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쓰레기 줍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필환경 에코소비 경향...플로깅+줍깅과도 연결
“쓰레기 주우면서 새 쓰레기 만들지 말아야”

사람들은 모두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기업은 여러 대책을 내놓고, 환경운동가들은 ‘효과가 미흡하다’며 더 많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덜 쓰고 무엇을 덜 버리자는 얘기도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습관과 패턴은 정말 환경적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린포스트’에서는 마케팅 키워드와 경제 유행어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소비 시장을 흔들고 SNS를 강타하는 최신 트렌드 이면의 친환경 또는 반환경 이슈를 발굴하고 재점검합니다. 소비 시장에서의 유행이 환경적으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컬럼입니다.

서른 한번째 주제는 걷거나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의 플로깅, 또는 줍깅입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제대로 버리면 길이 금방 깨끗해집니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과정에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일입니다. [편집자 주]

갈수록 심각해지는 쓰레기 문제. 플라스틱 등 각종 일회용품과 줄이기에 정부, 기업, 소비자가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가 쉽게 남기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도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래픽 :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마땅히 칭찬해야 하고 또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쓰레기를 줍는 과정에서 또 다른 쓰레기가 나오는 것 까지 줄인다면 더 좋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쓰레기를 줍는 게 유행이다. 낯선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다. 여럿이 모야 함께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서로 인증도 한다. 이름만 대면 전부 알만한 유명한 기업에서 쓰레기 줍는 활동을 가지고 이벤트도 여러 건 진행했다. 그런 일을 주로 하는 환경 동호회도 생겼다.

그냥 쓰레기를 줍는게 아니라 정식 용어도 있다. 플로깅(Plogging)이라고 부른다.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업(Plocka Up)과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을 더해 만든 단어다. 쉽게 말해 조깅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줍깅(줍다+걷다)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해졌다.

줍깅은 2년여전부터 국내에 알려졌고 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관련 캠페인도 다수 진행했다. 얼마전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직접 쓰레기 줍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년전부터 환경적인 소비와 실천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작용하면서 플로깅과 줍깅도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 2021년 ‘쓰레기 줍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지난 14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NS에 쓰레기 줍는 사진을 올렸다. 다회용 방바구니와 집게를 들고 이마트 성수점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었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플로깅을 실천했다’는 내용도 함께 올렸다. 정 부회장의 이날 활동은 ‘쾌란 플로깅 챌린지’ 활동이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유쾌한 반란 이사장)가 정 부회장을 지목해 이뤄졌다.

플로깅과 줍깅은 몇몇 개인들만의 실천이 아니다. SK텔레콤이 4월 12일부터 줍깅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볼보자동차코리아도 플로깅관련 이벤트를 진행한 다음 관련 수익금을 환경재단에 기부했다. 풀무원은 지난해 100일 동안 어린이와 학부모가 함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이를 모바일앱에 인증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길에서 쓰레기를 줍는 건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30여년 전, 기자가 초등학교 고학년일때도 한달 한번 학교 근처 호수와 공원에서 전교생이 쓰레기를 주웠다. 물론 스스로 한 건 아니었다. 왜 줍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걸 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쓰레기를 주우라는 선생님 말씀은 잘 안 듣고 그냥 교실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는 게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시절 기자에게는 쓰레기를 줍는 건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었나보다. 하지만 그때도 ‘쓰레기를 우리가 직접 줍자’는 취지의 활동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쓰레기를 주우면 ‘착한 아이’라고 불렀고 부모님들도 아이들에게 쓰레기를 주우라고 교육하던 시절이었다. 모두의 부모님이 정말 환경적인 분이셨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쓰레기를 길에 버리면 크게 혼났을터다.

◇ 필환경 에코소비 경향...플로깅+줍깅과도 연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 ‘트렌디’가 된건 환경이 소비시장에서 하나의 키워드가 되면서부터다. 친환경 에코소비가 수년 동안 마케팅 키워드로 인식됐고 최근에는 ‘필(必)환경’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단순한 친환경이 아니라 반드시 환경적인 면을 고려해 소비한다는 의미다.

필환경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등이 집필한 저서 <트렌드코리아 2019>에 등장한 개념이다. 책은 ‘필환경 시대’ 카테고리를 통해 “그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가 하면 좋은 것 혹은 자신의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소비자들은 정말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을까? 지난 6월 한국피앤지와 자원순환사회연대가 국내 소비자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실천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95% 이상이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5.5%가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81.6%의 응답자는 “환경문제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다. 당시 한국피앤지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는 더 이상 실천하면 좋은 행동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필환경 시대’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플로깅에 대한 관심은 이런 취지로 이해된다. 환경에 관심 많은 요즘 소비자들은 제로웨이스트나 비건 같은 키워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줄이는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쓰레기 줍기를 직접 실천하는 활동들도 이런 마음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인기 많은 장난감도 버려지면 쓰레기가 된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쓰레기를 줍는 건 매우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쓰레기를 덜 버리고 잘 버리는 일이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쓰레기 주우면서 새 쓰레기 만들지 말아야”

쓰레기를 줍는 건 환경적이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 수거 과정에서 바람에 날리거나 떨어진 것들을 깨끗하게 치울 수 있다. 거리에 마구 버려진 담배꽁초나 요즘 부쩍 눈에 띄는 버려진 마스크를 줍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플로깅이나 줍깅을 위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로깅에 필요한 물건을 공짜로 주거나 관련 활동을 인증하면 친환경 굿즈를 선물로 주는 경우다. 물론 요즘같은 시국에 맨손으로 쓰레기를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비닐장갑이나 쓰레기를 담는 봉투가 필요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나눠주면서 행사를 기획하고 여러 사람들의 참여를 동참하는 것도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집에 일회용 장갑이나 남아도는 비닐봉투가 있다. 청소도구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나눠줘도 된다. 쓰레기를 줍는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추가로 기념품을 나눠주는 것도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플로깅 등을 직접 실천하는 단체 ‘와이퍼스’의 운영자 황승용씨도 본지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황씨는 “기업 연계로 이루어지는 플로깅 중에, 환경 자체보다는 굿즈(기념품)나 회사의 이미지만을 위해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많이 쓰는 회사나, 패스트패션 위주 기업이 갑자기 플로깅을 한다고 하면 오히려 플로깅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깎는 행동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플로깅은 칭찬 받을 일이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런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와이퍼스에 따르면 하루에 버려지는 담배꽁초 숫자만 1,200만개가 넘고 플로깅 하면서 꽁초를 다 주우려고 마음 먹으면 100미터를 가는데 한시간도 걸릴 정도라고 한다. 이걸 줄이는 행동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쓰레기를 덜 버리고 제대로 버리는 일이다. 쓰레기를 줍자면서 (나중에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물건을 주는 경우는 없는지, 대체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일회용 물품들이 필요 이상 사용되지는 않는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쓰레기를 줍는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플로깅이나 줍깅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자도 주말에 시간이 나면 '줍깅'에 도전하려고 한다. 다만, 이왕이면 그 과정에서도 가능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뜻이다.

leeha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