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권과 영향력 세진 ‘친환경’ 소비자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업이 소비자를 이끌던 시대가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으로 구매자를 놀라게 하고, 신제품으로 삶의 질을 높려주던 시대다. 세탁기를 개발해 보급하거나, 전화기를 집집마다 들여놓던 시절, 컬러TV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거나, 스마트폰으로 현대인의 생활 습관을 모두 바꿔버린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온라인에서 스티브 잡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글이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본 적 없는 제품, 과거에는 없던 기술을 가지고 소비자를 놀라게 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컴퓨터를 휴대전화에 집어넣은 사례라면 저런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기업의 기술이 소비자를 놀라게 하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던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기자는 부쩍 달라진 경향을 느낀다.

우선 미리 밝혀둘 얘기가 있다. 기업의 기술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주장하거나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마주한다. 목소리를 알아듣는 TV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앞으로는 스스로 달리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나올테니까 말이다.

기자가 느끼는 변화는 제품의 기술보다는 ‘소비자의 태도’에서 관찰된다. 소비자가 기업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놀라거나 열광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비판적인 시선으로 뜯어보고 변화를 요구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다.

물론 과거의 소비자도 똑똑했고 그런 일을 많이 했다. 국내만 봐도 소비자운동 역사가 수십년이니 지금 소비자들만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 기자는 환경 관련 이슈를 보면서 이런 경향을 피부로 느낀다.

요즘 소비자들은 거침없다. ‘팩 음료에 왜 꼭 빨대가 있어야 하느냐’고 묻고, ‘캔 햄에 반드시 플라스틱 뚜껑이 필요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분노하고, ‘화장품 용기가 재활용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빈 용기를 잔뜩 모아 환경부에 보낸다.

기성세대 소비자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강릉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음료를 생산하는 기업에 ‘재활용이 쉬운 플라스틱병을 생산해달라’는 편지를 보내 기업과 환경부로부터 답장을 받아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다는 청년들은 해외 석탄발전에 관여하는 기업들을 ‘탄소오적’이라고 부르며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당장 이끌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활동들이 반드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용하는 온라인 메신저 단체채팅방에는 환경 얘기를 나누는 곳이 많다. 어떤 곳은 참여자가 수백명이다. 기자도 그 중 한 대화방에 참여한다. 참가자들은 익명 대화방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다고 홍보하는 기업을 향해 ‘아직 부족하니까 더 줄이라’고 지적한다. 어제는 한 참여자가 “예전에는 기업이 출시하는대로 팬덤처럼 소비했지만, 이제는 교육받은대로, 제대로 실행하는 곳에서 소비하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환경 분야를 취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들도, 최근 기자에게 직접 온갖 권유와 불평을 쏟아냈다. ‘기름병 마개를 분리해 재활용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불만, ‘멸균팩과 살균팩을 분리하라면서 그게 뭔지 정확히 알려주지도 않는다’는 비판, ‘PET는 다른 소재와 분리해 버리라면서 왜 비닐라벨이 붙어있고 심지어 병목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진 것도 있느냐’는 지적도 들었다.

이제는 기업이 내놓는 제품에 소비자들이 무조건 열광하던 시대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요구를 쏟아내고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특히 환경 관련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비자는 힘이 세다. 혼자서는 바꿀 수 있는 게 적지만 작은 목소리가 모이면 커다란 울림이 된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환경 관련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이제는, 소비자가 기업을 바꾸는 시대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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