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한여름에나 맛볼 수 있던 수박이 마트 메인 코너에 자리 잡았다. 때 이른 더위로 수박 출하 시기가 빨라진 탓이다. 게다가 지난 3월 서울 평균 최고 기온은 14.8도를 기록했다. 1904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던 봄 날씨에 벚꽃은 99년 만에 가장 일찍 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한여름에나 맛볼 수 있던 수박이 마트 메인 코너에 자리 잡았다. 때 이른 더위로 수박 출하 시기가 빨라진 탓이다. 게다가 지난 3월 서울 평균 최고 기온은 14.8도를 기록했다. 1904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던 봄 날씨에 벚꽃은 99년 만에 가장 일찍 폈다. 

하지만 유난히 포근했던 날씨로 일찍 핀 새싹과 꽃들은 냉해에 치명적이다. 과수나 작물의 꽃이 핀 뒤 수분이 일어나는 시기에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그대로 얼어버린다. 실제로 때아닌 4월 한파에 여의도 15배 면적이 냉해 피해를 봤다. 추위가 극심했던 지난겨울에 봄 냉해까지 입은 사과나무엔 꽃이 핀 가지가 드물 정도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제철 과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농작물이 자라나는 시기 또한 빨라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식물 생육이 빨라지는 등 이상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 전세계, 4월에 이상 기후 현상 앓아

프랑스에서는 이달 초순 이상 기후로 서리가 내리면서 포도 농가가 큰 피해를 봤다. 서리 피해가 유난히 컸던 것은 기온이 올라 포도가 평소보다 성장이 빨랐는데, 철 지난 한파에 막 싹이 난 포도가 피해를 본 것이다.

CNN 기상전문가들에 따르면 프랑스는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기록적인 따뜻함이 이어졌지만, 지난 4일 부활절 주말동안 유럽을 휩쓴 한기 영향으로 급격히 추워졌다. 샹파뉴 지방 기온은 26도 가까이 오른 뒤 1주일도 안 돼 영하 6도 안팎으로 떨어졌다.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밭에 난로 등 불을 지펴 기온 저하를 막으려 했지만 대부분 막 발아한 포도를 지키지 못했다. 유럽 와인 업계 단체에 따르면 포도밭 서리 피해는 프랑스 와인 생산지 80%에 이르고 지역에 따라 산출량이 25~5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제시했다. 

프랑스 장 카스텍트 총리는 날씨로 인해 농작물이 이처럼 피해를 본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역에 따라서 특정 작물의 경우, 연간 생산량의 거의 전부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식물 생육이 빨라지는 현상은 프랑스 외에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상 최대로 건조한 날씨에 서리까지 내리면서 농작물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영국 런던은 지난달 3월 이례적인 고온 현상으로 24.2도까지 오르는 등 1968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 하지만 4월 한 달 내내 7.2mm의 강수량과 역대 가장 추운 날씨로 서리까지 내려 농작물 피해는 물론 과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이처럼 건조한 환경은 북아일랜드지역의 산불로도 이어지고 있다. 

◇ 기후변화는 입맛도 바꾼다?

이 같은 날씨는 단순히 한 계절만의 변화가 아니다. 익숙해진 우리의 입맛 또한 바꿔나가고 있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소(ARS)의 리처드 노비 박사는 이달 초 예일대 기후변화 사이트에 맥도널드의 감자튀김에 주로 쓰이는 러셋 버뱅크 품종의 감자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밝혔다.

러셋 버뱅크 감자는 1845~1850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태의 주범이었던 식물 병원체(plant pathogen)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강화된 품종이다. 러셋 버뱅크는 원료 감자의 유전자 일부를 무력화하고, 다른 감자 품종으로부터 가져온 유전자를 선별적으로 접목한 2세대 유전자변형 감자다. 

그러나 덥고 메마른 날씨는 감자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러셋 버뱅크의 주산지인 미국 북서부의 아이다호의 기온 강수량이 부족해지면서 감자의 전분이 당분으로 변한 것이다. 러셋 버뱅크는 전분 함량이 높아 튀겼을 때 맛이 좋은데, 이 감자를 튀기면 당분이 많은 부분이 검게 변해 소비자들이 꺼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마시는 커피 또한 생산량이 점차 줄고 있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기존에 맛보던 커피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커피는 열매인 커피체리 내부의 생두를 가공해서 만드는데, 재배 온도가 높을수록 체리가 원두보다 빨리 숙성돼 품질이 낮은 커피가 생산된다. 

아벨 케무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원팀은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평균 품질의 커피는 더 많이 생산될 수도 있지만, 고품질 커피는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커피 종은 대부분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종이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99%가 두 품종으로 약 6대 4의 비율로 생산된다. 아라비카는 풍미가 더욱 우수해 커피 전문점에서도 애용하고 있다. 로부스타는 주로 인스턴트 커피 생산에 쓰인다. 게다가 아라비카는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해 생산량이 2040년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 농작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보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

이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변화는 농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소비자에게 되돌아온다. 밀가루나 버터, 치즈, 계란, 고기나 토마토, 양상추 등의 원재료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매달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 19에 이어 한파와 조류 인플루엔자(AI), 국제유가 상승 등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재료 값이 상승하면 식품회사들이 제품 가격을 높이면서, 결국 원가 부담은 소비자가 짊어지게 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6.85로 전월 대비 0.9% 올라 5개월 연속 상승했다. 특히 농림수산물 물가는 지난해 12월 139.23에서 올해 3월 152.54로 13.31% 올랐다. 단순히 농가를 살리기 위한 재정지원보다 더 근본적인 기후변화 위기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최근에는 태풍이나 집중호우, 가뭄, 폭염 현상이 더 잦아지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식량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데,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신품종과 농업기술 개발 등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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