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시선으로 보는 냉장고와 환경의 연결고리
꽉 채운 냉장고 대신, 적당히 채운 냉장고
음식물쓰레기로 낭비되는 에너지 연간 177만 톤

역사 이래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열 세번째 시리즈는 인류의 식탁을 책임지는 냉장고입니다. 냉장고를 줄이자?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편집자 주]

냉장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4시간 내내 사용하는 전기 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식재료의 순환구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문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냉장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4시간 내내 사용하는 전기 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식재료의 순환구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문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가전 제품을 하나만 골라보라고 투표하면 뭐가 당선될까? 기자가 보기에는 냉장고다. 요즘은 전화기 없는 집이 많고 TV가 없는 사람도 있으며 식기세척기나, 진공청소기 없는 사람, 에어프라이어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가 보고 들은 바로는) 집에 냉장고가 없는 사람은 드물다. 조리를 거의 하지 않고 전자레인지만 가끔 사용한다는 한 지인 집에도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꾼 발명들이 있다. 바퀴와 화폐,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그 분야와 종류가 다양하다. 최근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주목받는 플라스틱도 어쩌면 역사상 손꼽는 발명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 중요한 발명을 논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냉장고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인류의 삶이 크게 변했다.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채소와 과일, 고기를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고 영양섭취도 좋아졌다. 인류가 괴혈병 등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이유가 냉장고의 영향이라는 시선도 있다. 거실에 놓인 냉장고 뿐만 아니라 산업용이나 의료용에 쓰이는 냉장·냉동 기술을 생각하면 냉장고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코로나19 백신을 수송하는데도 낮은 온도가 필수다.

◇ 두 가지 시선으로 보는 냉장고와 환경의 연결고리

냉장고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식재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인류의 먹거리는 지구 환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 구조를 고려하면, 냉장고 역시 환경과 적잖은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냉장고의 환경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24시간 내내 사용하는 전기 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식재료의 순환구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문제다.

냉장고는 일반적으로 집에 한 번 들여놓으면 버리는 순간까지 잠시도 쉬지 않는다. 365일 24시간 내내 전기를 쓴다는 의미다. 냉장고가 멈추면 어떻게 될까?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양모씨(43)는 지난해 8월, 집 앞 전봇대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겨 10분 남짓 정전을 겪었다. 양씨는 “전기가 끊겨 불편해도 다른 건 참을 만 했는데,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이 가장 걱정됐다”고 말했다.

최근 냉장고가 고장을 일으켜 새 제품을 장만했다는 경기도 용인의 소비자 유모씨(67)는 “냉장고와 냉동실 전원이 끊겼고, 급히 구매한 냉장고도 하루 지나서 배송되는 바람에 식재료를 급하게 소진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방가전은 대부분 불이나 열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한다. 반면 냉장고는 음식이나 재료를 차가운 상태로 계속 유지하느라 계속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물론, 아주 많은 전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냉장고는 에어컨과 달리 방 전체가 아니라 내부 공간만 냉각하기 때문에 전기 소모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

대신 하루 종일 가동해야 해서 일반 가정에서 내는 전기세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24시간 내내 전기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도 배출한다. 기자가 사용하는 냉장고를 예로 들어보자. 2018년 4월 기준 1등급을 받은 국내 한 가전사의 320L 냉장고다. 월간소비전력량은 (제조사 소개 기준) 16.1kWh다. 전기세가 연간 3만 1,000원 정도 소요되고 이산화탄소는 시간당 9그램 배출한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일까. 지난해 전자랜드가 3월부터 7월까지의 으뜸효율 환급 대상 가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냉장고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48% 늘면서 가장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냉장고를 줄이라는 기사명의 의미는, 전기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 꽉 채운 냉장고 대신, 적당히 채운 냉장고

냉장고를 줄이자는 문장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는, 앞선 관련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냉장고 속에 보관 중인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의미다. 말하자면, 냉장고의 물리적인 크기를 줄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속에 채워두는 식재료를 ‘효율화’하자는 뜻이다.

