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구하려고 빨대 거부했던 소비자들...기운 내자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가 화제다. 정확하게 말하면 환경 문제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다.

그 문제에 평소 관심이 덜한 사람이라면 저 이름이 낯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자가 활동하는 환경 관련 커뮤니티나 단톡방에서는 저 얘기가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간다. 탄소중립이나 제로웨이스트같은 최근의 환경 키워드보다 더 자주 언급된다.

씨스피라시는 대규모로 이뤄지는 어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다. 공장식 축산으로 고기나 가죽을 얻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 것처럼. 큰 규모의 어업으로 물고기들이 사라지면서 바다가 제 역할을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물고기들이 사라지면 물고기의 배설물 등을 먹는 해조류도 사라지고, 이렇게 바다 속 생물들이 사라지면 대기 중의 탄소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해야 할 바다가 그 힘을 잃는다는 경고다. 우리가 탄소중립 시점으로 얘기하는 205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해양생물이 멸종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바다가 위기에 처했다는 전제 자체는 사실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다큐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지점이 있다. 바다 생물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가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또는 사람들이 집에서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 때문이 아니라 바로 어업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일까.

◇ 문제는 일회용 빨대가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바다 오염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꽂힌 거북이의 모습이다. 그 영상을 직접 본 사람도 있고, 보지는 못했지만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 장면은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그리고 환경오염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인식하는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씨스피라시는 빨대가 해양 오염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고 말한다. 씨스피라시 내용에 따르면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중 빨대는 약 0.03%에 불과하다. 바다 쓰레기 중 절반은 대규모 어업에서 나온다고 했다. 바다에 버려진 그물만 해도 지구를 몇 바퀴는 감는다는 얘기다.

다큐에 따르면 플라스틱을 삼키고 죽은 바다생물이 연간 1천 마리라면, 부수어획으로 죽는 바다생물은 연간 25만 마리다. 사람들이 생선으로 먹은 물고기가 25만마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수어획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 잡는 고등어나 꽁치 같은 물고기 말고, 그 물고기를 잡으려다 그물에 함께 따라와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다. 씨스피라시는 생활 속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자주 언급하는 환경단체들이 정작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어업과 관련된 단체로부터 지원금 등을 받는 문제도 지적했다.

영상은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 등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특히 파급력이 컸다. 적잖은 소비자들이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바다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대규모 어업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 걸 보고 기운이 빠졌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 쓰던 자신의 모습에서 ‘현타’를 느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애써봤자 별로 도움이 안되는구나’싶어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는 얘기다. '환경 단체들은 왜 이런 문제에 침묵했느냐'는 비판도 많이 들린다.

기자도 다큐멘터리를 인상 깊게 봤다. 미처 모르던 부분도 알게 됐다. 앞으로 바다를 보호하자고 말하는 환경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면 ‘대규모 어업과 관련해서는 어떤 감시활동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소비자들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기사도 필요하지만, 기업과 산업, 정부의 변화를 추구하는 기사를 더 많이 써야겠다는 다짐도 다시 한번 했다. 공장식 축산 문제에는 계속 관심을 가져왔는데 대규모 어업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 영상의 충격...'현타'와 '무기력' 대신 변화의 계기 되어야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이 영상을 보면서 느낀 무기력과 현타가 너무 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다. 영상에서 지적한 문제 의식에 눈을 뜨고 해법을 찾는 게 중요한데, 영상에서 접한 내용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커서 자칫 그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노파심이다.

바다거북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장면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심각함을 느끼고 생활 습관을 바꿨기 때문이다. 혼자만 실천한 게 아니라 기업에 그런 메시지를 전한 소비자들도 있다. 팩음료에 왜 빨대를 주느냐는 편지를 기업 본사에 보내고 빨대 반납운동을 펼친 사람들처럼 말이다.

물론 빨대가 바다오염의 주범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기자도 안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바다로 떠내려가는 건 쉽지 않다. 쌓아둔 쓰레기더미가 태풍에 날려 날아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누군가 바다에 플라스틱을 버렸다면, 그건 시내 한복판에 사는 기자가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에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빨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힌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들이 일회용품 관련 문제를 곰곰이 들여다 본 좋은 계기가 됐다. 그것처럼, 기자는 씨스피라시도 사람들이 분노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행동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내가 쓰레기 줄여도 대세에 지장 없네” 하는 마음으로 무기력해지기 보다는, 바다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걸 실천할 원동력으로 작용하면 좋겠다는 얘기다.

공장식 축산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내가 고기 한번 덜 먹는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실천이 모여야 큰 파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공장식 축산 문제에 관심 갖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런 파도가 생기자 기업과 기관, 정부도 귀를 더 많이 기울이기 시작했다. 바다와 엮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았으니 그걸 본 사람들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어업'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개인의 변화보다 훨씬 더 절실한 건 기업과 산업, 기관과 정부의 변화다. 물론 그들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해양수산부도 최근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난해 개발을 완료한 꽃게, 참조기용 고성능 생분해 그물을 어업인들에게 보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더 늘려야 한다. 바다에 떠다니는 빨대보다 그물이 훨씬 더 많다면, 그물이 바다에 던져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탄소를 줄이겠다고 다들 야단이다. 바다와 바다 속 생물은 대기 중의 탄소를 붙잡아둔다. 물고기와 해조류가 자꾸 사라져 바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육지에서 공장을 덜 돌려도 탄소를 줄이기가 어렵다. 그러니 다들 부지런히 움직이자. 특히 기업과 기업은 큰 걸음을 걸어라. 그래야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애써왔던 개인들이 ‘현타’와서 힘을 잃지 않으니까 말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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