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제조사가 만든대로 유통...채널 특성상 상품 형태 유지”
제조업체 “유통 환경 맞춰 묶음 포장 생산...포장 변화 어려워”
김미화 이사장 “라면 묶음 포장 언젠가는 벗겨야 하는 이중포장”

<소비자는 불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비자가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불편함을 짚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먹고 마시는 식음료 제품,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사용 후 쓰레기로 버려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주 불편함이 생깁니다. 과대포장으로 죄책감을 유발하는 제품, 분리배출이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 등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물음표를 남기는 제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제품을 만들고 폐기 후 재활용까지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환경적인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곳이 기업입니다. 기업의 방향성은 환경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에 환경과 경제의 교집합을 들여다보며 기업의 책임 영역을 꾸준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품목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업체부터 환경부와 관련 단체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불편한 매듭을 푸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가정 필수품이자 대표적인 가정간편식으로 사랑 받고 있는 라면의 묶음 포장에 대해서 들여다봤습니다. 대형마트에서는 낱개 라면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요. ‘라면은 왜 묶음 포장으로 판매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제조사와 유통사에 대답을 들어봤습니다. 이와 함께 환경단체에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편집자주]

국내 대형마트에서는 라면을 묶음 포장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낱개 판매는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진은 왼쪽부터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국내 대형마트에서는 봉지라면을 묶음 포장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낱개 판매는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진은 왼쪽부터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에 봉지라면 묶음 포장 제품들이 진열된 모습.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기자는 최근 동네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5개입 봉지라면 한 봉지를 샀다. 사고 싶었던 건 낱개로 된 봉지라면 1개였지만 마트에는 낱개 상품이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낱개 상품을 살 수도 있었지만 동선상 장을 보는 김에 사는 게 번거롭지 않았다. 지금도 부엌 찬장에는 라면 4봉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라면 한 봉지를 사기 위해서는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가야 한다. 대형마트에서는 봉지라면을 4개나 5개입으로 묶음 포장으로만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낱개 상품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 대형마트 세 곳을 모두 가봤지만 묶음 상품만 진열해 판매하고 있었다. 이미 비닐로 한 번 포장된 라면을 더 큰 플라스틱 비닐에 4개에서 5개씩 넣어 재포장한 제품들로 낱개 상품보다 할인이 적용돼 있다. 

라면은 지난해 환경부가 마련한 재포장 금지법 대상 품목에서 제외돼 있다. 환경부는 지난 9월 불필요한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이미 생산된 제품을 판매과정에서 다시 포장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재포장 금지법의 세부기준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특정 유통채널을 위한 N+1 판촉을 위한 추가포장이나 낱개 판매 제품 3개 이하를 합성수지 재질의 필름이나 시트로 최종 포장하는 것을 금지한다. 

라면 패키지의 경우 공장에서부터 묶음 상품으로 포장돼 출고·판매하고 있어서 재포장이 아닌 정상 제품으로 간주해 판매 금지 대상에서 빠져 있다. 법적으로 보면 라면 묶음 상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미 비닐로 한 번 포장된 제품을 왜 다시 비닐로 재포장해서 판매하는지에 여전한 의아함을 갖고 있다. 이는 환경적인 문제와 함께 소비자 선택권과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유통업체 “제조사가 만든대로 유통...채널 특성상 상품 형태 유지”

이에 라면 묶음 상품만 진열해 판매하고 있는 대형 유통사들에 먼저 낱개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대형마트 측은 제품은 제조사에서 만드는대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고 채널 특성상 주요 고객층이 가족 단위라는 점도 지금처럼 묶음 상품 형태로 판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마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층은 가족 단위로 일주일에 한두 번 크게 장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라면을 사더라도 객 단가 차원에서 낱개보다는 단위가 큰 상품으로 구매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유통채널의 매입구조상 봉지라면 대량 매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있다. 편의점 봉지라면보다 대형마트 봉지라면이 더 저렴한 이유가 매입구조 차이에 있는 만큼 대형마트의 박리다매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 

홈플러스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라면을 잘 팔 수 있는 방법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데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은 싼 값에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에 묶음 포장 형태로 판매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만약 대형마트에서 낱개 판매를 한다면 5개입보다 판매량이 적어질 수 있고 이는 대량 매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격경쟁력을 비롯한 대형마트의 차별성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면이 작은 가격 변동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품목이라는 것도 대량구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서민의 음식이자 가정간편식인 라면의 경우 100원만 올려도 소비자 불만이 커지기에 제조사와 유통사 입장에서는 가격이 가장 민감한 포인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봉지과자를 1+1이나 4+1 등 낱개로 선택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라면도 낱개로 N+1이나 N개 할인 등의 방식으로 판매할 수는 없을까. 

이에 홈플러스 관계자는 “라면과 과자는 매입가 등에서 차이가 있는 상품군으로 제조사와의 가격 협상 형태가 달라서 비교선상에 두기가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관계자 역시 “유통사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조업체와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답하면서 적용에 어려움이 있음을 전했다. 