냉장고를 가진 인류는, 냉장고를 갖지 못했던 과거의 인류보다 더 쉽게 먹거리를 보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요즘 사람들은 음식물쓰레기를 잘 버리지 않을까? 통계를 보자.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이 지난해 9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매뉴얼 ‘환경 그린라이트’를 발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 1만 3465톤이다. 국민 1인당 음식물 쓰레기를 280그램 배출한다는 의미다. 고기로 따지면 거의 ‘반근(300그램이 옳은 표기법)’이다.

소비자들은 음식물 쓰레기라고 하면 ‘남긴 밥과 반찬’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캠페인에서도 ‘남기자 말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밥을 싹싹 긁어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음식물 쓰레기의 범위가 넓어서다. 전체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먹고 남은 음식물은 30% 내외다. 그것보다 더 많은 음식이나 식재료가 유통·조리과정(57%)에서 버려진다. 보관만 하다가 결국 폐기되거나(9%), 하나도 먹지 않은 상태(4%)로 버려진다.

숫자로만 보면 유통과 조리과정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모두 없애고, 만들어 놓고 안 먹는 음식이나 쓰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식재료를 없애면 음식물쓰레기의 70%가 줄어든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저 이론상 그렇다는 이유다. 하지만 먹고 남은 음식보다 유통이나 조리 등 여러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면 어느 과정에서 뭘 줄여야 할까.

냉장고를 줄이자는 권고는 '사이즈'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취향과 상황이 다른데 무조건 작은 제품을 사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냉장고 속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냉장고가 감당해야 할 환경적인 역할이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냉장고를 줄이자는 권고는 '사이즈'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취향과 상황이 다른데 무조건 작은 제품을 사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냉장고 속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냉장고가 감당해야 할 환경적인 역할이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음식물쓰레기로 낭비되는 에너지 연간 177만 톤

냉장고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한다. 하지만 냉장고에 오랫동안 들어있는데 결국 먹지 않는 식재료나 음식이 어느 집이나 있다. 물론, 이건 냉장고의 책임이 아니라 냉장고 주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요리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나, 집밥을 만들어 먹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일수록 위와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줄여보려고 식재료를 잔뜩 구매했다가 결국 냉장고 안에서 시들어가거나 단위당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대용량 제품을 샀다가 결국 다 못 먹고 버려 본 경험이 기자에게도 있다.

냉장고에 담긴 식재료를 주인이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앞서 언급한 학교보건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를 20% 줄이면 연간 1,600억원의 쓰레기 처리 비용이 줄어든다. 에너지 절약 등으로 5조원 규모에 달하는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버려지는 음식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도 고려해야 한다. 위 자료에 따르면, 음식물쓰레기로 인해 낭비되는 에너지의 양은 연간 177만 톤으로 승용차 47만 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에 해당한다. 이렇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3억 6천만 그루의 소나무가 필요하다.

환경부 ‘음식물류폐기물 처리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전국 가동현황 시설은 346곳이다. 이곳에서 매일 평균 1만 2831톤을 처리한다. 두 곳을 예로 들어보자. 서울 송파구 전역과 종로구, 중구, 성동구 등에서 반입되는 음식물류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에서 일평균 495톤을 처리한다. 강동구 전역과 광진구, 관악구 등에서 반입되는 양을 처리하는 시설에서는 299.56톤을 처리한다. 해당 시설의 일 최대치가 각각 515톤과 360톤이다. 시설로 반입돼 처리되는 음식물 쓰레기 양이 이미 포화상태에 점점 다다르고 있다는 의미다.

다행스러운 부분도 있다.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비율은 비교적 높다. 본지가 지난해 3월 냉장고 관련 특집 당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음식물류폐기물은 일반적으로 90% 이상이 사료, 퇴비, 바이오가스 등으로 재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기준 음식물쓰레기의 41.6%가 사료화 됐고 32%가 퇴비로, 16.8%가 기타(바이오가스 등)로 재활용됐다.

문제는 버려지는 양이 기본적으로 많다는 데 있다. 생산이나 운송 과정에서 미처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유통기한이 남은 여유식품이 폐기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줄여야 산다 3편에서는 냉장고 속 식재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실제 사례들을 소개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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