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어려운 분리배출 가이드를 보면서 드는 생각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누구나 ‘분리배출’을 한다. 동네마다, 또는 집집마다 다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재활용품 버리는 날’이나 ‘분리수거 하는 날’이 정해져 있다. 일주일에 1번이든 또는 3번이든, 종이나 플라스틱을 따로 모아 집 밖에 내놓는다. 익숙한 풍경이다. 종류별로 내놓은 폐기물은 전부 재활용이 잘 됐을까?

분리배출 할 때, 그러니까 흔한 말로 ‘재활용품 분리수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재활용되는 품목과 쓰레기로 버리는 걸 구분하는 게 분리배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홍 소장은 “재활용품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면 안 된다는 인식은 높은데, 반대로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가 분리배출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행적으로 눈을 감거나 잘 모르고 넘어갔다”고 본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무슨 사연일까.

쉽게 말하면, 플라스틱이라고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다. 종이도 다 같은 종이가 아니다. 종이를 예로 들어보자. 본지에서 여러 차례 기사화한 바 있지만, 신문지와 (골판지) 상자는 같은 종이지만 따로 모아서 버리는 게 원칙이다. 신문과 함께 배달된 (코팅된) 광고지는 종이가 아니고 쓰레기, 지갑에 쌓아둔 영수증도 종이로 만들었지만, 종이로 분리배출하는 게 아니라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 수 많은 종이들...당신은 전부 구분할 수 있습니까?

문제를 하나 내자. 우유팩은 뭐랑 같이 버려야 할까. 주스가 담긴 팩이나 두유가 담긴 팩은 무슨 종이랑 같이 버려야 할까?

답은 복잡하다. 우선 저걸 자세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로 음료를 담는 포장재를 종이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종이팩은 살균팩과 멸균팩으로 구분한다. 살균팩은 우유를 담는 종이용기 즉 우유팩을 말하고, 멸균팩은 주스나 두유를 담는 포장용기를 말한다.

홍수열 소장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우유팩은 중간에 종이가 들어가고 양면에 비닐 코팅이 붙어있으며, (멸균팩은) 비닐코팅 양이 많고 안쪽에 알루미늄으로 다시 한번 첩합이 되어 있다. 코팅이 되어 있으면 일반 종이와 함께 재활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종이팩은 따로 모아야 하는데 살균팩과 멸균팩은 코팅의 양과 알루미늄 포함 여부가 달라 역시 섞이면 안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당신은 멸균팩과 살균팩을 구분할 수 있는가? (기자도 저걸 구분하기 시작한지 며칠 안 됐다)

최근 환경부가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 일부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알루미늄이 들어가는 종이멸균팩(멸균팩)도 일반 쓰레기로 처리하게 된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소비자기후행동은 “대다수 시민이 멸균팩과 살균팩으로 나눠 종이팩을 구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분리해 멸균팩만 쓰레기로 처리하라는 지침은 시민들에게 혼란을 줄 것” 이라고 주장했다.

논의를 지켜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그리고 또 하나는 ‘소비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공부해야 하는거야?’ 하는 생각 말이다.

◇ 소비자만 부지런하면 되는걸까?

환경을 생각하고 생활습관을 바꾸는 건 중요한 일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들만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환경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깨끗하게 잘 나눠서 버리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재활용이 잘 되는 소재를 가지고 제품마다 통일된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 큰 틀에서 나눠 버리기만 해도 재활용이 잘 되도록 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게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들이 종이류를 모아 버리면 업체에서 그걸 세부적으로 나누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홍수열 소장도 코팅된 종이를 종류별로 나눌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조언한다. 홍 소장은 “종이용기 전문선별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코팅된 종이용기를 (소비자 등이) 한꺼번에 배출하면 그걸 특성에 따라 살균팩, 멸균팩, 그리고 종이컵류 등으로 선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풀라스틱 선별장이나 유리용기 선별장처럼 코팅된 종이용기를 종류별로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소비자가 아무리 분리배출 잘 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종이 뿐만 아니라 다른 소재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PET병을 버릴 때 부착상표나 부속품 등 본체와 다른 재질은 제거해서 배출하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브랜드 주스병은 입구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있다. 뚜껑이야 열면 되지만 입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톱이라도 사용해서 절단해야 하는걸까?

국내 한 식품브랜드의 참기름 제품은 마개가 단단하게 고정돼있어서 아무리 힘을 주어도 열리지 않는다. 칼로 쪼개고도 손으로 힘주어 벌려야 열린다. 이런 병은 어떻게 내부를 세척하고 본체와 다른 재질을 분리해서 버려야 할까?

플라스틱이라고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고, 종이라고 다 같은 종이가 아니다. 요즘은 그 차이를 자세히 알려주는 콘텐츠나 기사가 많아서 소비자들도 예전보다 많이 안다. 하지만, 분리배출은 소비자의 실천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움직여야 할 건 정부와 기업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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