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실천 위해 제공되는 물건을 보며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기업들이 ‘친환경’ 이벤트를 많이 한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환경적인 활동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이벤트다. 기자는 그런 움직임이 반갑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노파심도 든다. 환경적인 이벤트를 하면서 사실은 환경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쓰레기 줍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가방이나 비닐봉투, 장갑을 주는 행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행사는 환경적일까? 여럿이 모여 쓰레기를 줍는 건 당연히 환경적이지만, 굳이 가방과 청소도구를 나눠주는 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맨손으로 쓰레기를 주울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대개 집에 가방이나 일회용 장갑, 또는 남아도는 비닐봉투가 하나씩 있어서다. 각자 그걸로 줍는게 더 환경적지 않을까?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자고 독려하면서 텀블러나 다회용컵을 나눠주는 행사도 그렇다. 텀블러를 쓰는 건 좋은 습관이지만, 텀블러 하나가 일회용컵 하나보다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하려면 오랫동안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 제품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만 고려하면 텀블러가 일회용컵보다 더 까다로운 물건이어서다. 물론, 텀블러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집에 있는 텀블러를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다.

기자의 주변에도 이런 경험담이 많다. 친환경 행사장에서 질 좋은 에코백을 나눠줬는데 그 에코백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있더라는 얘기, 일회용컵 쓰지 말라면서 텀블러를 나눠줬는데 이미 텀블러 두 개를 가지고 돌려 쓰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환경적인 것’이 뭐냐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자는 (보통의 소비자들 기준) 환경적인 행위가 ‘불필요한 것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일회용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면서 살 수 없고,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으면서 소비할 수 없다. 일회용품도 쓰고 플라스틱도 쓰면서 산다. 그걸 인정하되, 덜 쓰고 많이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환경적이다.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울 때는 집에서 일회용 장갑을 가지고 나가면 된다. 버려지기 직전의 비닐봉투를 들고 나가도 좋다. 쓰레기 주우러 다닐 때 쓰는 작거나 낡은 가방 정도는 옷장 속 어딘가에 있을터다.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예전에 구입했거나 선물받은 텀블러를 찾아보자. 정말 하나도 없다면 텀블러를 제공받아야겠지만, 이미 있다면 그걸 쓰는 게 좋다.

친환경 이벤트를 기획하는 기업들도 이 문제를 생각하면 좋겠다. 소비자나 구성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려면 무언가를 제공하는 게 편리하다. 행사를 기획했는데 “필요한 물건은 전부 집에서 가져오세요”라고 말하는 건 기획자 입장에서 굉장한 모헙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버려지는 물건을 줄이자는 취지이지 준비물은 각자 준비하세요. 준비하기 어려운 분들은 미리 신청하시면 대여해드립니다” 라고 말이다.

기자는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가끔 그 쓰레기를 직접 줍는다. 사용하지 않은 지 5년이 넘은 튀김용 젓가락을 쓰고, 여러번 사용해 버리기 직전인 지퍼백에 담는다. 그 쓰레기를 줍겠다고 일회용 장갑을 새로 사거나, 두툼한 비닐봉투를 새로 장만하는 건 너무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다.

쓰레기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쓰레기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다. 줄일 수 있는 건 줄이자. 제로웨이스트는 못해도 로우웨이스트는 할 수 있으니까.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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