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환경을 위해 냉장고를 줄이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탄소배출을 줄이라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냉장고를 줄이라는 말은 어색하게 들려서다. 냉장고가 작아지는 게 도대체 환경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얘기일까?

냉장고를 줄이라는 건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냉장고를 너무 꽉 채우지 말라는 의미도 되고, 무조건 큰 냉장고가 좋다는 인식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작은 냉장고를 사라고 권유하려는 건 아니다. 냉장고라는 제품의 특성, 그리고 냉장고 속 식재료나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있으니 그걸 잘 따져보고 효율적으로 냉장고를 쓰자는 의미다.

냉장고를 둘러싼 여러 환경 이슈도 있다. 24시간 가동하면서 사용하는 전력과 탄소배출량, 버려지는 폐가전 문제, 냉장고에서 번식할 수 있는 세균 문제 등이 생활 환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냉매로 쓰였던 프레온 가스의 환경적인 영향에 관한 문제도 이슈였다. 이번 연재에서는 냉장고와 냉장고 속 식재료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그걸 줄이는 방법 등을 짚어본다.

◇ 인류의 필수품...환경과도 밀접 냉장고

그린포스트는 지난해 봄 ‘냉장고 비우고 지구를 구하라’라는 제목의 기획을 진행했다. 가을에는 ‘제품으로 읽는 환경’ 연재에서 냉장고를 주제로 다뤘다. 냉장고 관련 내용을 다시 기사화하는 이유는, 인류의 식탁과 환경의 영향이 그만큼 깊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인류와 냉장고의 관계도 매우 밀접하고, 냉장고와 환경의 관계도 밀접하다는 의미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다운사이징>은 인간의 몸이 13Cm로 작아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몸이 작아지면서 작은 땅에도 큰 집을 지을 수 있고, 음식 한 그릇 가지고도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며 술 한병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마치 우물처럼 충분히 퍼 마실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인간이 지금보다 작다면 지구에는 음식도. 물도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 신선한 소재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인간은 몸집이 크고 지구의 포식자인데다 머릿수도 많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이 문제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인구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많이 먹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이 남기고 그걸 버린다. 먹는 것은 생존 활동이지만 동시에 적잖은 인류에게 유희를 제공하는 일이기도 해서, 먹는 문화나 식사의 양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구입, 관리하고 적당한 양만 조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해결책들이 그러하듯 문제는 실천이다. 살다 보면 바빠서, 생각만 해도 귀찮아서, 막상 해봤더니 불편해서 결국 미뤄두는 게 많은 사람들의 문제다.

◇ 식재료 다루느라 365일 24시간 쓰는 전기

우리가 흔히 아는 냉장고의 역사는 대략 110년 내외다. 가정용 냉장고는 지난 1910년대에 처음 발명됐다. 환경운동가 톰 잭슨의 저서 ‘냉장고의 탄생’(MID 엠아이디 출간)에 따르면 1911년 제너럴일렉트릭사가 가정용 냉장고 관련 특허를 얻었고 당시 이 장치는 자동차의 두 배 수준으로 비쌌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인류의 생활은 크게 변했다.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하면서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고기를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고 영양섭취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건강도 개선됐다. 인류가 괴혈병 등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이유가 냉장고의 영향이라는 시선도 있다. 가정용 냉장고 뿐만 아니라 산업용이나 의료용에 쓰이는 냉장·냉동 기술 등을 생각하면 냉장고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냉장고는 365일 24시간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전기를 계속 쓴다는 의미다. 냉장고는 에어컨과 달리 방 전체가 아니라 제품 속 공간만 냉각하므로 전기소모가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다만 하루 종일 작동하느라 일반 가정에서 내는 전기세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집안에 한번 들여놓은 이상 버릴 때 까지 계속 전기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도 배출한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고, 얼마나 들어 있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서 냉장고와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큰 부분이 바로 여기다. 먹지 않은 식재료를 쌓아두다가 시간이 지나 결국 버리는 문제다. 먹거리를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뜻밖에도, 또는 역설적으로 식재료의 비효율적인 사용으로 연결된 결과다. (물론 냉장고라는 제품 자체의 책임은 아니다).

◇ 가득 채운 냉장고가 인류에 주는 영향은?

냉장고, 정확히 말하면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환경이나 생태 문제와 연결해 관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은 과거에도 있었다. 심효윤 아시아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5월, 중앙일보에 게재한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식품을 ‘구매’하는 간단한 행위로 문제가 해결되는 편리성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문제란 좁게 말하면 당장 오늘의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일부터 크게는 동물복지와 관련하는 생명윤리, 환경과 오염까지 확대될 수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2013년 경향신문 칼럼에서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냉장고를 없애라”고 조언하면서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 가족 건강 문제, 생태 문제, 이웃 공동체 문제, 재래시장 문제가 그만큼 해결될 테니까 말이다.”라고 썼다.

강신주는 해당 칼럼을 통해 음식을 필요한 만큼만 조리하고 남으면 곧바로 이웃과 나누던 과거의 삶을 지금과 비교했다. 그러면서 오래 먹으려고 식재료를 온갖 플라스틱 통에 담아 보관한 냉장고의 문제를 지적했다.

환경업계 한 관계자도 기자와 냉장고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를 그날그날 얻던 아메리칸 인디언보다 대용량 냉장고를 사용하는 요즘 인류가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 주장에 어느 정도 선까지 동의할지는 각자의 자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냉장고는 인류의 식사습관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에 대한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문제들은 뭐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줄여야 산다 2편에서는 냉장고 키워드로 읽는 환경 이슈들을 짚어본다.

leehan@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