◇ 제조업체 “유통 환경 맞춰 묶음 포장 생산...포장 변화 어려워”

유통사들은 라면 유통에 제조사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고 제조사의 입장과 방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라면 제조업체에선 오히려 유통 환경에 대응해 묶음 포장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유통 환경을 감안하면 제품 포장에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심에 따르면 낱개로 포장된 라면을 한 번 더 묶어서 판매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품질 문제로 라면을 낱개로 유통하게 되면 보관 과정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공기 중의 습기나 냄새가 스며들어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발생한다. 또 하나는 유통환경의 문제다. 

농심 관계자는 “낱개 제품을 진열하게 되면 미끄러지거나 떨어져 면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소비자가 제품을 낱개로 가져갔을 때도 파손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작업자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있다. 낱개 제품을 10개 쌓는 것과 5개들이 묶음 상품 2개를 쌓는 것 사이에는 큰 작업 효율차가 발생한다는 것. 

농심에 따르면 편의점이나 소매점에서 낱개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개별 납품이 아닌 묶음 포장된 형태로 납품된다. 이후 매장 성격에 따라서 묶음 포장으로 쌓아두느냐 이를 뜯어서 낱개로 쌓아두느냐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편의점에 확인 결과 납품되고 있는 라면은 모두 묶음 포장 제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비자가 보기엔 낱개로 유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장에서부터 대부분의 라면이 묶음 포장으로 나온다는 얘기다. 

농심 관계자는 “제조사에선 유통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묶음 포장으로 라면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며 “유통환경은 제조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제품 포장으로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오뚜기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오뚜기 라면 포장 담당자는 “대형마트의 경우 주 단위로 식료품을 한번에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고 라면도 10개 이상씩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묶음 포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판매처에서도 운반과 진열이 쉬운 묶음 포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봉지 라면은 묶음 포장이 일반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사회 전반에 걸친 친환경 이슈로 업계에서도 묶음 포장 제품에 대한 여러 고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자의 구매 편리성 저하, 유통 방식 변화의 어려움 등 여러 이슈로 즉각적인 변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감량화와 친환경 소재 검토 등 다양한 친환경적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 역시 업계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방향성과 당위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묶음 포장을 없애면 낱개 포장의 두께가 더 두꺼워져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농심 관계자는 “대신 기업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정책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낵류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거나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로 바꾸는 등 플라스틱 절감이라는 큰 방향성에 맞춰 기타 제품에서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 김미화 이사장 “라면 묶음 포장 언젠가는 벗겨야 하는 이중포장”

한편 농심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환경부가 재포장을 금지하는 맥락이 플라스틱 사용 절감에 있다는 방향성에 대해선 올바른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재포장 금지법 이슈와 관련해서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라면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롯데마트도 라면 묶음상품 진열 판매와 관련해 “환경부 지침상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에서 기준을 정했고 라면은 가이드라인 안에 있기 때문에 논의할 단계가 지나갔다는 얘기다. 

물론 라면 포장 자체는 환경부 지침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없다. 포장제 금지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제조사와 판매사에서 묶음 상품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소비자의 시각은 다르다. 쏟아지는 재포장 비닐문제에 논의 시점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라면 묶음 포장에 대해서 “결국 유통사와 제조사의 제품 판매율를 높이기 위한 전략”임을 지적하면서 “언젠가는 벗겨하는 이중포장”임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라면을 낱개 포장으로 진열해 놓으면 한 두 개만 사갈 수 있지만 5개입으로 묶음 포장을 해놓으면 큰 봉지 하나를 사갈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는 당장 예외조항으로 빠져 있어서 기존대로 운영할 수 밖에 없지만 요즘 식음료 업계에서 비닐 한 장이라도 덜 쓰려고 띠지를 벗기고 있는 만큼 이후 라면에서도 작은 포장재 하나라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대포장이나 재포장에 있어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환경부의 지침도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라면뿐만 아니라 껍데기를 벗겨야할 게 많은데 먼저 출시된 상품은 규제 적용을 받으면서 다른 유형으로 나왔을 때는 규정이 없는 경우가 허다해 형평성에 어긋나 항상 문제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라며 “제재를 강화해 예외 조항 없는 일률적인 정책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도 라면의 묶음 포장이 과대포장임을 지적하면서 플라스틱 비닐 포장재를 줄이면서 판매율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띠를 두르거나 물에 잘 녹는 접착제를 활용하는 등 다른 상품들에 묶음 할인을 적용할 때 사용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라면에서도 플라스틱을 줄이면서 판매율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바코드 인식을 시스템화 해 낱개로 집어갈 수 있도록 해 부수적인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 활동가는 “묶음 포장 자체에 바코드가 찍혀 있어서 재포장이 아니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포장된 상품을 재포장한 과대포장이 맞다”면서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사와 제조사에서 플라스틱 비닐을 줄일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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