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거부권 기대하는 SK이노베이션... 조지아주는 ‘합의’ 촉구
글로벌 전기차와 동반 성장하던 K-배터리에 ‘위기요소’ 작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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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쟁이 수 년간 지속되고 있다. (본사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건오 기자]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수 년간 지속되고 있는 분쟁으로 양사의 앙금은 깊어만 가고, 차세대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K-배터리’는 유례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급증으로 주요 부품인 배터리 시장의 동반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K-배터리의 위상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SNE리서치 보고에 따르면, 2020년 1~11월 기준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3사가 글로벌 순위 5위 안에 랭크됐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쟁은 K-배터리 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테슬라 및 폭스바겐 완성차 기업의 배터리 자체 생산이 예고됐고,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는 자국 일자리 문제, 경제 타격 등 잘 쌓아온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

또한, 배터리 생산 경쟁국에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한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는 의미로 상대가 서로 싸우는 사이 이득을 챙기는 전략)의 상황을 제공하는 셈이 됐다. 우리나라와 함께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일본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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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1월 기준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순위 (SNE리서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바이든 거부권 기대하는 SK... 믿었던 조지아주는 “합의하라”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분쟁은 최근 더욱 격화되는 양상으로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미국 사업 고문으로 영입된 바 있는 샐리 예이츠(Sally Yates) 前법무부 차관을 앞세워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샐리 예이츠 前 차관은 외신 보도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아주 북동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무력화시키는 ITC 판결을 거부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이 다음 네 가지 중요한 정책 목표를 저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뒷받침하는 주요 내용은 △조지아주 2,600개 일자리 위협 △전기차 확대를 통한 미국 기후변화 대응 걸림돌 △미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 시장 경쟁력 하락 △포드 및 폭스바겐 자유무역 제한 등이다. 여기에 더해 SK이노베이션은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 주지사도 같은 이유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지아주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 주요 매체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23일) 조지아주 상원은 만장일치 협의로 ‘양사 합의’를 촉구하는 방향의 결의안을 상정했다. 기존에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촉구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 번복을 추진했던 조지아주 상원이 합의로 방향을 바꾸면서 양사 분쟁에 대한 미국 내 온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에 이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2위 기업인 폭스바겐의 피해도 크다. 일부 차종에 유예기간이 허용됐지만 최근 계약을 맺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10년 수입 제재는 전기차 판매량 1위 도약에 제동이 된 셈이다. 지난해 11월 SNE리서치 보고에 따르면, 현재 테슬라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지만 2022년에는 폭스바겐이 112만대를 판매하며 선두 기업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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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위원회 의견서 주요 내용 발췌. SK는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10년 이내에 해당 영업비밀상의 정보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명확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 결국 피해는 K-배터리로

이 정도가 되면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분쟁에서 입장 차이가 좁혀질 법도 한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 3월 5일, ITC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의견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 패소 판결을 유지하고, 수입금지 명령 및 영업비밀 침해 중지 명령을 발효했다. LG에너지솔루션 2019년 10월 7일 제출한 최종 영업비밀 목록의 영업비밀 22건을 침해한 물품의 미국 수입, 수입을 위한 판매, 수입 후 미국 내 판매에 있어 관세법 제 337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없이는 SK이노베이션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데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판단하며, 미국 수입금지 조치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다.

ITC는 이번 의견서를 통해 분쟁의 도화선이 된 폭스바겐 수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 2018년 9~10월 이뤄진 수주 관련 합의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가격 정보 및 사업상 영업비밀을 침해해 만들어진 더욱 저렴한 배터리로 수주를 이뤘다는 내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초, ITC 소송 의견서 관련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정부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년 동안 조사를 통해 결정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웅재 LG에너지솔루션 법무실장은 이날 발표에서 “ITC는 조사 및 판단의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으로 2년에 걸쳐 충분한 조사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청취 등을 통해 결정은 내렸을 것”이라며, “ITC 소송 의견서에 대한 SK이노베이션의 입장 발표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의 기본 입장은 상생이라고 언급한 한 실장은 “합의의 문은 열려 있다. 다만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니겠냐”며, “ITC 판단에 따라 이제 어느 정도 인정하고 협상에 임해야하는 것 아니겠냐가 공식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합의 상황과 합의금 산정 기준과 관련해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 총괄은 “2월 10일 최종판결 나온 이후 우리가 SK에 협상 재개를 언급한 적 있으나 현재까지 한 달여 동안 어떠한 반응이나 제안도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웅재 실장은 “협상을 종용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염려는 되나 빨리 합의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상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대원칙에서 하는 말이다. 합의가 안된다면 원칙대로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저지, 미국 시장 장악을 위해 사실 관계까지 왜곡하고 있다”며, “이번 소송의 목적이 SK이노베이션을 미국에서 축출하고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데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전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이 ‘SK측이 협상에 미온적이고,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에게 SK이노베이션을 매도하는 행위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협상에 관해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지만, 이달 초에도 양측 고위층이 만난 적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동의한다면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상 경과 모두를 공개할 용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배터리 3사는 지난해 1~10월 기준,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 LG에너지솔루션 22.6%, 삼성SDI 5.8%, SK이노베이션 5.5%로 5위 안에 모두 들어가 있다. 전년 대비 성장률은 1위를 기록한 중국 CATL(3.1%), 3위 일본 파나소닉(-8.5%)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 K-배터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률은 142.7%, 삼성SDI 72.4%, SK이노베이션 239.0%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K-배터리 전성시대’가 자칫 가까운 미래에 ‘라떼는 말이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글로벌 톱5 안에 3사 모두가 있었다고 회상하는 날을 말하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각형 배터리 사용을 예고했지만 파우치형 배터리 수요를 위해 중국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K-배터리’에 대한 위기의식이 필요한 때다.

kunoh@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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