·세금 절감 문제로 단순 매립·소각 처리
브랜드 가치와 효율성 뒤에 숨은 자원 낭비 행태

패션 업계에서는 브랜드 가치와 관리 효율성을 이유로 시즌이 지난 재고 의류를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하고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패션 업계에서는 브랜드 가치와 관리 효율성을 이유로 시즌이 지난 재고 의류를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하고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패션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에 머무는 것이 감염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옷 소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재고 상품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특히 명품 브랜드의 경우 코로나 초기부터 판매 감소가 예고되면서 재고 처리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보복소비 심리로 고가 및 명품 브랜드가 역으로 선전하면서 기우였다는 시선도 있지만 ‘재고 처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새롭게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패션 업계에서는 시즌이 지난 재고 의류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재고 처리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이월 상품으로 할인 판매하는 방식부터 기부, 업사이클링, 그리고 소각 처리까지 방법은 다양하다. 기자가 지인 몇몇에게 패션 브랜드에서 재고 옷이나 가방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옷을 태워서 처리하고 있다고 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옷이 남으면 이월 상품으로 판매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업계 입장에서는 이월 상품 판매가 순진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이월 상품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과는 다르다. 특히 명품 브랜드에서는 ‘시즌 상품이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도 재고가 주는 데미지가 꽤 크다. 왜 그런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옷을 처리하고 있는지, 이러한 선택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봤다. 

◇ 명품 브랜드, 재고 남으면 희소성 이미지 타격

명품 브랜드에서는 대부분 이미지 문제로 시즌이 지난 재고 상품을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미지란 ‘희소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다. 

명품 브랜드에서는 희소성이라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백화점 문이 열기도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은 이를 방증하는 현상이다. 심지어 밤을 새서 제품을 기다리는 ‘노숙런’이라는 말도 생겼다. 명품이 비싸면 비쌀수록, 희소하면 희소할수록 사람들은 열광하고 욕망한다. 명품에 있어서 ‘재고 없음’은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더 빨리 움직이라는 말로 작용한다. 백화점 문도 열기 전에 줄을 서는 이유다.

이를테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4월 중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값이 오르기 전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들로 새벽부터 매장 앞에 줄이 이어졌다. 지난달 14일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는 수백명이 줄을 서는 오픈런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금 사는 게 가장 싼 것이라는 인식, 재고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만든 풍경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오픈런과 관계 없이 명품 브랜드들은 재고가 남으면 극비리에 소각을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샤넬 뿐만 아니라 루이비통과 초고가 브랜드로 알려진 에르메스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제품이 소각되는 건 아니다. 유행이 없는 클래식 품목은 제외된다. ‘MBC뉴스‘나 ‘세계일보‘ 등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명품 브랜드에서 재고를 판매하지 않고 소각해버리는 것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재고 상품 형태로 물건을 하나 더 파는 것보다 ‘품귀현상’으로 이미지를 챙기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재고 소각 후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면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브랜드에서도 재고 상품을 소각하고 있다.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도 대부분 남은 재고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하고 있다. 역시 브랜드 관리 차원이라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재고를 창고에 보관하며 관리하는 비용 대비 소각 처리가 더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리비와 세금 절감 등 재고 관리비 효율화를 위해 남은 옷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 브랜드 가치와 효율성 뒤에 숨은 자원 낭비 행태

업계 안팎에서는 패선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진행하고 있는 재고 처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생산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비환경적이며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소각 대신 기부나 중고 시장에서의 유통을 고려하거나 다른 업사이클링 방법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고를 소각 또는 매립하는 것에는 단순히 활용도가 아직 남은 옷을 태움으로써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옷 한 벌에는 그 옷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공정 과정이 포함돼 있다. 옷을 대표로 들긴 했지만 가방과 신발 등 모든 패션 아이템이 해당하는 얘기다. 여기에는 제품 제작을 위해 들어간 원료와 탄소 배출량까지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파타고니아는 재킷 한 벌에 들어가는 목화 생산을 위해 135리터의 물이 소비되고 9kg의 탄소가 배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재킷 제작 과정의 60%에 재활용 소재를 활용했음에도 이 정도의 탄소와 물이 소요됐다. 그렇다면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지 않은 일반 의류나 가방에는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유럽을 시작으로 제품 소각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재고 처리 방식이 과거에는 맞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을 빼놓고는 패션도 완성되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기업이 내세우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효율성’이라는 개념도 제고해야 하는 시점이란 의미다. 

다음에 이어질 후속기사 ‘소각 위기 이월 상품...환경적으로 처리하는 브랜드는?’에서는 업계에서 소각 위기에 있는 이월 상품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최근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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