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줄이려고 술을 끊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2020년 5월 16일 토요일을 기억한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날이다. 그로부터 약 10개월여, 정확히는 314일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술을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20살 이후, 살면서 가장 오래 술을 마시지 않은 건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올때까지의 100일이었으니까 300일이 넘는 기간은 기자에겐 놀라운 숫자다.

술을 끊으려는 이유는 복합적인데 크게 보면 3가지다. 이곳저곳 아프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가 술이라고 생각해서, 세상의 규칙이 변해 이제는 가족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마스크를 내리기 싫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고기 먹는 횟수를 줄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지금도 기자는 고기 없으면 못 산다. 어제 저녁에도 돼지 앞다리살을 마라샹궈 양념에 채소와 함께 넣고 볶아먹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기를 예전처럼 자주 먹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두끼는 채식을 하고,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아서다. 고기랑 술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기자에게는 깊은 관계가 있다.

기자처럼 살짝 흉내만 내는 사람 말고, 꾸준히 채식하는 사람들은 크게 4가지 이유가 있다. 다이어트나 건강 유지 등을 위해 식단을 바꾸려는 이유, 동물권이나 다른 종에 대한 차별 등에 관심을 두는 윤리적인 이유,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 원인 중 하나라는 시선에서의 환경적인 이유,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 등이다. 기자가 고기를 줄이려고 마음먹은 건 세 번째 이유에서다.

서울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만 7억평의 땅이 사료용 콩 재배를 위해 쓰인다.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열대우림이 벌목되는 경우도 있다. 소고기 1Kg을 얻기 위해 1만 5,500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전세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교통 분야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보다 많다고 한다. 소 1만마리를 사육하는 곳에서 나오는 유기폐기물은 인구 11만명 도시의 쓰레기 양과 같다. 서울환경연합에서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들이다.

기자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먹거리 취향은 제각각이고 모두 각자의 자유니까. 그리고 기자 역시 고기를 끊을 마음이 없다. 지치고 피곤한 날이나 반대로 신나는 날 저녁에 고기를 굽지 않으면, 뭘로 그 마음을 달래거나 기쁨을 나누겠는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기자는 고기 육향을 즐기거나 식감을 따지는 편이 아니다. 부위별로 다른 맛을 음미하거나 굽기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영양학적인 고려를 통해 단백질을 공급해야겠다고 느낄 때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주와 삼겹살’이라는 익숙한 공식을 따랐을 뿐이다.

뭔가 기분을 내고 싶거나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필요하면 삼겹살 대신 소고기를 구웠다. 오늘의 주종이 소주가 아니라 맥주로 결정되면 치킨이나 양꼬치를 골랐다. 고기 자체를 즐긴 게 아니라 분위기를 따른거고 그저 ‘안주’가 필요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저 기자가 개인적으로 그랬다는 의미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기 소비를 줄여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일주일에 두 끼 채식을 한다고 우리나라 고기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리는 없다. 기자가 치킨을 덜 시킨다고 A4용지만한 케이지에 갇혀 평생 알만 낳다 죽는다는 닭들의 인생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달라질리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똑같이 사는 것 또한 마음에 걸렸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마음이 나쁘다는 건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 도덕 시간에 이미 배웠으니까.

그렇다고 고기 반찬을 끊을 수는 없어서 차선책으로 ‘술안주’로서의 고기는 피하기로 했다. 과일이나 채소만 가지고 술 먹는 건 어색해서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술은 아예 끊었다. 너무 극단적인 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담배도 끊었는데 술이라고 못 끊을 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14일이 지났다

얼마 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다른 매체 기자가 요즘도 일주일에 두끼 채식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 기자도 일년 중 한 달을 비건식으로 먹으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 기자는, 갑자기 한 달 동안 고기를 끊는 게 힘들 것 같아서 우선 3일간 고기 안 먹기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했다. 고기를 줄이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건강이랑 환경, 이렇게 두 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가 물러나면 그 기자와 비건레스토랑에서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참고로, 그 기자는 ‘술은 도저히 못 끊겠다’며 ‘간단하게 내추럴 와인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미안하지만, ‘짠’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을 작정이니까.

한마디 덧붙이면, 시판용 식물성고기 제품을 제육볶음 양념에 볶아먹은 적이 있다. 단골식당과 똑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눈 감고 먹으면 둘을 구분해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한 건 고기의 식감이었을까 아니면 매콤하고 달달한 양념이었을까? 두끼 채식을 하루 채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한번 덧붙이면,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기자가 그렇다는 얘기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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